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는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것, 문학과 철학, 책과 예술작품, 여러 언어와 민족을 사랑했다. 그리고 더욱 숭고한 과제인 교화를 위해 모든 인류를 차별없이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이 땅에서 단 한 가지만을 이성에 반하는 것이라며 증오했다. 그것은 광신이었다.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비광신적인 사람, 아마도 가장 높은 등급의 정신은 아니더라도 가장 폭넓은 지식, 결코 요란하지 않은 관용의 마음, 진정 성실한 선의의 마음 자체였던 에라스무스는 모든 형태의 편협한 성향에서 우리 세계에 유전되는 질환을 인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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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에도 정주하지 않았고 머무는 곳은 모두 고향으로 알고 지낸, 최초의 의식있는 세계주의자이자 유럽인이었던 그는 결코 다른 나라에 대한 어느 한 나라의 우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모든 국가와 인종, 계층으로부터 선별한 고결한 사람들을 커다란 교양인 공동체로 불러모으는 것, 이 숭고한 시도를 그는 자기 삶의 본래 목표로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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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의 개인적 비극은 모든 인간 중에 가장 비광신적이고 반광신적인 바로 그가, 초국가적 이념이 승리를 확신하며 처음으로 유럽을 밝게 비추던 바로 그 순간에, 역사가 알고 있는 한 가장 난폭하게 터져나온 국가 종교의 대중적인 열광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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