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 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 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p.51
어머니가 차려놓은 밥상 위의 음식들은 식어 있었다. 몇 번을 데웠던지 졸고 식은 된장찌개는 짰다. 어머니는 산에 간 두 부자가 달이 떠도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어서 오래 전에 마중을 나와 계셨던 것이다. 밥이 식은 시간만큼 어머니도 달빛에 젖어 아버지와 나를 기다리셨던 것이다. 땀에 젖은 옷을 입은 채, 물에 찬밥을 말아 식은 된장국과 장아찌를 먹는 부자를 어머니는 안도의 눈빛으로 쳐다보셨다.
그날 찬밥이 차려진 밥상에는 기다림이 배어 있었다. 짠 된장국이 다디달아 자꾸 찍어 먹던 밤, 지붕 낮은 우리 집 마당에는 달빛이 곱게 내렸고, 세 식구가 앉아 있는 마루에는 구절초 냄새와 더덕 향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p.55
내가 헤어지기 섭섭하다며 메리야스를 건네자 공장장은 미리 준비한 선물을 내게 건넸다.
“이 기사하고 같이 만년필하고 연필을 샀어. 좋은 시 많이 써.”
나는 공장장과 이 기사와 공장 건물을 뒤돌아보며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좋은 시는 당신들이 내 가슴에 이미 다 써 놓았잖아요. 시인이야 종이에 시를 써 시집을 엮지만, 당신들은 시인의 가슴에 시를 쓰니 진정 시인은 당신들이 아닌가요. 당신들이 만든 착유기가 깨끗한 소젖을 짜 세상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 거예요.’---p.62
폐백은 다람쥐나 청설모가 맡고, 경비에는 엄나무, 경호에는 화살나무, 식수 담당은 물에 대한 아픔이 있는 고로쇠나무가 하고, 술 담당은 절대 자작나무 시키지 말고 소태나무한테 일임하고, 바텐더는 잔대가 맡고, 음악은 국악으로 가서 꽹과리는 치자나무, 피리는 버드나무, 북은 북나무, 스피커는 꽝꽝나무, 노래는 오소리가 제격. 사회는 주목나무가 좋겠고, 식권 담당 이팝나무, 축의금 접수는 은행나무, 화촉은 산초나무, 화장실 안내는 뽕나무 쥐똥나무 다 사양하고 싸리나무로 가라. 신부 화장은 분나무, 조명은 반딧불, 박수는 손바닥 붉을 때까지 단풍나무가…… 주례는 누가 맡으면 될까 고심해도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