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위를 통제하여 세상을 다스립니다. 비도덕적인 마음부수는 마음을 비도덕적이고 해롭게 만들어 사악한 행위를 하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은 세상의 모든 사악한 행위와 모든 고통의 근본 원인이 됩니다. 아름다운 마음부수는 마음을 도덕적이고 유익하게 만들어 선한 행위를 하도록 합니다. 그리하여 그 마음은 세상의 모든 선한 행위와 모든 행복의 근본 원인이 됩니다.
--- p.12
업의 씨앗을 맺고 업의 과보를 일으키게 될 마음은 오직 2가지다. 그것들은 해로운 마음(akusala citta)과 유익한 마음(kusala citta)이다. 그리하여 만약 우리의 마음을 탐욕(lobha), 성냄(dosa), 미혹(moha)에서 벗어나도록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유익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보시할 때 우리는 보시에 대해 어떤 집착도 하지 않고(alobha) 보시를 받는 사람의 복지를 원하는 선의(adosa)를 가진다. 더욱이 만약 우리가 보시할 때 업과 업의 과보에 대한 지혜(amoha, 미혹 없음)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함께하는 3가지 모든 유익한 뿌리를 가지고 있게 된다. 유익한 뿌리들은 항상 아름다운 마음(sobha?a citta)을 일으킬 것이다.
--- p.72~73
의도와 그것과 함께하는 것[즉 의도를 제외한 마음과 마음부수들]은 각각의 목적을 수행한 후에 소멸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소멸하기 전에 마음의 흐름에 업의 속성을 남긴다. 이 업의 속성은 어떤 적절한 때에 적절한 과보를 생산하게 될 업의 잠재력이고, 업의 과보는 그 행위를 하는 사람 자신에게 떨어질 것이다.
그것은 뉴턴 물리학의 세 번째 운동 법칙과 다소 유사하다. 그 법칙은 “모든 행동에는 동등하고 상반되는 반작용[반응]이 있다.”이다. 그러므로 유익하거나 해로운 행위를 하는 사람은 금생이나 내생의 많은 생에서 동등하고 상반되는 반작용[반응]을 예상해야 한다.
더욱이 상반되는 반작용[반응]은 마음의 속성에 의해 그 업이 수십억 배 이상으로 증가함에 따라 여러 번 나타난다. 어떻게 나타나는가? 전에 언급했듯이 마음은 눈 깜짝할 사이에 1조 번 이상 일어날 수 있다. 그리하여 모기를 죽이려고 하는 의도와 함께하는 수십억 가지 마음이 모기를 때리는 데 일어날 것이다. 이 수십억 가지 마음은 죽이려는 의도와 함께 마음의 흐름에 수십억 가지 업의 씨앗을 뿌릴 것이다.
어떤 나무의 씨앗이 그 씨앗이 생겨나게 한 것과 같은 나무를 생겨나게 하듯이, 업의 씨앗도 원래의 업에 어울리는 세상에서 새로운 존재를 생기게 한다. 해로운 업은 악처의 재생을 생기게 하는 반면, 유익한 업은 선처의 재생을 생기게 한다.
동물을 죽이는 것과 같은 행위에서 수십억의 해로운 업이 생겨나듯이,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과 같은 유익한 행위를 할 때도 수십억의 유익한 업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무수한 전생에서뿐만 아니라 금생에서 축적된 해롭거나 유익한 업의 수는 너무 많아서 슈퍼컴퓨터도 그것을 다룰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업은 새로운 생을 얻을 때마다 그 개인을 뒤따르는 정신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
모든 물체에 그림자가 함께하듯, 모든 업에는 적절한 과보가 함께한다. 업은 행위이고 과보는 그 행위의 반작용[반응]이다. 그것은 원인과 결과이다. 씨앗이 업과 같다면 나무는 과보와 같다. 우리가 뿌린 대로 우리는 금생이나 내생에 거둘 것이다.
업은 그 자체로 법칙이고, 어떤 외부의 지배하는 힘의 개입이 없이 그 자체의 들판에서 작용한다. 업의 적절한 과보를 생산하는 잠재력이 업에 내재되어 있다. 업은 원인이고 과보는 결과이다. 원인이 결과를 낳는다. 과보가 그것의 원인을 설명한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모든 곳에서 지배한다.
비록 우리가 어떤 개개인의 업을 알 수는 없어도, 붓다가 설명한 몇 가지 유형으로 업을 분류할 수 있고, 각 유형의 업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업의 과보를 맺을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다.
--- p.257~259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감각적 욕망은 많은 색깔이 섞인 물에 비유되고, 악의는 끓는 물에 비유되며, 해태와 혼침은 이끼에 덮인 물에 비유되고, 들뜸과 후회는 바람에 의해 휘저어진 물에 비유되며, 회의적 의심은 탁한 흙탕물에 비유된다. 우리가 그런 물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 볼 수 없는 것처럼 이 5가지 장애가 있을 때에는 자신의 이익이나 남의 이익이나 둘 다의 이익을 분명하게 식별할 수 없다.
--- p.336
‘윤회(Sa?s?ra)’는 문자 그대로 ‘영원한 방황’을 의미한다. 이것은 계속해서 태어나고 늙고 고통을 당하고 죽는 연속적인 과정에 붙여진 이름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윤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 동안 순간순간 계속 변하고 계속해서 뒤따르는 오온의 결합이 중단 없이 연속되는 것이다.
아무도 공간의 한계를 추적할 수 없듯이 아무도 윤회의 시작을 거꾸로 추적할 수 없고, 아무도 윤회가 언제 끝날지 상상할 수 없다. 윤회의 과정과 비교해 볼 때, 한 번의 생애는 찰나일 뿐이다. (중략)
원을 그을 때는 어떤 점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원을 완성하고 나면 어떤 시작도 어떤 끝도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연기법을 설명할 때, 그 설명은 어떤 점에서 시작되어야 하고, 무명이 적절한 점이다. 설명이 끝나면, 우리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2가지 큰 뿌리인 무명과 갈애를 끊어낼 때까지, 그리고 그것들을 끊어내지 못하면, 연기의 바퀴는 각 존재에게서 계속 돌아갈 것이다.
--- p.403~404
유익한 결과를 얻기 위해 4가지 명상주제와 6가지 기질을 결합해야 한다.
탐욕의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10가지 부정과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수행해야 한다. 이 명상주제들은 감각적 욕망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냄의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4가지 범주와 4가지 색깔 까시나(푸른색 까시나, 노란색 까시나, 빨간색 까시나, 흰색 까시나)를 수행해야 한다. 이 명상주제들은 순수하고 고요하여 수행자를 기쁘게 할 수 있다.
미혹의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과 심사숙고하는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을 수행해야 한다. 이 사람들의 마음은 들뜸과 의심과 생각 때문에 들뜨고 산만하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에서는 들숨과 날숨을 리드미컬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하여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은 들뜬 마음을 제어하고 가라앉힐 수 있다.
믿음의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붓다에 대한 수념, 법에 대한 수념, 승가에 대한 수념, 보시에 대한 수념, 천신에 대한 수념을 수행해야 한다. 믿음은 이미 이 사람들에게 강하다. 수념의 명상주제를 수행하면 믿음이 더욱 강해져서 큰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지성의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수념, 열반에 대한 수념, 음식을 혐오하는 인식, 4가지 요소 분석을 수행해야 한다. 이 명상주제들은 깊고 미묘하여 지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의 통찰지를 자극하고 강화할 수 있다.
모든 유형의 사람에게 적합한 명상주제는 흙 까시나, 물 까시나, 불 까시나, 바람 까시나, 빛 까시나, 허공 까시나, 4가지 무색의 경지이다.
--- p.459~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