사춘기가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나의 못난 모습을 저주했고, 그 대상은 곧 아버지께 옮겨갔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아버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분노로 변해갔고, 그 분노는 계속 자라갔다. 그러는 사이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었고, 무엇보다 아버지를 자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행복해했다. 처음 서울에 발을 들여놓았던 순간을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속으로 외쳤다.
“이제 해방이다. 하하하!”
“난 절대로 시골집에 안 간다. 돈이 필요할 때만 제외하고!”
“아버지, 잘 지내십시오. 아마 자주 못 볼 겁니다.”
나와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렇게 정리되어갔다. 마치 독재 치하에서 탈출한 것 같이 기분이 정말 좋았다. 그렇게 대학 생활은 시작되었고 더불어 교회 다니는 것도 장기 방학에 들어갔다.
- 22~23쪽
내가 중국 열방학교를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반가워한 친구가 있다. 이천에서 목회하는 이종덕 목사인데, 그와 나는 교회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같이 다녔다. 나를 너무 잘 아는 친구이다. 한번은 내가 사역하고 있는 중국으로 그 친구가 그의 교인들을 이끌고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 추억을 곱씹게 되었다. 친구는 나의 과거를 소상하게 내 아내와 함께 일하는 교사들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하진이가 말이죠. 학교 다닐 때 병적으로 소심한 아이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크고 멋있는 학교를 만들어 선교하다니 정말 믿기지 않아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네요. 하하하! "
- 45~46쪽
‘동산 나무 사이’란 하나님을 인식하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내 능력으로 이루려고 하는 곳이다. 그것이 돈이 됐건, 지위가 됐건, 사회적 인기가 됐건 간에 추구하는 안전지대를 말한다. 그러나 안전해 보이는 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 과연 안전이 무엇인가? 어떤 위험물이 사라지고, 재물이 풍부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곳을 안전한 곳이라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아담과 이브가 안전해 보이는 ‘동산 나무 사이’로 숨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낯을 피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낯을 볼 수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한 지역이인데 말이다. 다윗은 시편에서 무수히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에도 그는 주님의 얼굴만을 구했다. 그 길만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79~80쪽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에 반응한다는 것은 그것을 누리라는 뜻이다. 자유주심을 누린다는 것은 모든 형태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됨을 뜻한다. 또한, 재물의 소유욕이 사라진다. 더 이상 체면이나 지위, 명예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다. 근심과 불안이 나를 사로잡지 못하며, 집착으로부터도 벗어나고, 금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즉, 많이 가지고 있는 삶보다 깊이 있는 삶을 살게 된다.
- 107쪽
나는 대덕연구소에 다닐 때, 가끔씩 유성 리베라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섬씽 스페셜’ 위스키를 마시곤 했다. 위스키는 대학 때 마시던 막걸리, 소주와는 질이 달랐다. 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커피 애호가라고 치면 에스프레소를 마실 때 커피의 진한 맛이 혀에 착 달라붙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섬씽 스페셜을 동료들과 홀짝홀짝 들이키며 대한민국의 섬씽 스페셜, 즉 특별한 사람이 될 거라는 기대감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외쳐보곤 했다.
‘난 너희들과 달라!’
나는 남다르고 특출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던 적이 있다. 이때는 대학 재학 중 허파에 바람 들어갔을 때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는 박사과정과 사회생활을 거치면서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시며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다.
“자기 비하와 열등감 속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녀석을 구해줬더니 이제 교만과 우월 의식으로 가득 찬 놈이 됐구나. 쯧쯧쯧.
- 111~112쪽
내가 카이스트에 입학할 때는 반드시 강원도 원주에 있는 가나안 농군학교에 가서 훈련을 받아야 했다. 그때 아침저녁으로 구호를 외웠는데, 지금까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
“국가에 필요한 인재가 되자!”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하나님 나라에 필요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눈을 크게 뜨고 그분을 먼저 구할 사람을 찾고 계신다.
- 159쪽
내가 만 30살이 되던 해 선교사로 가기로 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신학을 하지도 않았고 선교 단체에서의 경험도 없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를 격려해주신 말씀이 있었다.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나는 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많은 날을 기도하면서 그분께 긍정적으로 반응해나갔다. 그리고 나 스스로 선교 가겠다는 것이 아님을 알았고, 나에게 선교에 대한 마음을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도 알았다.
- 183쪽
이 세상에는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두 가지 일이 우리 주변에서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스케일이다.
하나님의 스케일에 해당되는 일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 믿음이란 하나님에 관한 개념이나 신념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시고 역사하시며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무엇이든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인간의 지혜와 능력에 뿌리를 박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하는 것이다.
- 201쪽
나는 과거에 ‘못해’ 신앙인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몰랐다. 내가 계속해서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나를 통해 일을 이루시겠다는데 나는 내 영역을 침범하시지 말라고 무례하게 굴었다. 나는 나의 경계선을 분명히 해놓고 그 이상은 하나님께서도 침범하시면 안 된다고 한 것이었다. 만약에 지금까지도 하나님께 무반응으로 일관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나의 제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중국에서 만났던 북한 꽃제비 아이들과 중국 열방학교는?
주님 앞에 우리가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다.
“안 돼요. 나는 못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 나에게 배짱 주시려고 할 때 언제나 드려야 하는 말이 있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능력 없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 214~215쪽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