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마는 것과 직접 글을 쓰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읽을 때, 나는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사람이지만 쓸 때, 나는 나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사람입니다. 훨씬 직접적이고 강력한 ‘대면’이죠.
---「프롤로그」중에서
저는 영신이가 도서관에서 느낀 것들을 좀 더 세심하게 펼칠 수 있도록 도왔어요. “도서관은 그저 조용한 것 같지만, 귀를 잘 기울여보면 다양한 소리가 있어. 책장을 넘기는 소리, 속삭이는 소리…. 그렇다고 소리만 존재하진 않았을 거야. 청각 외 다른 감각도 두루 포함시켜봐. 의자에 오래 앉아 있을 때의 엉덩이 감각이라든지, 책장에서 눈을 들어 바라본 창문 밖 풍경이라든지, 그때 네 마음의 움직임이라든지. 도서관이 놀이동산보다 쓸 거리가 적다고 생각한다면 편견이야. 화장실도, 창고도, 마음을 열면 다양한 것들을 포착할 수 있어.”
---「3. 한 단락을 써봅니다_묘사」중에서
이 글을 쓰는 동안 수경이는 대충 흘려보냈던, 혹은 꾹꾹 가둬두었던 자신의 감정과 감각을 정확히 되찾았습니다. 이제 그녀는 ‘스스로’ 알아챕니다. 타인이 느낄 것을 정해버려 혼란스럽거나 자신이 느낀 것이 불확실해서 두루뭉술 넘어가지 않아요. 차분히 앉아 글을 쓰는 것만으로 ‘주체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되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매일 연습한다면.
---「4. 1일1묘사를 써봅니다」중에서
‘묘사’를 배운 뒤, 나는 내가 온몸으로 느끼기보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세상에 대한 나의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의미했고, 바꿔 말하면 내 스스로의 감각과 감정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음을 의미했다. 나는 그동안 ‘말’을 부여하지 않아 존재도 없이 사그라졌던 나의 감정과 감각들에게 미안해졌다. 묘사를 하는 시간은 글을 유려하게 쓰는 법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을 헤치며 사는 나의 느낌을 펌프질하는 법을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왠지 나는 나를 더 사랑하고 존중해줄 수 있을 것 같다.
---「stop-feel-act 연습하기 ‘현지의 노트’」중에서
앞의 첫 번째 에피소드로 돌아가봅니다. 당신이 그린 그림 속 어린아이를 바라봐주세요. 당신이 쓴 답변들도 읽어보세요. 당시에 응당 가져야 했으나 가지지 못했던 감정이 글을 쓸 때 올라왔나요?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올라올 수 있도록 자신을 도와주세요. 올라온 감정에 절대!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지 마세요. 예를 들면 이런 말들은 금지입니다.
‘그 따위 감정은 가져서 뭐 할 건데? 쓸데없다.’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냐. 어리석다.’
‘그 정도 상처 없는 사람 있나? 약해 빠진 것 같으니.’
‘감히 부모에게? 자식은 무조건 꿇어야지.’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존중해주세요.
나아가 그 감정을 위해 행동해주세요.
---「두 번째 도장, 위로」중에서
당신에겐 분명히 있어요. 상처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새로 개발한 것, 시간이 지나면서 극복의 도구가 되어준 것, 그것이 바로 ‘긍정할 지점’입니다. ...... 긍정의 지점이 반드시 대단한 진로나 활동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성격이나 생활습관의 일부를 이룬 것도 좋아요. 지독하게 가난했기에 근검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든지, 폭력적인 환경이 싫어 평화주의자가 되었다든지, 일찍부터 동생들을 돌봐야 했기에 리더십을 얻었다든지, 억압적인 군인 아빠 때문에 어디서든 정리정돈을 잘하게 되었다든지. 이런 식으로 찾아질 때까지 찾아봅니다.
‘이게 무슨 긍정의 지점이야? 상처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지. 난 내 이런 성격이 지긋지긋한데?’ 정말로 그럴까요? ...... 예를 들어볼게요. 지은이에겐 폭력적인 아빠 앞에서 무서움에 떨며 억지로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비곗살에 기름진 고추장이 벌겋게 버무려진 마지막 조각을 들어 밥 위에 올린다. 바라보기만 해도 코끝에 돼지고기의 누린내가 끼친다. 눈을 질끈 감고 미끄덩한 조각을 입안에 넣는다. 코를 움켜쥐지 못했으나 숨은 진작부터 참고 있다. 삼키지 않고 목구멍으로 넘기려는 시도에 온몸이 강렬하게 저항하며 구역질을 내뱉는다. 돼지비계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순간, 온 팔에 소름이 돋는다. 참았던 눈물이 줄줄 흐른다. 소녀는 눈물마저 참으며 벌건 기름이 둥둥 뜬 접시에 밥공기와 수저를 포갠다. 그녀는 폭력에 순종하는 자신의 무력감을 이 묘사 안에 담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늘 또랑또랑한 얼굴로 성실하게 모임에 참석하는 그녀였기에, 저에겐 전혀 다른 긍정의 지점이 읽혔죠. “언니 눈에는 ‘울면서도 끝까지 다해내는 지은이’가 보이는데?” 순간 지은이의 눈이 반짝거렸습니다. “…그렇네요. 저는 울지만 포기한 적은 없어요.” 당신은 어떤가요? 이렇게 책을 펴고 노트를 채워나가는 당신이야말로 여러 덕목을 지니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돌보고자 하는 높은 자존감, 근면함, 자율성, 지적 호기심, 응용력…. 그 외에도 더 많겠지요. 이 많은 덕목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생의 도전들에 담대히 맞서는 동안 생겨났을 겁니다.
---「세 번째 도장. 긍정」중에서
엄마, 엄마가 내게 했던 말, “너처럼 아이한테 조곤조곤 설명하고 말로 해주면 되는데 난 왜 그렇게 때리면서 키웠나 모르겠다.” 난 그 말을 듣고 ‘자기 자식 때렸다는 게 부끄럽지도 않나. 그래서 내 딸을 엄마한테 안 맡기는 거야’라고 속으로만 생각했어. 가끔 딸을 꼭 안아주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면 너무 놀랐지. 엄마한테도 저런 모습이 있나 싶어서. 슬프지만 엄마의 말이 엄마 식의 간접적인 사과였다는 걸 이제 알아요. 조금은 서글프지만, 내게 보내는 사과의 표현이라는 걸 알기는 해야겠어요. 하지만 난 이제 그 착하기만 한 딸이 아니에요. 나의 아이, 나의 남편, 나의 가정, 그리고 소중한 나 자신을 먼저 챙기는 이기적인 딸이 될게요.
---「두 번째 도장. 위로 ‘미영이의 노트’」중에서
행동으로 하는 경계설정은 마음으로 세운 목표가 생활 속에서 구현되도록 실천하는 장치들입니다. 목표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방법’들이죠. 지영이의 경계설정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목표: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다.
방법:
1. 엄마의 행동을 ‘그렇구나’ 이해하고 간섭하지 않는다.
2. 엄마의 조언이 간섭이 될 때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3. 엄마의 노후건강은 다른 가족과 함께 다양한 시스템을 활용한다.
4. 원가정에서 기인한 열등감을 회사업무와 결부시키지 않는다.
- 배울 것이 있는 사람들에겐 적극 도움을 요청한다.
- 상사의 감정을 내게 가져오지 않는다.
- 새벽에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 도장. 경계설정 중에서
첫 한 달은 1~3번까지만 집중적으로 실천해봅니다. 한 가지라도 확실하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효과가 당신에게 자신감을 주면 다음 것을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새로운 경계를 설정하는 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간을 들여, 점진적으로 해내는 것이 마땅하죠.
---「다섯 번째 도장. 경계설정」중에서
당신은 참으로 어려운 여행을 마쳤습니다. 제 경험상, 교통편도 정보도 거의 없고 말라리아까지 창궐한 아마존 밀림 한구석을 혼자 여행하는 것보다 ‘마음’을 혼자 여행하는 것이 더 어려웠거든요. 그 어려운 걸 끝까지 해내셨어요. 그러니 이제 당신은 지구 끝 머나먼 오지 한구석도 혼자서 여행하실 수 있을 겁니다. 못 다다를 곳이 없어요. 빈 칸으로 가득했던 감노트는 한 권의 가이드북이 되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상처를 당신 손으로 직접 치유하고 가장 오래된 관계를 재편성해낸 가이드북. 노트 한 권에 담긴 이 거대한 경험을 기준으로 앞으로, 언제 어디서 누가 당신의 생으로 들어오든지 두려움 없이 맞이하고 주체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길 바랍니다.
---「에필로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