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챔버 아이들과 연습을 하다 보면 곡이 한 박자가 아니라 아예 한 마디씩 벌어져서 피아노와 따로 노는 일이 예사였다. 지휘하면서 ‘오~ 마이~ 갓~!’을 속으로 외칠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아이들은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해 멋진 연주를 해냈다. 성령님의 이끄심이 아니면 설명하기 힘든 일이었다. 우리의 공연을 듣고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고, 선생님들을 칭찬하고, 아이들을 칭찬할 때, 나는 정말 할말이 없다. 모든 일은 정말 하나님이 하셨기 때문이다.”
- 서문 중에서
자폐증이 있는 지영이는 처음에 몹시 거칠었다. 활 긋는 것도 거칠어서 바이올린을 켜는 것이 아니라 마치 칼로 무를 써는 것 같았다.
“지영아, 활 부드럽게!”
지영이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무리 말해도 활은 차분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영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것을 활용하기로 했다.
“지영아, 색칠하듯이 둥글둥글하게 해보세요!”
지영이 어머니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될 텐데’ 하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꿋꿋하게 다시 말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영이는 여전히 활을 위 아래로 삐쭉삐쭉하게 그어댔다. 연습이 끝나고 지영이 어머니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지영이는요, 색칠도 거칠게 하거든요.”
지영이가 어떻게 하면 활을 부드럽게 그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나는 결국 말로 가르치려는 모든 시도를 깨끗하게 포기하는 데서 출발하기로 했다. 여러 번 말하고, 강조해서 말하고, 큰소리로 말하는 것들을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내가 정말 아이들의 성장을 원하는 선생이라면,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내가 사용해 온 언어와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를 따라오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내 방식을 바꾸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그때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다. 우선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만져서 내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활을 부드럽게 쓰세요”라고 말하는 대신에 손가락으로 지영이의 손등을 가볍게 터치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영이가 그 사인을 금방 알아듣고 활을 부드럽게 긋기 시작했다. 천사가 매직가루라도 뿌린 것일까? 함께 있던 지영이 어머니도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잘했어, 지영아!”
엄지를 치켜 들어주었더니 지영이도 기분이 좋은지 웃었다. 나는 그때 나와 지영이 사이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빗장이 열리자 그 사이로 빛이 스며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휴~ 살았다!
p. 170-171
드디어 마지막 순서. 전 출연진과 왕초보 꿈ing팀이 올라갔다. 그런데 연주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첼로 파트에서 문제가 생겼다. 새로 온 지원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 선생님이 얼른 다가가 지원이를 껴안다시피 해서 활을 잡아 주었다. 마침내 지원이가 안정을 찾아 차분해져서 내가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했다. 멀리서 보니까 지원이가 영상 화면에 푹 빠져 있었다. 휴, 한시름 놓았다.
연주회가 끝나자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했다.
“연주 도중에 소리 지르던 아이 때문에 더 큰 감동을 받았어요. 사랑챔버 아이들이 그런 줄 몰랐거든요.”
“아이를 퇴장시키지 않고 끝까지 함께 연주해 내시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지난 10년간 훈련받은 사랑챔버 아이들이 이렇게 가끔씩 본색을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 아이들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이렇게 성장해 준 아이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10주년 기념 콘서트를 마친 다음 연습 시간에 우리는 조촐한 감사 파티를 가졌다. 일단 연주했던 곡목들을 순서대로 한번 연주해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케이크도 먹고 서로 축하도 나누고 감사기도도 드렸다. 그런데 첼로를 하는 지원이 어머니가 어깨를 들썩이며 우셨다. 아마 연주회 때 지원이가 연주하다 말고 소리 지르던 일 때문인 것 같았다.
“어머님, 왜 우세요. 괜찮은데 왜 우세요?”
지원이 어머니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하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다들 괜찮다고 해서요. 그래서 울어요.”
지원이 때문에 연주를 망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했는데, 어머니들이 하나같이 끌어안으며 위로해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다 그렇잖아요. 괜찮아요.”
“우리 애도 그랬어요. 지난번에….”
지원이 어머니는 그 용납 때문에 울고 있었다. 사랑챔버는 바로 그런 곳이다!
10주년의 기적은 그뿐이 아니었다. 그 다음 모임에서 우리는 또 다른 기적을 맛보았다.
“혜신이 아버님이 지난 주일날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셨대요.”
그야말로 10년 만에 이루어진 일이다.
p. 241-242
지난 10년 동안도 그랬지만, 요즘도 때마다 새로운 곡이 떠오를 때면 새로운 악보를 준비하면서 가슴이 설레고 기쁘다.
주 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떵…
주님 우릴 통해 계획하신 일
부족한 입술로 찬양하게 하신 일…
'기대'란 곡이다. 은혜로 가득 찬 10년을 지나왔다. 또 다음 10년 동안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 얼마나 기대되는지. 우리는 새로운 악보에 도전하며 하나님이 우리만을 위해 계획하신 놀라운 10년을 다시 보낼 것이다.
더 크게 꿈꾸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작은 선교사로 쓰임받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이 우리를 단순한 연주단체이기보다는 선교사로 구별하고 싶어하신다는 걸 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기록한 주님의 마지막 계명인 지상명령(Great Commission)은 장애와 상관없이 우리 사랑챔버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분명하다. 사랑챔버 아이들과 어머니, 선생님 모두가 앞으로도 훈련을 받으면서 복음 전하는 일, 영혼 구하는 일, 치유와 회복과 생명 전하는 일을 감당하는 사랑 공동체로 영원히 함께하길 바란다.
p. 300-301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