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주의가 기독교의 이단이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기독교 이전에 이미 영지주의가 존재하였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많다. 확실한 것은 1세기~4세기의 기독교 시대에 영지주의는 번성하였고 많은 작품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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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영지주의는 예수의 비밀가르침이지만 영지 사상은 예수만이 아니라 수많은 성자들에 의하여 설해져왔다. 그래서 광의의 차원에서 보자면 고대 지혜가르침, 헤르메스 철학, 카발라, 불교, 이슬람 수피, 신지학, 힌두교 등도 영지가르침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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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나 깨달음은 자신에 대한 앎과 관련이 되고 우리가 신비지식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거나 근원으로 복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고대 종교의 기본 바탕이었다. 영지주의의 영지는 그리스어 “그노시스(gnosis)”에서 유래했으며, 보통은 “지식”으로 번역된다. 그리스어에서는 이론적인 지식과 경험을 통해 직접 얻은 지식을 구별한다. 경험을 통해 직접 얻은 지식이 그노시스요, 이 그노시스를 얻거나 열망하는 사람이 영지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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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문헌 상당수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상징과 이미지 그리고 낮선 개념을 담고 있어서 심지어 전문가들도 해석에 어려움이 크다. 이것은 어떤 종교 문헌에서도 사용된 적이 없는 낯선 내용과 상징 때문이다. 그러나 카발라 교리와 고대지혜가르침을 이해하게 되면 난해한 구문이 쉽게 해석이 되기도 한다. --- p. 31
영지주의 구원의 개념은 동양종교에서 볼 수 있는 무지와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 개념과 많이 가깝다. 정통교회는 예수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왔고 그래서 인류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 교리의 근간이 되는 이런 대속론을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가 설한 진리가 아니라 교부들이 창작한 논리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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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책이다. 성서는 서로 다른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장소와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기록한 책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시각과 믿음, 소망 그리고 자신들만의 신학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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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대표적인 복음서인 『빌립 복음서』와 『진리 복음서』에서는 신의 이름이 중요하게 언급이 되나, 사람들은 카발라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해석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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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비밀 전승에 의하면 예수는 카발라의 대가였으며 영지주의 사상은 카발라의 한 갈래였다. 에세네파는 고대 비밀가르침이 담겨있는 서적들을 보존하여 왔고 다가올 예수의 우주적 사역을 준비한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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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가 그대에게 글을 씁니다. 하늘의 평화로부터 평화가, 하늘의 사랑으로부터 사랑이, 하늘의 은총으로부터 은혜가, 하늘의 신앙으로부터 신심이, 그리고 거룩한 생명으로부터 생명이 그대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대는 주님이 나와 베드로에게 계시한 비밀의 책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나는 그대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어서 히브리어로 내용을 써서 그대에게만 보냈습니다. (야고보 비밀의 서)
--- p. 106
그분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명령한다 해도 어느 누구도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느니라. 다만 너희들 자신이 충만하게 되어야 들어갈 수 있노라. 내가 야고보와 베드로 두 사람을 충만하게 할 터이니 두 사람은 따로 남으라.”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 비밀의 서)
--- p. 109
영이 너희를 지키는 든든한 성벽인데도 감히 육체를 아끼려고 하느냐? 너희에 앞서 이 세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했으며, 너희 이후에 이 세상이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할지를 생각해 본다면, 너희 삶이 단 하루이고 너희 고통도 단 한 시간에 불과함을 깨달을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것은 세상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경멸하고 삶을 생각하라.(야고보 비밀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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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어둠, 삶과 죽음, 오른쪽과 왼쪽은 서로의 형제들이다. 그들은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은 선이 아니고, 악은 악이 아니며, 삶은 삶이 아니고, 죽음은 죽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 각각은 태초의 근원으로 녹아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세상 위로 높여진 사람들은 해체될 수 없어서 영원하다. (빌립 복음서)
--- p. 165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이름은 이 세상에서 말해지지 않는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이름이요, 모든 것 위에 있는 이름이다. 이것은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입지 않고는 아들은 아버지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이름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빌립 복음서)
--- p. 169
어떤 이들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잘못 알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언제 여자가 여자에 의해 임신된 적이 있었는가? 마리아는 어떤 힘(사악한 세력)도 더럽히지 않은 처녀이다. 그녀는 사도들과 사도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큰 저주이다. ?(빌립 복음서)
--- p. 175
예수는 숨겨진 이름이요, 그리스도는 드러난 이름이다. 이런 이유로 예수는 어떤 다른 언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늘 예수란 이름으로 불린다. 그리스도는 고대시리아어로는 메시아요, 희랍어로는 그리스도이다. 분명히 다른 모든 사람도 자기네 말에 따라 그리스도에 대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사렛 사람(예수)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는 자이다.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 모든 것을 지니고 계신다. (빌립 복음서)
--- p. 178
주님께서 먼저 돌아가시고 그 후에 부활하셨다고 말하는 자들은 잘못이다. 그분은 먼저 부활하시고 그 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먼저 부활을 얻지 못하면 그는 죽지 않을 것이다. (빌립 복음서)
--- p. 179
하느님은 염색공이시다. “진짜”라고 불리는 좋은 염료가 염색되는 것으로 녹아 스며들듯이 하나님은 자신이 물들인 자들 속으로 스며든다. 신의 염료는 불멸이므로 물든 것들은 신의 색으로 인해 불멸이 된다. 이제 하느님은 물에 담아서 염색하신다. (빌립 복음서) p199
당나귀가 맷돌을 돌리면서 100마일에 해당하는 거리를 걸었으나 당나귀가 맷돌에서 풀려나서 보니 여전히 제자리에 있음을 알았다. 이와 같이 많은 여행을 했으나 목적지로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저녁이 찾아왔을 때, 그들은 도시나 마을도, 인공물이나 자연 현상도, 힘이나 천사도 보지 못했다. 그 가련한 자들은 헛수고를 하였다. (빌립 복음서)
--- p. 207
성체(聖體)는 예수이다. 그분은 고대 시리아어로 파리사타라고 하는데 “확장되어 나온 사람”을 의미한다. 예수는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오셨기 때문이다. (빌립 복음서)
--- p. 208
구세주의 친구는 막달라 마리아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다른 어느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셨고 그녀와 종종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나머지 제자들이 기분이 상하여 불만을 표시했다. “어찌하여 주님은 우리보다 마리아를 더 사랑하십니까?” 구세주께서 대답하시길, “내가 왜 너희들을 마리아처럼 사랑하지 않겠느냐?” (빌립 복음서) ?
--- p. 211
혼인의 신비는 위대하다. 그것이 없었으면 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존재는 사람에게 달려있고, 사람의 존재는 혼인에 달려있다. 순결한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라. 왜냐하면 그것은 위대한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것의 이미지는 형상의 더럽힘으로 이루어진다. (빌립 복음서)
--- p. 216
진리는 알몸으로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상징과 이미지로 왔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부활이 있고 부활의 상징이 있다. 상징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것이 분명히 필요하다. 부활이란 무엇인가? 상징은 상징을 통해 다시 살아나야 한다. 신랑과 그 상징은 상징을 통해 진리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회복이다. (빌립 복음서)
--- p. 225
주님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아래에 있는 것을 위에 있는 것처럼 만들고, 바깥에 있는 것을 안에 있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 왔다. 나는 이곳에서 그것들을 합체하기 위해 왔다.” 그분은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 이곳에 자신을 드러내셨다. (빌립 복음서)
--- p. 228
이브가 아담과 함께하였을 때에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에게서 분리되었을 때 죽음이 존재하게 되었다. 만일 아담이 다시 완전해져서 이전의 자아를 얻는다면 죽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빌립 복음서)
--- p. 231
만일 여성이 남성에게서 분리되지 않았다면 여성은 남성과 함께 죽지 않을 것이다. 그의 분리가 죽음의 시작이 되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시작부터 있었던 그 분리를 고쳐 그 둘을 다시 하나로 만들기 위하여, 그리고 그 분리의 결과로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을 다시 하나로 만드시려고 오셨다. (빌립 복음서)
--- p. 240
성유식은 세례의식보다 더 높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것은 세례라는 말 때문이 아니라 성유식이라는 말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그의 이름을 지니신 것은 성유식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그 아들에게 기름을 부으셨으며, 아들이 사도들에게, 그리고 사도들이 우리에게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다. (빌립 복음서)
--- p. 257
신방은 숨겨져 있다. 그것은 성소 안의 성소이다. 처음에는 휘장은 하느님의 창조 방법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휘장이 찢어지고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드러날 때 이 집은 황폐해지거나 파괴될 것이다. (빌립 복음서)
--- p. 288
진리의 아버지가 말씀(Logos)의 권능을 통하여 그분을 알도록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었고 이것을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진리의 복음”은 기쁨 그 자체이다. 그분(Logos)은 아버지의 생각과 마음 안에 있는 플레로마(충만)에서 나왔고, “구세주”로 일컬어지는데 이는 그가 아버지를 몰랐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해야 하는 사역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복음의 이름은 희망의 계시인데 이는 그분을 찾는 사람들이 발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자신이 근원한 그분을 찾으려고 힘썼다. (이전에) 만물은 모든 생각을 넘어 계신, 한계가 없고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그분 안에 있었다. (진리 복음서)
--- p. 297
그분은 안식일에조차도 구덩이에 빠진 양을 보시면 그 양을 구하시기 위해 일하셨다. 그분은 그 양을 구덩이에서 꺼내서 그 양에게 생명을 주셨나니, 이는 안식일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안식일에 구원의 일을 태만히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진리 복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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