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처음 이 여정을 꿈꾸기 시작했는지, 마치 본능적으로 숨을 쉬는 것처럼 언제부터 내 안에 이토록 크게 자리하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 오래된 것 같은데. 아니면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일부러 계획한 것도 아니고 어느 순간 나를 통째로 집어삼킨 듯했다. 처음에는 불가능하고 어리석은 환상에 불과한, 어선에 자리 하나를 얻고 선장을 설득해 가능한 한 가장 먼 남쪽까지 나를 데려가도록 할 생각이었다. 북극에서 여름을 보내고 다시 남극으로 이주하는, 지구상에 살아 있는 생명체 중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인 북극제비갈매기의 여정을 따라서. 하지만 의지란 강력한 것이고, 내 의지는 끔찍하리만큼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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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이 끝내 무너뜨리지 못하는 유일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조류의 리듬이다.
--- p.32
“북극제비갈매기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이쪽에서 보긴 했어요. 지금이 알을 낳는 시즌 아니에요?”
“맞아요. 북극제비갈매기는 이 세상 동물 중에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새예요. 북극에서 반대편 남극까지 갔다가 1년 안에 다시 돌아오죠. 그 작은 몸으로 엄청난 거리를 날아다니는 거예요. 30년 정도 산다고 봤을 때 평생 동안 이동하는 거리를 계산하면 지구에서 달까지 세 번 왕복하는 거리와 같다고 볼 수 있죠.”
그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우리는 한동안 그 먼 거리를 이동하는 생명체의 우아하고 하얀 날개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용기를 생각하자니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에니스의 눈빛도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듯 보였다.
“그 새들을 따라가 보고 싶어요.”
--- p.46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지도를 접었다. 깊은 안도의 여파가 휘몰아쳐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나무 널빤지로 만든 다리 위를 걷는 내 발걸음이 가볍게 울렸고, 땅에 발을 디뎠을 때 다시 몸을 돌려 배에 휘갈겨 쓴 이름을 바라봤다. 엄마는 내게 단서를 찾으라고 말하곤 했다.
“뭐에 대한 단서요?” 내가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물었다.
“삶에 대한 단서. 곳곳에 숨겨져 있단다.”
그 이후로 나는 단서들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내 마지막 남은 생애를 보내게 될 이 배까지. 어떻게든 내가 남극에 도착해서 이 여정을 마치게 되는 날, 내 삶도 거기서 끝내리라 결심했으니까.
--- p.55
바다의 흐름과 겹겹이 쌓인 얼음들, 날개를 빼곡하게 수놓은 섬세한 깃털들. 나는 이토록 놀라운 것들이 가득한 삶에 지쳐 있지 않았다. 단지 나 스스로에게 지친 것뿐이었다.
--- p.74
나는 바다거북이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웃음이 번졌다. 손등으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바다 깊숙이 사라지는 바다거북을 바라봤다. 그리고 바다거북과 함께 저 어두운 바다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는 상상도 했다. 다른 선원들은 그물에 남은 길 잃은 물고기들을 다시 물속으로 던져 주었고, 에니스는 바다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닉이 그의 어깨를 한 손으로 토닥였다. 처음으로 본 그의 친절한 행동이었다.
“다 그런 거지 뭐.” 에니스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자 아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물을 정리해 볼까?” 그가 선원들에게 말했고, 누구 하나 지친 기색 없이 거대한 그물을 다시 풀었다 감는 작업에 착수했다.
--- p.136
“우리 결혼합시다.” 나는 웃음을 터트렸고, 그도 따라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키스를 하고, 또 했다. 나는 우리가 정신이 나갔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며, 멍청하고 또 어리석은 짓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외로움이 끝나리라고.
--- p.154
내가 떠나고 나면 내게 남겨진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내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도 없고, 글이든 위대한 행동이든 내 이름을 기념할 만한 작품도 없으니까. 그러한 삶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 봤다. 조용하고, 너무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삶에 대해서. 가본 적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포인트 니모’ 같은 삶에 대해서.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한 사실이 있다. 삶의 영향력이란 무엇을 주고 무엇을 남겼느냐로 측정될 수도 있지만, 세상에서 무엇을 얻었는지로 측정될 수도 있다는 점 말이다.
--- pp.163~164
결국 물고기는 놓쳤고 케이블은 완전히 끊어져 나갔다. 사무엘은 케이블에 맞아 등에 심한 열상을 입었다. 선원들은 모두 지쳤고, 놓친 물고기 때문에 속상해하면서도 사무엘을 걱정했다. 에니스는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났는지 아예 입을 닫아 버렸다.
나는?
내게 더 이상 날개는 없었다.
내 새들의 길을 보여주던 빨간 불빛이 폭풍의 콧바람에 날려 햇빛도 닿지 않는 저 깊은 바다 아래로 끌려 내려가 사라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처럼.
--- p.177
나는 바다에 누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가장 큰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게는 고향을 그리워할 자격이 없었다. 내가 늘 필사적으로 떠나려고 했던 것들을 그리워할 자격이 없었던 나였기 때문이었다. 사랑은 할 수 있지만 머물지 못하는 부류의 존재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게 마땅하겠지.
--- p.211
영상이 재생되고 스크린에 크게 비쳤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갑작스레 비친 크고 하얀 영상 때문에 잠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부셨다. 그리고 다시 보이기 시작했을 때, 눈앞에는 진홍색 부리를 가진 눈처럼 하얀 수백 마리의 새들이 우아하고 멋진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스크린에 가까이 다가갔다.
“북극제비갈매기예요.” 나일이 말했다. 그는 새들의 기나긴 여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들의 생존 방식과 그를 위한 도전정신에 대해서 설명해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새들을 따라가 보고 싶어요.”
“새들의 여정을 따라서요?”
“네,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어요. 새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에 대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심장이 마구 뛰었다. 갑자기 활력이 샘솟으면서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함께해요.”
“정말 같이 가고 싶어요?”
“바로 갈 수 있는 거죠?”
그가 웃음 지었다. “글쎄요. 일을 해야 하니까…….”
“이게 당신이 할 일이에요.”
“재정지원도 신청해서 받아야 하고, 그러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나는 애써 실망감을 숨기고 다시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갈 거예요, 프래니. 언젠가는 꼭. 약속해요.”
그는 전에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에도 가지 못했다.
--- pp.285~286
“선장은 반드시 이 시련을 이겨낼 방법을 찾을 거예요.” 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는 강한 사람이니까요.”
아닉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강하면 강할수록 세상은 더 위험한 법이죠.”
--- p.308
엄마는 늘 내게 말하곤 했다. 바다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멍청이밖에 없다고. 나는 그 말을 품고 살아왔다. 하지만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두려워할 필요도 없잖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내가 바다를 두려워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숨 쉬고 내 심장이 뛰는 한, 모든 순간 바다를 사랑했다.
--- p.327
지금 이렇게 배에서 가장 높은 이곳에 앉아 있자니 그 수많았던 밤들 중 한 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내 몸의 일부라도, 내 살과 피, 심장마저도 내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할머니를 곁에 두고 서 있던 그 밤으로, 나를 분노하게 하고 혼란스럽게 만들던 할머니 곁으로, 속을 알 수 없어서 쉽게 다가갈 수 없었지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를 사랑해 준 내 할머니 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는 지독한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미처 그 사랑을 보지 못했다.
--- p.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