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의 광팬이라고? 비틀즈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비틀즈 팬 이상의 광팬들이 존재했었다. 비틀즈보다 120년 먼저, 두 명의 클래식 음악의 거장은 연주회장에서 관객들을 히스테리컬한 발작에 빠뜨리곤 했다. 1805년에서 1850년 사이에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와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는 일종의 뮤지컬 쇼인 ‘유러피언 투어’를 만들어 냈다. 그들의 연주회장은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중략) 진정한 록 스타라 불릴 만했다. 그렇다면 그들의 비법은? 그것은 바로 신성한 카리스마와 환상적인 기교, 쇼맨십 대한 타고난 감각이었다. 파가니니는 어딘지 비현실적인 풍모를 갖추는 데 신경을 썼다. (중략) 또한 파가니니가 트레몰로로 즉흥곡을 만들어 연주할 때면, 조명을 아주 약하게 줄여 달라는 요구를 했는데, 그 장면에서 관객들 중 과민한 많은 사람들은 정신을 잃기도 했다. (중략) 엘비스 이전에 이미 프란츠 리스트에게도 그런 팬클럽이 있었다. 그의 팬클럽에서 사람들은 리스트의 초상화를 쉽게 살 수 있었고, 리스트는 자신의 머리카락 다발을 팬들을 위해 기꺼이 보내 주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그의 머리카락을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 리스트는 자기 머리 색깔과 비슷한 개를 기르기까지 하였다. --- pp.34-37
모차르트와 베토벤, 둘 중 누가 더 훌륭한 피아니스트였을까? 슈베르트는 리스트를 능가하는 실력자였을까? 그에 대한 답은 알 길이 없다. 실제로 대결을 펼쳐 봐야만 알 수 있을 테니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음악가들의 대결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결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자. (중략) 또 다른 결전은 1781년 12월 24일에 이루어졌다. (중략) 대결에 나선 사람은 둘 다 아주 어릴 때부터 피아노의 신동으로 불린, 모차르트와 클레멘티였다. (중략) 두 사람의 실력을 판가름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그 대결은 무효로 끝났다. 하지만 황제는 섬세하게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였다. 클레멘티는 ‘기교 있게’ 연주했다고 말했고, 모차르트는 ‘기교와 함께 풍미를 갖춘’ 연주였다고 표현했다. --- pp.60-61
하이든은 100개가 넘는 교향곡을 작곡했다. 하지만 베토벤의 교향곡은 아홉 개밖에 없다. 아홉 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데 1886년 독일의 한 연주회 프로그램에 ‘베토벤의 열 번째 교향곡!’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꾸며낸 이야기냐고? 혹은 베토벤 사후에 그의 방에서 발견된 필사본이냐고? 아니다. 광고용 문구였다. (중략) 베토벤의 10번 교향곡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는 뜻이다. 죽기 몇 주 전에 베토벤은 다음과 같이 썼다. “내 악보대 위에 새로운 교향곡의 초고가 있다.” 그는 친구들에게 그 멜로디를 노래로 불러 주었고, 피아노로 전체를 들려준 적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중략) 분명한 것은, 그 곡이 안단테와 E♭장조로 시작되었다는 것뿐이다. (중략) 그렇다면 그 열 번째 교향곡의 초고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 pp.124-125
만약 어떤 록 밴드가 조용한 관객들 앞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대실패한 공연일 것이다. 반대로 클래식 연주회에선 조용함이 에티켓이다. 그러나 옛날에도 침묵이 미덕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19세기까지는 오페라 극장이 오늘날 파리 시내의 음식점만큼이나 소란스러웠다면 믿어질까? 귀족들의 음악 살롱도 온갖 잡담들로 늘 시끌벅적하였다. --- p.145
1808년 12월 12일 저녁, 베토벤은 난처한 상황에 직면했다. 그의 친구들은 그의 유머에 식상해했고, 그의 음악은 외면되었으며, 따라서 그의 재정 상태도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는 실정이었다. (중략)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했을까? 그는 짐을 꾸리고 마지막 고별 콘서트를 준비하는 척했다. 처음에는 이미 나와 있는 기존의 작품들을 연주할 것처럼 선전하다가, 베토벤은 막상 그날 저녁 연주회장에서 8곡의 새로운 곡들을 발표하였다. 첫 곡은 '전원'으로 불리는 '6번 교향곡'이었다. 다음으로는 'C장조 미사' 중 한 곡과 다른 노래 한 곡이 불려진 뒤, 베토벤 자신이 직접 '4번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5번 교향곡'과, 'C장조 미사 중 상투스', '피아노 독주를 위한 환상곡', '피아노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합창을 위한 환상곡'이 차례로 연주되었다. 마지막 곡은 나중에 9번 교향곡의 테마가 된다. 정말 대단한 연주였다. (중략) 결국 롭코비츠 왕자와 그의 매제 킨스키 왕자, 로돌프 대공이 공모하여 베토벤에게 매년 4,000플로린스의 연금을 종신토록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 pp.236-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