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재면아!
할머니의 기도는 언제나 같다. 진흙이 연꽃을 더럽히지 못하듯이 세상잡사 궂은일들이 네 옷깃에 스치지도 말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그것이 과한 욕심인 줄 알면서도 할머니는 그 기도를 멈출 수가 없다. 그런 마음이 이 세상 모든 할머니들의 마음이란다.
_1월 27일
재면아! 스무 살까지의 노력과 연마가 그 이후 평생의 삶을 좌우하는 바탕이 된다. 누구나 겪어야 하는 그 과정을 웃으면서 활기차게 엮어가기 바란다. 할머니가 대신 해줄 수 없어 안쓰럽기만 하구나.
_2월 7일
혹시 잘못 알려진 일로 오해를 받는다 해도 그대로 두어라.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니 남이 하는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밝혀지더구나. 진실이 아닌 말은 하찮은 쓰레기일 뿐이다. 언제나 자기 스스로를 믿고, 자기를 지키고, 너 자신이 너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_3월 3일
사랑하는 재면아!
신신당부하는 말이다. 평생 동안 책을 손에서 놓지 말기 바란다. 책만큼 네 인생을 빛나게 하고 알차게 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흔히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것은 변명 중에서 가장 치졸한 변명이다.
_4월 10일
친구는 제2의 자기(自己)라는 말도 있고, 가장 훌륭한 친구는 착한 일을 서로 권하는 관계라는 말도 있다. ‘친구란 두 육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는 말은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나타내는 말이다. 할머니는 재면이가 품위 있는 친구와 사귀기를 바란다.
_5월 10일
재면아! 넌 어떻게 이 세상에 왔지?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왔다. 그럼 아버지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통해서 왔다. 그게 역사인식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어제, 오늘, 내일은 함께 흐르는 물줄기다. 그 인식이 역사의 흐름이고, 역사의 중대성이다.
_6월 23일
말로 사람을 쓰러뜨린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혀에는 뼈가 없지만 ‘세 치 혀로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지 않느냐. 그처럼 말은 무서운 것이니 상대방에게 할 말이 있으면 (좋은 말이 아닌 충고나 부탁의 말) 오늘 생각한 후에 다음 날 얘기해도 늦지 않으니, 늘 신중해야 한다. 말을 가려서 하고, 삼가할 줄 아는 사람이 말을 잘 하는 사람이다.
_7월 12일
사랑하는 재면아!
매일매일 운동을 하면 근육이 단련되어 몸이 건강해진다. 마찬가지로 날마다 자신의 내면을 단련시키면 정신이 강건하게 되어 자기가 뜻한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_8월 7일
재면이가 이 세상에 온 후부터 할머니는 감탄과 사랑과 즐거움으로 살고 있다. 오늘이 할머니 생일인데, 재면이가 보내준 카드와 선물과 녹음된 테이프를 받고 할머니는 온 세상을 다 얻은 양 행복했단다. 할머니의 가장 큰 기쁨은 재면이를 사랑하는 일이다.
_9월 4일
어렸을 때의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고치기 어렵다. 할머니의 한 가지 걱정은 재면이가 잠을 안 자려고 하는 데 있다. 뇌가 쉬지 못하면 큰 병이 생긴다. 눈을 뜨면 무슨 생각이든 하는 것이 뇌인데,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_10월 2일
재면아! 언제나 너의 능력을 과신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협동하고 분업하는 사회적 의미를 깊이 깨닫고 그 실천에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 ‘모기도 수천만 마리가 모이면 천둥소리를 내고, 거미줄도 만 겹이면 호랑이를 묶는다’고 한다.
_11월 9일
사랑하는 재면아! 1년만 읽고 꽂아두지 말고 해가 바뀌면 다시 또 읽고, 다시 해가 바뀌면 또 읽으면서 영원한 할머니의 정다운 속삭임이라 여겨다오. 할머니가 쓴 글에 쓴약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아마 너의 앞길을 여는 보약이 될 것이다. 이 글은 할머니의 가슴이고, 깊은 사랑이니, 뜻으로 읽어주기 바란다.
_12월 31일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