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그랬어. 공부를 하다가 일을 하다가 이렇게 마루에 혼자 않자 있으면 너무 심심한 거야. 봐라, 시골이 참 심심해 보이지. 너무 심심하니까, 심심함을 피하기 위해 여기저기 무엇인가를 찾다 보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자세히 보인 거야. 새 벌레들, 물소리, 물 흐르는 모양, 벌레 우는 소리, 앞산 나무와 곡식들, 동부들이 씨를 뿌리고 가꾸고 거두고 또 노는 모습, 아무튼 너무 심심하니까 세상이 다 자세히 보인 거야. 자세히 보니까 생각이 일어났어. 그 생각들이 내 마음의 곡식 같아서 버리기가 아까운 거야. 그래서 그냥 글로 옮겨 써봤어. 그랬더니 시가 되었어. 어느 날 내가 시를 쓰고 있어서 나도 놀랬다니까. 정말 심심해서 그랬어. ---「심심해서 그랬어」 중에서
나뭇가지 하나에 찾아든 바람을 보라! 햇살을 보라. 가늘고 굵은 빗줄기를 보라. 그것들을 다 받아든 나뭇가지의 사랑을 눈치채는 일은 일상에서 시 몇 편을 얻는 일보다 크다. 자연은 나를 다스리고 가다듬게 하는 순간의 거울이다. 한 치의 거짓 없는 냉혹한 자기 거울을 갖고 살던 옛 선비들의 세상을 향한 티 없는 사랑이 그립다. 흘러오는 물과 잠시 머문 물과 흘러가버리는 물. 저기 마른 풀잎에 이는 한 줄기 소슬바람 결 곁에 서 있는 참나무 같은 그런 무심함이 그리운 시절이다. ---「소슬바람 곁에서」 중에서
우리가 꼭 이렇게 살아야만 할까요. 이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요. 우리는 지금, 나는 지금 제 길로 가는 것일까요. 바람 부는 나뭇가지를, 햇살 가득 담은 느티나무 잎을 한번 바라보면 안 될까요. 지금 손에 쥐고, 마음에 담고, 등에 짊어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두 손을 쫙 벌리고 두 눈을 살며시 감고 바람 속에 열 개의 손가락을 쫙 펴서 손가락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는 그 감미로운 바람의 자유를 한번 느껴보면 안 될까요. 지금 내 생각을 바람에 실어 보내버리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