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우리 교육에 새로운 모티브가 되기를 희망하며
처음 김주한 작가를 만났을 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일찍이 어린 나이에 최연소 디자이너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그는 대학을 졸업한 기성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크고 작은 대회를 휩쓸면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지금은 프리랜서 디자이너이자 사진작가로 환경, 에너지 관련 사회단체의 일원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듬직한 청년이다.
언뜻 그의 이력만 보고 당연히 좋은 학교에서 디자인을 전공하였으리라 예상했는데, 그런 나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놀랍게도 그는 단 한 번도 공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무학적자이다. 학교를 전혀 다니지 않았고, 초등학교 과정만 검정고시로 이수하였다. 그는 내가 평생 몸담은 공교육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자기 적성을 살려 인생을 개척하고 있는 젊은이다.
40년을 교육자로 살아온 나로서는 공교육을 충실히 받고 대학을 졸업한 많은 청년들이 쉽사리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를 만나면서 받은 충격은 실로 컸다. 그는 자신이 공교육을 받지 않아 부족한 것이 많다며, 학교라는 제도가 주는 이점과 소통 방법, 삶의 지혜를 나에게 구했고, 나는 내가 경험한 삶의 지혜를 이야기해 주었다. 내가 살아오며 체득한 깨달음, 그리고 ‘침묵의 미덕’을 비롯해 나의 어머니께서 생전에 내게 가르쳐 주신 귀중한 삶의 교훈들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그런 과정을 공유하며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이런 제안을 했다. “교수님이 제게 들려주신 생활 속 지혜들을 제 또래 다른 친구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데, 재미있게 풀어서 책을 내면 어떨까요?” 대단히 의미 있고 재미있는 아이디어였다.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나와 김주한 작가, 그리고 김 작가의 어머니이자 유명 셰프인 작가 윤경숙님과 함께 이 책 작업을 시작했다. 윤경숙 셰프는 공교육 대신 가정이라는 인성 교육장을 통해 그에게 따뜻한 스승 역할을 훌륭히 해오신 분이다.
전체적인 기획은 윤경숙 셰프가 맡았다. 교육학자인 내가 이런저런 모티브를 내면 윤경숙 셰프가 솜씨를 발휘해 그것을 맛깔나는 우화로 창작했다. 그러면 다시 각 우화에 맞춘 교훈의 글을 내가 쓰고, 디자이너인 김주한 군이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탄생시킨 책이다.
사람들은 말과 글을 통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우리는 홀로 지내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족으로, 친구로, 일의 파트너로, 소비자로, 납세자로, 투표하는 시민으로, 때로는 리더로 활동하면서 여러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생각은 홀로 생활하는 데 익숙한 지금의 Z 세대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 생각이나 행동이 바로 서야 하지만, 나와 연결된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내 삶의 주인공인 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살이의 바탕에 깔린 생각이 무엇인지를 책에 담으려고 했다.
전체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과묵한 도룡뇽’, ‘원숭이 이응’, ‘자유를 택한 산 나귀’, ‘겸손한 청솔모 장수’ 등은 개인이 중심이 된 이야기이다. 그리고 ‘동물 농장의 재판’, ‘숲속 지도자 선거의 비밀’, ‘철학자와 바둑돌’ 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사회생활에 관한 이야기이다. ‘앵무새 아도르노의 사전 찾기’, ‘혼돈에서 벗어나자 죽어 버린 혼돈’, ‘다람쥐의 자전거 타기’, ‘원형 동물 아파트의 비밀’ 등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쓴 글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고전과 동서양의 사상가들이 이루어 놓은 업적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우화를 쓰고 난 뒤 고전의 가르침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 경우들도 있고, 내가 기억하는 옛 현자들의 뛰어난 생각을 크게 참고하기도 했다. ‘숲속 지도자 선거의 비밀’이나 ‘앵무새 아도르노의 사전 찾기’, ‘혼돈에서 벗어나자 죽어 버린 혼돈’ 등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책을 준비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교육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가 든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꿈과 지혜를 준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삶을 살아낸 부모, 선배, 이웃의 일상 속 지혜와 재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소중한 지혜와 교훈을 동물에 빗대어 재치 있게 풀어낸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이솝 우화’이다.
이 책은 평생을 공교육 분야에서 교육자로 살아온 내가 공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특별한 자신의 길을 걸어온 한 청년과 그의 어머니, 이렇게 세 사람이 힘을 모아 기획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공동 노력의 결과물이다. 공교육과 홈스쿨 교육이 어우러져 탄생한 책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어쩌면, 아니 분명히, 지금까지 우리 교육이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데 하나의 작은 모티브가 될 수 있다는 기대와 소망을 갖고 있다.
스스로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구한 끝에 쓴 이 책이 인생의 지혜를 찾아 방황하는 학생과 청년들, 그리고 지혜를 갈구하는 많은 어른들에게도 작은 희망의 불빛이 되길 희망한다.
관악산 자락 운주당에서 조영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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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만한 원숭이 이응
동물 나라 숲속 마을에 거만한 원숭이 이응이 살고 있었다. 이응은 다른 원숭이들보다 훨씬 덩치가 크고 힘이 셌다. 털은 풍성하고 윤기가 흘렀으며, 커다란 바오밥나무도 더 잘 오르고, 단단한 코코넛 열매도 손쉽게 따먹었다. 다른 원숭이들은 이응을 찬양하고 존경하며 대장으로 받들었다.
항상 다른 원숭이들로부터 선망의 시선을 받으며 우쭐대던 이응은 어느 날 자신이 모든 원숭이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날 뿐만 아니라, 보통 원숭이와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의 힘이 하마보다 더 세고, 털은 사자의 갈기보다 아름다우며, 이 세상 그 어떤 동물과 비교해도 자신이 더 멋진 동물이 아닐까 하고 착각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응은 특별한 존재인 자신과 평범하고 나약한 다른 원숭이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음 날, 이응은 ‘멋지고 아름다운 원숭이들만 나의 마을에 어울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못생긴 원숭이들과 윤기 없는 털을 가진 원숭이들을 모두 마을에서 내쫓았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이응은 ‘힘세고 덩치 큰 원숭이들만 나의 마을에 살 자격이 있지!’ 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몸집이 작고 연약한 원숭이들을 모두 마을에서 내쫓았다.
그리고 또 다음 날, 이응은 ‘나무를 잘 타고 열매를 잘 따는 원숭이들만 나의 마을에 있으면 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무 타기를 잘 못하고 재주가 없는 원숭이들을 모두 마을에서 내쫓았다.
그렇게 원숭이 마을에는 덩치 크고, 힘세고, 멋진 털을 가졌고, 재주가 많은 원숭이들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남아 있던 원숭이들이 힘을 합쳐 이응을 마을에서 내쫓으려 하였다. 이응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특별한 원숭이인 자신에게 대드는 원숭이들에게 매우 화가 났지만, 그들은 모두 원숭이 마을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가장 강하고 재주 많은 원숭이들이었기 때문에 이응이 혼자 힘으로 싸워서 이길 수 없었다.
이응이 왜 자신에게 대드는 거냐고 묻자 덩치 큰 원숭이 한 마리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동안 우리는 잘났다고 으스대는 너를 보며 항상 부러워하고 질투만 했지. 하지만 이제 너를 존경하고 따르던 원숭이들이 전부 마을에서 쫓겨났으니 더 이상 이 마을에 네 편은 없어. 이제 널 쫓아내고 우리가 새로운 대장이 될 거야, 하하하!”
그렇게 원숭이 마을에서 쫓겨난 이응은 자신이 오만했음을 깨닫고, 그 전에 자신이 쫓아낸 원숭이들을 찾아갔다. 그 원숭이들은 이응보다 약하고, 능력도 부족했기 때문에 그가 나타나면 다시 그를 대장으로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응의 생각과 달리 쫓겨난 원숭이들은 모두 힘을 합쳐서 잘 살고 있었다. 그들은 몸집이 작고 나무도 잘 타지 못하며 생김새는 볼품없지만, 함께 머리를 맞대어 도구를 만들고, 작은 체구를 이용해 좁은 틈새에 숨어 있는 벌레를 잡으며 서로 도와 살고 있던 것이다.
이응은 숨어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원숭이들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멀리 멀리 떠나 평생을 혼자 외롭게 살았다.
*영달이의 생각*
함께! 그리고 다르게 살아가기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고 성찰하면서 창의적인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것은 더없이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는 일이고, 자신의 존재를 확립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과정은 여럿이 함께하는 공동체에서 남과 구별되는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힘들과 복잡한 세상을 혼자 살기는 어렵다.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혼자보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으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건축설계사도 나무를 자르고 벽돌을 나르는 사람이 있어야 집을 지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무리 우수해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사회의 일도 내 일도 제대로 이룰 수 없다.
우리는 남들과 함께 사는 존재이면서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어 하는 존재이다. 나만의 개성을 발현하고, 남보다 우월한 능력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렇게 ‘나’를 찾아가는 삶이 공동체 안에서 조화롭게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함께, 그리고 다르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자아의 방향일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