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온과 모세의 지팡이
60대 중반의 노숙인 리온. 그는 늘 지팡이를 가지고 다닌다. 다리를 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치아가 하나도 없어, 구제단체에서 마련해 준 틀니를 끼고 다닌다. 틀니가 제대로 안 맞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지, 늘 침을 줄줄 흘리고 다녀 윗옷을 흥건히 적시곤 한다. 노숙인들 조차 대화하면서 리온 형제가 침을 튀길까봐 두려워한다. 에이즈라도 옮을까봐서다. 나도 그와 대화할 때면 조심하는 편이다. 언제가 리온 씨가 지팡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 그래서 커다란 나뭇가지로 대충 만든 지팡이를 짚고 나나났다.
“리온 형제님, 저는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나타났는지 알았네요. 작은 지팡이는 어디에 두고 오셨습니까?”
그러자 리온 형제는 무언가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 지팡이 어떤 나쁜 놈이 훔쳐 갔어요.”
“참, 남의 지팡이는 가져가서 뭘 하려고 그랬을까요?”
“아마도 저를 골탕 먹이려는 놈들이 있는 것 같아요.”
“왜 그런 생각을 하세요?” 내가 되묻자, 가슴 아픈 대답이 흘러나왔다.
“제가 침 흘리고 다닌다고 싫어하는 놈들이 있거든요.”
“…….”
나는 리온 씨의 감정이 격양될까봐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_p58~59
알마 워터스의 슬픈 노래
알마 씨 고향은 워싱턴 DC에서 20분 거리인 버지니아 주 알링톤이다. 본래 그는 행복한 가정에서 곱게 자랐다. 그런데 마약에 손을 댄 후 인생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21년 전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호기심에 이끌려 마약을 복용했다가, 곧 중독자가 되었다. 당시 방탕한 삶이 주는 일시적 쾌락이 최고의 행복인 줄로 생각했다고 한다.
사실, 그를 가장 불행하게 만든 것은 마약보다 성적 타락이었다.
“저는 버지니아에, 남자친구는 워싱턴 DC에 살고 있었어요. 성폭행 당했을 때 저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어요. 그것도 헤어진 친구와 말다툼 후 괴로워서 거리를 방황하다가 그만…….”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범인은 행여 제가 경찰에 신고할까봐, 거의 반은 죽이다시피 폭행했어요. 병원에 실려 간 저는 머리와 가슴, 다리까지 수술해야 했어요.”
알마 씨는 과거의 아픔을 더 이상 되새기지 못한 채 서럽게 울었다.
_p106~107
슬럼가 피아니스트 빌리
우리는 힘찬 박수를 보내며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빌리 씨는 악보조차 볼 수 없이 나빠진 눈을 지그시 감고는, 하나님 주시는 영적인 눈으로 건반을 눌렀다. 씻은 지 오래되어 꼬질꼬질하게 때 묻은 손가락이었다. 하지만, 그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을 추듯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냈다. 그의 왜소한 몸을 덮은 누더기 같은 외투는 어느 연주복보다 더 멋져 보였다. 반주에 맞추어 윌리엄스 씨가 흑인영가를 인도했다. 마약에 취해 비틀거리는 코마스 씨도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추며 노래했다. 찰스 씨는 너무 감격했는지, 시종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_p68~69
엘리스의 성탄절
“엘리스 자매님, 제가 성탄 선물 하나 주고 싶은데 뭐 갖고 싶으세요?”
“무슨 말씀을요, 제가 선물을 드려야지요. 저 선물 필요 없어요. 그냥 저희 노숙인들의 영원한 목자가 되어 주세요.”
“그건 선물이 아니라 희망 사항이잖아요.”
내가 장난스레 핀잔을 주자, 정말 바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목사님, 저를 열세 살 이전에 교회 성가대에서 봉사하고 성경공부하며 행복해하던 시절로 다시 보내 주세요. 제가 원하는 진짜 성탄 선물은 그거예요.”
“…….”
그 후 3년이 흘렀다. 엘리스 씨는 열심히 노숙인교회를 섬기며 신앙훈련을 받아 안수집사가 되었다. 엘리스 씨는 열세 살 때의 꿈을 이루었다. 교회에서 간증도 하고 말씀도 전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이지 ‘슬럼가의 엘리스’가 아니라 이미 ‘성자가 된 하나님의 딸’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_p136~137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