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섭과 인도하심은 집요하기까지 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무려 40년간을 광야에서 ‘율법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애초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목적이, 말하자면 ‘예수 믿고 복 받고 부자 되는 것’에 있지 않고, 그 이방인들이 득실거리는 선교지 한복판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줄 수 있는 백성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 목적을 이해했다면, 그들의 고난이 40년간 지속될 이유가 없었을지 모른다.
---「제1장 ‘우리가 잃어버린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중에서
예배당에 모여도 참된 코이노니아가 없다면, 대면 예배가 회복된다고 한들 그 이전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코로나가 준 교훈 중 하나는, 참된 코이노니아가 없다면 예배당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회복은 코이노니아의 회복이다. ‘생명의 말씀이신 그 아들’과 ‘그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사랑’이 ‘성령의 임재와 나눔’으로 함께하는 친교를 통해, 세상에서 ‘수단’이요 ‘물건’ 취급당하는 한 사람이, 삼위 하나님과의 사귐 안에 있는 존귀한 ‘인격’이요 ‘목적’으로 회복되는 코이노니아가 있는 곳, 거기가 교회이다.
---「제2장 ‘성도가 성전이고, 코이노니아가 교회인 시대’」중에서
사회가 교회를 비난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차원이 있다. 초기 교회 성도들은 단지 그들이 ‘오직 하나님,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섬긴다’는 이유 때문에, ‘무신론자들, 인류의 적들, 상종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만일 오늘날 교회가 사회로부터 받는 비난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께 대한 충성 때문이라면, 그것은 얼마든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교회가 세상 사람들도 하지 않는 ‘불의’나 ‘불법’을 저질러 비난을 받는 일은 깊이 돌아보아야 하는 부분이다. 왜 예수 잘 믿는데, 세상 사람들이 상식으로도 지키는 일을 못하는 걸까? 왜 천국 간다고 확신하고 교회 생활 잘하는데, 그리고 더러는 목회도 크게 성공했는데, 세상에서는 불법, 탈법, 비양심적인 일들로 비난받는 일들이 생길까? 이 부분에서 우리는 윤리 운동을 하고, 열심히 실천을 해서 앞으로는 점점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일까?
---「제3장 이방인 중에서, 선한 행실로 소통하는 그리스도인」중에서
코로나의 고난이 교회에 각성시킨 사실 중 하나는, 교회가 외딴섬에 홀로 존재하지 않고 뉴스와 미디어로 가득한 세속 사회 한복판에 존재한다는 현실이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 속에서’ 살아간다는 엄연한 현실에 눈을 떠야 한다. 교회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우리끼리 ‘복 받고 부흥하고 성장하며’ 살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각인시켰다. ‘세상을 맞닥뜨린 교회’ - 이것이 코로나 이후 그리고 포스트모던(후기 현대 사회)의 혼란한 사회 속에 처한 교회가 풀어야 할 도전인 것이다. ‘세상’이란 무엇인가? 그동안 많은 교회가, 죄 사함받고, 행함이 아니라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입고, 죽으면 천당 가고, 세상에서는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도록’ 복을 받아 성공하면 신앙 좋은 것으로 가르쳐 왔다.
---「제5장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