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깝고 소중하기에 습관적으로 판단하고 단정 짓는 존재가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닐까 싶다. ‘나는 첫째니까’, ‘나는 딸이니까’, ‘나는 선배니까’, ‘나는 ○○이니까’ 하고 수도 없이 많은 굴레를 나 자신에게 덮어씌웠다. 역할, 위치, 성향에 따라 나를 쉽게 판단하고 규정하려 했다. ‘나는 끈기가 없으니까’, ‘나는 호기심이 많으니까’, ‘나는 유혹에 약하니까’…. 내가 나를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며 습관적으로 내뱉었던 문장들 속에 얼마나 많은 내가 갇혀버렸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아찔하다.
--- 「내가 나를 잘 안다는 건 착각일 뿐」 중에서
언제나 불행과 불만은 힘이 세고, 몸집이 크고, 시끄럽다. 그래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자꾸 불행과 불만 쪽으로 기운다. 그러다 보면 더 중요한 요소들, 예를 들어 몸이 아프지 않다는 것, 아끼는 사람들이 별 탈 없이 잘 지낸다는 것,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내 마음이 잘 버텨주고 있다는 것을 잊는다. 내가 ‘무사’하다는 것에 대해 나는 너무 무심하다. 그렇게 무심한 내가 다그치듯 뱉어내는 그 질문, ‘이대로 괜찮을까?’의 포인트는 ‘이대로’에 찍혀 있다. 변함없이 이 모양으로 살게 되어도 넌 괜찮겠냐는 질문. 여기서 멈출까 봐, 바뀌지 않을까 봐, 나아지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는 질문. 그건 나뿐만 아니라, 언제나 ‘더 나아져야 한다’라는 메시지를 주입받아온 우리 모두가 쉽게 걸려 넘어질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 「이대로 괜찮을까? 불안해질 때」 중에서
회사 일이란 연차가 올라갈수록 ‘내가 잘한 일’에 대해서 얼마나 잘 정리하여 전시하는가가 중요한 법이다. 자기 자랑을 세련되게 하는 일도, 자신감을 셀프로 충전하는 일도 능력이다. 그걸 몰랐던 나는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을 보면 마음속으로 몰래 ‘뻔뻔한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다. 화려한 꼬리를 활짝 펼쳐대며 으스대는 게 꼭 공작새 같아 보였다. 물론 과하면 독이 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사실 일을 잘하는 사람에겐 자신이 해낸 성과가 좋은 평가로 이어질수 있도록 적절히 자신을 전시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능력을 갖추기 위해선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했다.
--- 「절대로 자신을 평가절하하지 말 것」 중에서
나이 들수록 칭찬과 응원, 위로가 필요한 순간은 많아진다. 그건 부모님이나 지인의 죽음처럼 커다란 일일 수도 있고, 늦어지는 취업처럼 사회적인 일일 수도 있으며, 인간관계나 재정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크게 혹은 작게 무너질 것이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우리를 지탱해준다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못하는 순간이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때도 분명 생길 것이다. 그때를 위해 여러분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셀프 칭찬을 준비해두면 좋겠다. 웃으며 자신에게 말해보는 거다. “나 정도면 괜찮잖아?” “뭐, 이 정도면 괜찮지.”
--- 「내가 어때서? 나 정도면 괜찮잖아!」 중에서
서툴고 조금은 엉망일 때도 있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일어서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니 이런저런 실수와 잘못으로 넘어진 나 자신을 조금 더 쉽게 용서해줘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미움받을 용기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건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스스로가 재빠르게 내민 손을 잡고 씩씩하게 툭툭 일어서야 내일을 맞이할 수 있을 테니.
--- 「재빠르게 나를 용서할 줄 아는 용기」 중에서
걱정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금껏 걱정이 나를 신중하게 만들어줬다.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하게 했고,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나의 문제는 걱정 자체라기보다, ‘너무 많은 걱정’을 ‘한꺼번’에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브레이크 문구를 만들어냈다. 걱정이 현재를 앞질러 너무 미래로 갈 때, 오만 가지 걱정이 한꺼번에 나를 덮칠 때, 입 밖으로 몇 번이고 반복적으로 되뇐다.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하나씩.”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일, 그 단 한 가지만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하나씩」 중에서
아무리 겸손이 미덕이라지만 자꾸 그렇게 대응하면, ‘겸손하고 좋은 사람이군’ 하는 긍정적 평가보다 자신감 없다는 느낌을 주거나 더는 칭찬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안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자기 최면처럼 그런 말이 내 무의식에 자리 잡을 수도 있을 테고. 그래서 더 이상 이러지 말자는 의미에서 친구들과 ‘아니에요 안 하기 운동’을 선포했다. 누군가 칭찬을 해줬을 때, 대답이 좀 느려지거나 버벅거려도 괜찮으니 “아니에요”라는 말만은 먼저 하지 않기로. 그리고 그걸 서로 공유하기로 했다.
--- 「‘아니에요’ 안 하기 운동」 중에서
어떤 물건이든, 선물은 선물이 된다. 결국은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인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된다.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여전히 관계에 서툰 나지만, 선물을 주고받는 일을 통해 애정을 주고받는 연습을 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마음이든 물건이든 더 많이 주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래오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이고 싶다. 엄마 말대로 이미 나는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받고 있을 것이므로.
--- 「서로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