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조언하지만 돈이 넘쳐서 아무 집이나 고를 형편이 아니라면, 견딜 수 있을 만큼 작은 집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방 3개가 꼭 필요한 집은 아이 성별이 다른 세 자녀가 있는 가구 정도다. 냉정히 말해서 신혼부부에게 방 3개짜리 집은 불필요하다. --- p.33
많은 사람들이 복지 제도의 수혜를 입으면 처음에는 급한 불을 끈 것 같아서 감사한 마음을 갖지만, 점점 익숙해지면 말 그대로 타성에 젖어서 그 도움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발전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지점은 정말 위험하다.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말이다.
복지는 모두 알다시피 세금으로 진행이 되고, 재원은 언제나 한정적이다. 그런데 도움을 받던 사람이 형편이 나아졌는데도 졸업하지 않고 계속 혜택을 받으려 한다면, 그 세금이 들어간 경제적 사회적 효과도 얻지 못하고, 새로운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그 도움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만다. 그러므로 영구적인 도움이 필요한 특별한 케이스 외에 복지라는 지붕 안에 들어와 계신 분들은 폭우가 그치고 소나기 정도만 오고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 말 그대로 처음부터 자립해야겠다는 의지와 방향성을 갖고, 복지에 승선해야 한다. --- pp.53~54
이사를 한 첫째 날 밤은 남편과 둘이 집 정리를 하고 다음 날 할머니 집에 맡겨두었던 첫째를 집에 데려왔다. 집에 가자고 하면서 처음 보는 주차장에 내리니 아이는 ‘이게 뭐지’ 하는 표정으로 눈이 동그래졌다. 남편이 아이를 안고 들어와 거실에 내려놓았다. “이사를 갈 거야. 더 넓고 깨끗한 집일 거야”라고 21개월짜리 아이에게 계속 말해왔었지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첫째는 바닥에 깔린 자신의 뽀로로 매트를 본 순간 깨달은 모양이다.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라는 사실을. 평소에는 항상 조용하고 담담하고 큰 리액션이 없는 아이였는데, 방방 뛰면서 집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 모습을 본 남편과 나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 p.121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는 것은 충분치 않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어떤 단지는 단지 배치도를 보면 괜찮은데, 앞뒤 단지 사이에 끼어서 빛이 적게 들어오는 동도 있고 어떤 단지는 앞에 높은 건물이 올라가는 공사가 곧 시작될 예정인 단지도 있다. 집을 사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깐깐하게 따지냐고 할 수 있지만, 59형은 국민임대도 장기전세도 최소 억 단위의 보증금을 낸다. 나는 임대주택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공짜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불하고 있는 돈이 나에게 최대한의 가치를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고생을 조금 더 하는 것뿐이다. --- p.162
나는 임대주택을 사다리 혹은 물에 빠진 사람에게 던져줄 수 있는 밧줄이라고 표현한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나는 분명 국가의 예산이 들어간 혜택을 받고 있고, 이것에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있다. 내가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 어느 부분이든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작은 바람이 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자신에게 맞는 제도를 알게 된다면, 조금은 그 일을 이룬 것 같아 기쁠 것 같다. --- p.185
나는 계속 더 좋은 집을 찾아서 이사했던 것이 아니다. 이사를 간다고 하면 다들 “왜 이사 가? 그 집이 더 좋아?”라고 물으시는데, 내가 가진 금액 대비 내가 살아온 모든 집은 다 좋았다. 심지어 신도림 미성아파트도 그렇게 느꼈다.
가정을 꾸리고 관계가 성숙해가면서 각 시기별로 요구되는 점이 달라졌기에, 그것에 맞는 이사를 계획했을 뿐이다. 집은 내 집이라고 하지 않는다. 내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집은 늘 우리 집이라고 표현한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의미 있는 행복한 우리 집. 우리 집이 자가면 더 좋겠지만, 자가면 우리(은행) 집이 되니까. (웃음) --- p.210
마곡뿐 아니라 공공분양이 시행된 단지들의 특징이 있다면, 처음에는 분양 세대나 국민임대, 장기전세 세대나 자산이 비슷했는데, 빚을 낸 사람들은 자산이 급속도로 불어났고 빚을 내지 않고 소득을 모아 저축했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졌다는 사실이다.
천왕에서도 2억 5천 하던 집이 4억으로 변모하는 것을 보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 생각에는 저 가격에 집을 사는 것은 정말 미치지 않고서는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소셜 믹스로 임대주택에 살던 많은 분들은 “그때 샀어야 하는데, 빚 안 지려고”라는 말을 정말 많이 반복했다. 자산은 비슷했지만, 빚을 내지 않고 성실히 살아보려 했던 사람들의 외마디였다.--- pp.226~227
“임대주택 준비, 어떻게 해요?”라고 물어보시는 분들에게 내가 드릴 수 있는 교과서적인 답변은 이것이다. “SH 도시주택공사, LH, 마이홈 웹사이트를 즐겨찾기 하시고 매일 출근 도장 찍으세요! 공고문을 읽는 것보다 좋은 공부는 없습니다.”
한참 상담을 해드리고, 얼마 뒤에 다시 연락이 오기도 한다. 신청기한을 놓쳐서 못했다고 말이다. 그러니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 하는 것이다. --- p.256
나는 앞으로도 또 다른 이사를 할 것이고, 어디 출신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그룹을 짓거나, 내 바운더리를 좁히지 않을 것이다. 여기저기 살아본 것도 나름의 경쟁력이라고 보듬어 보련다. 이사는 가난하기 때문에 다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집은 어디에’라는 질문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남을 질문 중에 하나임이 틀림없다. 몸은 흙에서 왔고, 영혼은 하늘에서 왔으니.
--- p.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