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의미에서 불행에 대해 말하고 기록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가끔은 ‘나를 괴롭히며 쓰는 글이 타인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든다. 하지만 내게는 이 글을 통해 세상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그 모든 일들을 겪어왔지만, 그럼에도 내가 살아온 세상은 따뜻했다고. 눈물 나게 불행한 시절도 있었지만, 가슴 벅차게 감사한 순간들도 많았다고. 그러니 당신들도 살아 있으라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냥 살아만 있으라고. 그러다 보면 가끔 호사스러운 날들도 경험하게 될 거라고. 이 말을 하고 싶어 쓰는 것이다. 다른 것은 없다.
---「제1장_생존의 기억」중에서
요즘은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자꾸만 욕심이 난다. 내가 겪은 사고 이후의 고통을 생생하게 잘 적어 놓으면, 이를 모르고 살던 수많은 사람이 참사가 주는 비탄이 어떤 것인지 공감할 테고 그러면 건물이 되었든 배가 되었든 그 일을 하는 엔지니어들은 설계도면을 한 번이라도 더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시행사와 시공사도 안전 규정을 준수하고, 감리기관은 꼼꼼하게 관리 감독할 것이며, 해당 공무원은 인허가 기준을 확실히 세우고, 국가기관은 재난 대처방안에 대해 더욱더 많은 연구를 해 대응방안을 낼 테고, 사법부는 선례로 남을 피의자들의 판결을 지금보다 더 신중한 자세로 내릴 테니까. 그렇다면 정말 앞으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안전해질 테니까. 잘하면 이를 통해 시민사회는 돈이 된다 해도 나쁜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사람이고, 이 세상에 작업자의 목숨보다 비싼 기계는 없다는 것과, 사랑하는 이의 목숨은 돈 얼마에 결코 등가교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제1장_생존의 기억」중에서
지금 앓고 있는 불안과 우울이 전부 ‘삼풍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이 내게 이토록 영향을 미친 것은, 당시에 내가 그 사고를 통해 원 없이 망가질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들을 전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스무 살이라는 나이, 부상 정도, 사고 당시까지의 개인적인 경험, 유전적 성향이나 기질, 가치관까지. 이 모든 것들이 전부 맞아떨어졌기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이제 나는 그 일에 더는 억울하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 내게 만약 그 일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만큼 오래 아팠을 것 같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답해줄 수 있다. 그렇다. 그런 일을 겪는다고 해서 누구나 나처럼 아프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분명히 말할 수 있다. 1995년 6월 29일 이후로 내 세계관은 완벽하게 뒤바뀌었다고, 그런 이유에서 이 세상에 둘도 없는 악인이라 해도 나처럼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이런 슬픈 역사는 두 번 다시 우리 사회에서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제2장. 고통이 가져다준 선물들」중에서
나는 차가워 봐서 따뜻한 것을 알고, 어두워 봐서 밝을 수 있으며, 너무도 절절하게 외로워 봐서 가족이 어떤 의미인지 안다. 또 불행해 봐서, 자다 일어나 벽을 치고 흐느낄 정도로 불행해 봐서, 행복이 무엇인지도 안다. 전에는 행복에 대해 대단히 착각하고 살았다. 내가 겪은 불행들이 너무도 선명해서, 행복도 불행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창문을 깨고 안방으로 들이닥치는 것인 줄 알았다. 한데 아니었다. 행복은 요란하지 않게 삶에 스며들었다. 그러니까 행복은 생각만큼 대단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거나 다치지 않은 상태, 다시 말해 여태 살아오면서 슬프지 않았던 모든 날이 전부 행복한 날들이었다.
---「제2장. 고통이 가져다준 선물들」중에서
나한테 그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은 있다. 그런 불행은 나뿐 아니라 세상 누구도 겪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박완서 작가의 《한말씀만 하소서》에 나온 한 대목처럼, 나 역시 그런 일을 겪지 말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까지도. 종교에 의지하니 예전처럼 앞으로의 운명이나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 눈이 앞에 달린 인간은 아무리 노력하고 산다고 해도 뒤에서 던지는 돌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니 우리는 옆 사람한테 대신 좀 봐달라고 부탁하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아무리 잘났어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러니 인간은 공동체 안에서 유기적으로 서로 협력해야 한다.
---「제3장_익숙한 비극 사이에서 건져 올린, 인간이라는 희망」중에서
얼마 전 우연히 한 학생이 인터뷰를 요청해왔다. 학생의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왜 그럴까요? 왜 아이들을 잃은 부모에게 그렇게 못되게 굴까요?” 나는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잘 모른다고. 모르면 그럴 수 있다고. 나도 그러했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 모두 그럴 수 있다고. 반대로 알면 그럴 수 없다고. 그러니까 알아야 한다고. 그 말을 하며 나는 속으로 또 한 번 다짐했다. ‘아, 계속 말해야겠다. 이게 어떤 슬픔이고 고통인지 사람들이 알 때까지 내가 자꾸자꾸 말하고 다녀야겠다.’
---「상처가 상처를 끌어안을 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