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인심이 각박해지고 이기주의 성향으로 흐르다 보니 사랑도 그리 변하는가 봅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의 사랑관이, 받는 만큼 줄 거라고들 한답니다. 아니 주는 사랑이 없는데 받는 사랑만이 있을 수 있나요. 아파트 물탱크(옥상 저수조)에 물이 없는데 수도꼭지 튼다고 물이 나오나요. 그 저수조에 물이 차야만 물이 나오지요. 그 물이 바로 부부의 사랑이랍니다. 그래 그 사랑을 마시고, 씻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사는 것이지요. 사람의 몸은 70%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지요. 그물이 바로 사랑이랍니다.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의 원천. 그래 진솔한 사랑을 하게 되면 상대의 잡티는 하나도 안 보이고 좋은 점만 크게 보이며,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포용하게 된답니다. 지구라는 별에 태어나서 이러한 사랑을 한 번쯤 해보고 떠난다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요.
--- pp.14~15
이곳 함백산 기슭은 겨울이 6개월이라는 말이 있답니다. 그만큼 겨울이 길지요, 그래 5월이 지나야 겨울이 갔구나 생각된답니다. 봄이 오면 제일 먼저 개나리가 피고 목련에 진달래, 철쭉이 피고는 다음에 쥐똥나무꽃이 피지요. 쥐똥나무 꽃향기가 기가 막히게 좋아, 향기 나는 쪽을 살펴보면 쥐똥나무 잎새에 가려진, 총총히 모여 앉은 아주 작은 꽃잎새들을 만나게 된답니다. 열매들이 쥐똥만 하게 작아서 쥐똥나무꽃이라 이름이 붙여졌답니다.
필자 생각으로는, 꽃이 너무 작아 쥐똥나무 잎새에 가려져 자신들의 모습이 사람들의 눈에 들지 못하니, 향으로 사람의 눈길을 끌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아마도 기막힌 향을 뿜어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게도 된답니다. 자신들을 가리고 덮어 사람들 눈에 못 들게 되는 잎새들을 원망이나 탓하지 않고, 스스로 기막힌 향을 내뿜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저 쥐똥나무 꽃잎들의 지혜로움에 탄식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쥐똥나무꽃의 지혜로움이 바로 행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면서 말입니다.
그러고는 어느 날인가 향이 씻은 듯 사라져 코를 벌렁거리며 쥐똥나무 속을 살펴보면 언제 피었다 졌는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답니다. 아주 짧은 시간, 잠시 왔다 가면서 사람들을 그리 기쁘고 즐겁게 해주고는 자취 없이 사라지는 저 작은 꽃잎새들…. 내년 봄이 돼야만 다시 쥐똥나무의 기막힌 꽃향기를 맡게 되겠지요.
--- pp.163~164
집사람이 살아생전, 함께 서울에 각자 볼 일이 있어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서 내려 내일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답니다. 다음 날 만나기로 한 시간에 필자는 일찍 도착해 상품매장들을 구경하는데 아주 예쁜 반 부츠 겨울 털신들이 진열돼 있어서, 손을 넣어보니 바닥까지 털들이 깔려 있어 아주 따뜻하더군요. 강원도는 눈도 많이 오는데 집사람이 이걸 신으면 참 따듯해서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집으로 왔지요. 딸아이가 차려준 저녁 밥상에서 반주를 하면서 내 털신 이야기를 했더니 그 사람도 털신을 신어 보았는데 참 따뜻한 게 좋더라고 하더군요. 그래 당장 내일 태백에 가면 그런 털신들이 있을 테니 함께 가서 사자고 했지요.
아침에 일어나 그 사람 방에 들어가 보니, 새벽부터 화장을 하고는, 거울을 보며 안 하던 귀걸이를 하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당신은 주렁주렁한 귀걸이가 좋아?” 하며 묻기에 “아니 당신 지금 한 그런 귀걸이가 좋아! 그런데 안 하던 화장에다 귀걸이를 하고 왠일이셔?” 하니 “당신 내 간병 하느라 여간 힘들지 않을 텐데, 내 발시려운 것까지 신경 써주는 당신이 너무 고마워서 밤새 잠 못 자고요, 오늘 함께 태백 가려고 예쁘게 화장을 해봤어요!” 한다. 태백 가서 신을 사고 직접 갈아 만든 순두부를 먹고 오는 길에 그 사람이 다리를 들어 신발을 자꾸 내려다보면서 “여보 고마워. 지금 나 너무 좋아요!”라 하던 그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한데… 당신 떠난 지가 벌써 1년, 신발장 위 털신은 쓸쓸히 앉자 이제나저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있나 본데….
--- pp.204~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