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아름다움이란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준오 형 같은 사람도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고,
부라퀴 할아버지도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아름다운 분이잖아.
우리 학교에도 보면 다양한 아이들이 다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어.
마음씨 고운 아이, 운동 잘하는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
예능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
민성이 너처럼 남을 즐겁게 해 주는 아이…….”
--- p.243 「여학생을 구하라」 중에서
“오빠, 저 오빠랑 사귀고 싶어요.”
“……??”
동그랗게 눈을 뜨고 마주 보는 채린이의 얼굴에서 재석은 눈을 돌렸다. 맑은 눈망울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꼬맹이가 못하는 소리가 없다.”
“가볍게 말하는 거 아니에요. 저 오빠랑 좀 알고 지내고 싶어요.”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지금은 공부할 때야. 나 옛날에 일진이었을 때 애들 때리고 다니고 철없이 굴었는데 지금 굉장히 후회하거든. 지금 내가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 하겠다. 너 지금 고1이잖아. 대학도 가야 되고. 네가 이러고 다니면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야. 그리고 너처럼 예쁜 애가 왜 나 같은 남자한테 사귀자고 그래? 나중에 대학 가면 좋은 친구 많이 생길 텐데.”
채린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채린은 이내 마음을 수습하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담담한 얼굴로 다시 물었다.
“오빠, 혹시 보담 언니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 p.44~45 「채린의 등장」 중에서
“하하하하. 내가 얼짱신화를 그리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구나. 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아. 만화 주인공도 일단 잘생겨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겠어?”
“네, 그렇죠.”
“그 이유는 뭘까? 바로 우리가 어려서부터 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주입받으면서 살았기 때문이야. 웹툰을 그리면서 생각해 봤어. 여자애들은 무슨 인형을 좋아하지?”
“바비인형이나 마론인형이요.”
보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말했다. 이렇게 누군가와 진지한 대화를 할 때면 보담은 적극적으로 변했다. 그건 아마 타고난 지적 호기심 때문인 듯했다.
“맞아. 그럼 남자들은 무슨 인형을 좋아하지? 지아이조 같은 거 아니야?”
“네, 맞아요. 피규어 가지고 많이 놀았어요. 근육이 울퉁불퉁하죠.”
민성이 잘 안다는 듯 대답하자 박태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 인형의 과장된 남성미와 여성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아이조를 실제 사람으로 만들면 가슴둘레가 55인치, 팔뚝은 27인치, 허리둘레는 29인치인 남자가 된다고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몸매다. 또한 바비인형도 사람으로 만들면 가슴둘레가 36인치, 엉덩이둘레가 33인치인데 놀랍게도 허리둘레는 15인치라고 한다.
--- p.100~101 「얼짱신화」 중에서
자초지종은 이랬다. SNS에 올린 채린의 사진을 보고 처음에는 ‘좋아요’를 눌러 주던 친구들이 어느 순간 돌변해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과 협박성 댓글을 달았다고 한다. 친절하던 아이들의 변심에 충격을 받은 채린은 말수도 적어지고 불안해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채린을 면담실로 불러 상담을 했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 왕따였거든. 왕따였는데 다행히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고3 때야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 내가 훌륭한 교육자는 못될지언정 아이들이 다른 아이를 왕따시키는 건 못 참아.”
채린의 담임선생이 처음 보는 자신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하자 재석은 김태호 선생이 떠올랐다.
“근데 왜 ‘좋아요’ 눌러 주던 아이들이 갑자기 악플을 달았을까요?”
“나도 그게 의문이었어. 그래서 SNS를 채린이와 함께 봤는데, 채린이는 이미 알고 있더라고. 보경여고의 일라이자 아이들이 이렇게 하라고 시켰다는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채린이랑 친한 친구 하나가 몰래 얘기해 줬다고 하더라. 채린이 SNS 친구들한테 단체로 문자를 보내서 채린이한테 악플 안 달면 재미없을 줄 알라고 했대. 대신에 악플 달면 안 건드린다고. 그래서 그 친구도 소심하게 악플을 하나 달았던 모양이야.”
학교폭력은 이런 식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 p.164~165 「여자들의 싸움」 중에서
“야! 웹툰 얼짱신화에 내가 나온대!”
“그래? 어디 한번 보자, 보자.”
민성이 재석이의 새 노트북을 가동도 할 겸 부팅한 다음 와이파이를 연결해 웹툰을 찾아 들어갔다. 웹툰에 멋있는 고교생 하나가 등장했다.
- 뚜둥!
- 너희들 내 이름 안 들어 봤냐? 내가 바로 까칠한 재석이다.
“꺄!”
병실에 있는 아이들은 모두 비명을 질렀다. 손발이 오글거린다며 여자애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와! 이렇게 잘생겼어?”
“이게 재석이라고? 말도 안 돼!”
“이건 테러야!”
그러면서 아이들은 스크롤을 하며 웹툰을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민성은 배가 아파서 죽으려고 했다.
“아! 박 선배님이 왜 나는 안 넣어 준 거야.”
“보담이랑 향금이, 민성이 너희들도 곧 다 나올 거야.”
재석은 사실 메일로 주위 친구들의 성격과 외모, 그리고 사진 등등을 박태원에게 소재로 제공했는데 그것이 웹툰으로 나오기 시작한 거였다. 주변에 있는 재석이가 이렇게 웹툰의 주요 인물까지 되는 걸 보며 아이들은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 했다.
--- p.232~233 「모두 다 아름답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