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수차례 필연 혹은 우연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한다. 그러나 그들과 접하면서 겪는 사건들이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불행이었던 사건도, 다른 사람에게는 행복이 될 수도 있고, 또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혹은 상대방의 비밀을 눈감아 주고, 또 내 비밀을 살짝 감추면서 행복해지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이 그 사건에 관련된 모든 이에게 서로 다른 의미의 사건이 된다는 것. 그것이 바로 『비밀』의 테마가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현재 일본에서 가장 각광받는 12명의 소설가들이 자기의 빛깔을 드러내면서 짧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글로 전달하고 있다. 짧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자라지 않은, 자기의 개성을 톡톡 드러내는 12인의 작가들을 이렇게 한 권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받는 기분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국내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독특한 색채를 지닌 일본의 소설가들과 만나는 재미도 이 책의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미 국내에 널리 알려진 요시다 슈이치나 오가와 요코 등의 작가도 포함되어 있다. 이 양쪽을 모두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 옮긴이 말 중에서
오후 10시 반이 넘었다.
연락할게, 라고 약속한 시간이다.
데루키는 텔레비전의 소리를 줄이고, 침대 옆에 있는 수화기를 들었다. 외우고 있는 열하나의 번호를 누르니 신호가 다섯 번 울리기 전에 나오가 전화를 받았다.
---데루키? 힘들었지. 간 일은 어땠어?
“순조로워. 내일이면 도쿄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잘됐네. 당신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걱정했어.
애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양심에 걸린다. 나오에게는 예전에 친구와 함께 경영하던 오사카의 광고대리점에서 문제가 생겨서, 그 처리를 도우러 간다고 이야기해 두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결혼식이 다다음달로 다가와, 마지막까지도 확실히 정리하지 못했던 여자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 나고야를 향한다고 솔직하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여자들과 놀았던 벌이다.
“목소리가 밝아졌지?”
만나서 이야기하니, 상대방은 금방 받아들여주었다. 이것으로 최후의 오점도 없이 나오와 하나가 될 수 있게 되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놓였다.
---음, 그런 거 같네.
그녀가 대답하기까지, 몇 초인가 부자연스러운 시간이 흘렀다. 여자의 감이라고 해야 할까, 나오가 가진 그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날카롭다. 어쩌면 자신이 한 말을 의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설마. 믿지 못할 만한 행동은 신중하게 피해왔을 텐데.
“그것보다도, 피로연에서 갈아입을 드레스는 결정했어? 나는 분홍색 쪽이 좋던데.”
애써 화제를 돌리려 꺼낸 말에, 나오는 기다렸다는 듯이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분홍색 드레스는 피부의 노출이 너무 심하다, 프릴도 어린애들 것 같고, 역시 은회색 쪽으로 하는 것이 어떨까, 라고 묻는다.
“응, 잘 어울렸어. 그럼 더 고민하지 말고 그걸로 하면 어때? 모양도 예쁘잖아.”
그렇게 권하면서, 데루키는 드문드문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던졌다. J리그 결과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우라와렛즈가 큰 점수차로 이겼다는 화면에 임시 뉴스의 자막이 떴다. 오후 10시 33분, 교토부 남부가 진원인 지진이 있었던 모양이다. 각지의 진도를 보고, 그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오사카 시내는 진도 4. 편안하게 전화를 받을 수 있을 만한 진동이 아니다.
--- 진도4의 비밀-남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