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컵을 들고 태민의 곁으로 다가와 태민을 일으켜 세우던 성주와 잔뜩 취한 태민의 눈이 마주쳤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
“채원아.”
성주를 향해 갑자기 다가오는 태민은 성주를 붙잡고 키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성주를 침대에 눕힌 채, 두 손으로 성주의 옷을 풀어헤쳤다. 당황한 성주는 태민을 황급히 제지했지만, 술에 취한 태민의 힘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느새 태민의 손은 성주의 온몸을 매만졌고, 그 손길에 간간이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에 민망해진 성주는 두 입을 꾹 다문 채 그 소리를 참아냈다. 태민의 손길이 빨라질수록 태민의 입에선 다른 사람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채원이……. 성주가 아닌 채원이라는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성주를 탐했다.
사랑이 깊어 갈수록 태민의 입에서는 더욱 간절하게 채원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나…… 주성주예요…….”
아무 의미 없는 말이었다. 화가 나서, 그가 미워서가 아니라 그냥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낮은 음성으로 자신을 알려주자 태민이 성주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의 눈 속에 비친 사람은 주성주 자신인데, 왜 자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지. 태민의 눈에는 이미 성주가 아닌 채원이었다. 태민은 성주를 바라보고 있어도 채원을 불렀다. 그의 속삭임이 계속 될수록 성주는 그를 밀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그러지 못했다. 그가 너무 아프게 그 여자를 불러 대서. 이렇게라도, 이 남자의 하루, 아니 단 몇 시간 강채원이 되어 상처를 만져주고 싶다. 바보 같게도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 강채원……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아…….”
태민은 자신의 눈앞에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채원을, 아니 성주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자, 눈에선 눈물이 소리 없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성주는 자신의 얼굴에 흐르는 태민의 눈물에 성주는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그의 눈물을 쓸어 주었다.
“아파하지 마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태민이 성주의 가슴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의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가슴에 가 닿았다. 따뜻한 숨결이 가슴 끝을 짜릿하게 간질인다. 아찔한 그 감각에 성주의 입에선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 나왔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이 기분 좋은 감각만, 지금 이 남자의 숨소리만, 이 공간만 떠오를 뿐이다. 그의 입에선 연방 주성주가 아닌 강채원이란 이름이 흘러나오자, 성주는 그의 입을 자신의 입으로 막아 버렸다. 더는 듣고 싶지 않다, 그 이름. 자신을 강채원으로 생각해 안는 것이라고 해도, 지금 이 감각을 느끼는 건 자신이고, 더는 그 이름을 용납하기 싫어졌다. 자신이 아는 한 이 남자는 강채원이 아니라 주성주와 사랑을 나누는 중이니까.
차갑고, 시린 새벽이 다가오자 선선한 바람에 성주가 먼저 눈을 떴다. 어제 밤 흔적을 보여주듯,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과 태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디 하나 빠진 것 없는 잘난 남자.
아닌 척했지만 이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일주일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우쭐했었다. 어떻게 우쭐하지 않을 수 있겠나. 이렇게 대단하고 잘난 남자의 부인이 되는데. 명목상이긴 하지만. 그래서 산하에게 채원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어쩌면 1년이 결혼생활의 전부가 될 수도 있단 말에 콧방귀를 뀌기도 했었다. 1년 동안 나를 버리고 싶지 않은 여자로 만들어 버리면 그뿐 아닌가 싶은 그런 욕망에.
정말 바보였다, 주성주는.
장태민이란 남자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남자를 떠난 후 자신에겐 무엇이 남게 될까? 그토록 바라는 돈? 윤 여사가 거머쥔 그런 권력? 그것도 아니라면 비운에 왕세자비 다이애나처럼 이혼당하고 많은 사람들한테 동정표를 받게 될까?
저것들이 과연 자신에게 주어질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남게 될 것 같다.
이 남자를 떠나보내면, 그때 더 사랑하게 될 이 마음.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