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장, 가구들과 특징적인 활동을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대장장이와 조각가의 작업장 같은 곳들은 시끄럽고, 더럽고, 위험한 일이 빈번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직조공의 작업장 같은 곳에는 크고 비싼 장비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제화공의 작업장은 바울이 일했던 곳들과 아주 비슷하여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제화공 필리스코스는 부지런히 바느질하면서도 누군가 큰 소리로 책 읽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작업장에서는 작업만이 아니라 제품을 고객들에게 파는 것과 관련된 일과, 때로는 수습공을 가르치는 일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적어도 아주 조용한 작업장에는 오로지 앉아서 이야기하려고 가게에 들어 온 다양한 사람 간의 대화가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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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로 견유철학자들이 사용하긴 했지만, 제화공이나 가죽작업 노동자의 작업장을 포함해서, 작업장이 지적 토론을 위한 전통적인 사회적 장소로 인정받았다고 확언할 수 있다. 때로 철학자는 장인이기도 했으며, 그들의 작업장은 철학 토론이 벌어지는 장소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도 그가 일하던 천막제작소를 이와 비슷하게 사용했을 수 있을까? 즉 바울이 이런 작업장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내 대답은 확실히 “그렇다”이다. 본질적으로도 그렇게 사용했을 법하다. 상대적으로 가죽작업장이 조용하다는 점, 바울이 많은 시간을 작업에 보냈다는 점,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개종하는 사람을 얻는 일에 바울이 전적으로 헌신했다는 점, 그리고 바울이 견유철학 전통에 여러모로 동정적이라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바울이 동료 노동자들, 손님들, 그리고 그 작업장에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과 토론할 때 복음이라는 주제를 꺼내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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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두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바울은 천막장이 바울천막장이 바울이었다. 그의 생업은 그의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수습생이었던 때부터 그리스도의 선교사로 살았던 시기 전체에 걸쳐서, 일출 전부터 하루의 대부분 동안 바울은 천막장이였다. 결과적으로 그의 생업은 그의 일상 경험과 사회적 지위를 상당부분 결정지었다. 그의 삶은 아굴라, 바나바, 그리고 아마도 야손을 포함한 자기의 장인-친구들의 작업장 인생과 아주 흡사했다. 가죽, 칼, 송곳, 피곤한 일, 노예처럼 작업대에 몸을 굽히고, 노예들과 나란히 앉아서 일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또 스스로 보기에도 노예 같고 굴욕적으로 느끼고, 장인의 비천한 신분으로 인한 고통과 그로 인한 모욕과 학대가 그가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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