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우물가에 이르자 능수버들 그늘 아래서 먼첨 목을 축였다. 쭉 한 차례 돌아가며 마시고는 다시 또 한 차례 마시는 것이었는데, 보채는 애, 아직 젖도 떨어지지 않은 어린것에게도 물을 먹 이는 것이었다. 나지도 않는 젖을 물리느니보다 이것이 나을 성싶은 모양이었다. 다음에는 부르트고 단 발바닥에 냉수를 끼얹었다. 이것도 몇 차례나 돌아가며 끼얹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다 끝난 다음에도 애들은 제 손으로 우물물을 길어 얼마든지 발에다 끼얹곤 했다. 그러 나 떠날 때에는 여전히 다리를 쩔룩이며 북녘 산목을 넘어 사라지는 것이었다.
저녁녘에 와 닿는 패는 마을서 하룻밤을 묵는 수도 있었다. 그럴 때에는 또 으레 서산 밑에 있는 낡은 방앗간을 찾아 들었다. 방앗간에 자리 잡자 곧 여인들은 자기네가 차고 가는 바가지를 내들 고 밥 동냥을 나섰다. 먼저 찾아가는 것이 게서 마주 쳐다보이는 동쪽 산기슭에 있는 집 두 채의 기와집이었다. 그리고 바가지 든 여인의 옆에는 대개 애들이 붙어 따랐다. 그러다가 동냥 밥이 바가지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바가지 든 여인들은 이따 어른들과 입놀림을 해 봐야지 않느냐고 타이르는 것이었으나, 두 기와집을 돌아 나오고 나면 벌써 바가지 밑이 비는 수가 많았다. 이런 나그네들이 다음날 새벽 동이 트기 퍽 전인 아직 어두운 밤 속을, 북녘으로 북녘으로 흘러 사라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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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려도 목(다른 곳으로 빠져 나갈 수 없는 중요한 통로의 좁은 곳)을 넘어야 했다. 남쪽만은 꽤 길게 굽이돈 골짜기를 이루고 있지만, 결국 동서남북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어디를 가려도 산목을 넘어야만 했다. 그래 이름 지어 목넘이 마을이라 불렀다. 이 목넘이 마을에 한 시절 이른 봄으로부터 늦가을까지 적잖은 서북간도 이사꾼이 들러 지나갔다. 남쪽 산목을 넘어오는 이들 이사꾼들은 이 마을에 들어서서는 으레 서쪽 산 밑 오막살이 앞에 있는 우물가에서 피곤한 다리를 쉬어 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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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신둥이 개는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더니 간난이 할아버지는 금세 미소를 거두며, 그해 첫 겨울 어느 사녕꾼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 그후로는 통 보지를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연한것을 물어 보았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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