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불공평한 태생적 조건 중 하나는 가족이다. 나는 어깨에 무거운 돌덩이 몇 개를 이고 태어났다. 억세고 괄괄한 성미의 동네 오지라퍼, 아니 세 아이를 버렸던 비정한 엄마, 오희례. 미스터리 소설가 지망생, 아니 10년 묵은 은둔형 백수, 백진주. 일대를 평정했던 동네 여신, 아니 성질 더러운 프로 이혼녀, 백현주.
이것이 18평 남짓한 공간에 다섯 식구가 개털에 벼룩 끼듯 오순도순…… 아니, 이제 와 포장할 것도 없다. 징글징글하게 모여 살게 된 경위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서촌동 솔마루 언덕길에는 콩가루 가족이 산다고.
--- p.12
“그렇지. 누나 둘은 워낙 반대였으니까.”
외모도, 성격도, 취향도, 취미도 모든 게 달랐으니 둘 사이에는 공유하는 것이 없었다. 한창 예민하던 시절에는 길에서 마주쳐도 알은척도 하지 않을 만큼 자매 사이가 극악을 달렸다. 그런 와중에 현주가 스물셋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으니, 둘은 자매임에도 친할 새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딱 눈앞에 닥치니 우리가 자매는 자매구나 싶더라. 누가 칼로 심장을 후벼파는 것처럼 가슴이 아프더라고. 지우 일이든, 문채영 일이든.”
--- pp.58~59
“아빠, 진짜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가족이 뭉치면 못 할 일이 뭐 있어?”
“아빠는 비슷한 절도 사건이 있었는지 사례를 찾아볼게. 당신은 친화력만큼은 끝내주니까 교회 사람들한테도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거야.”
“아빠, 그럼 우린 뭐 해요?”
“진주는 컴퓨터를 잘하니까 목격자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만들어. 현주, 현호하고 같이 붙이러 다니고.”
--- p.69
“야, 너 뭐라고 했냐?”
현주의 눈빛이 싸늘했다.
“왜, 왜 이래? 내가 뭘.”
현주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상연이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쌍년아, 우리 언니한테 뭐라 그랬냐고!”
현주의 호통 소리가 밤거리에 메아리쳤다.
“왜 나한테 그래? 너도 맨날 진주 언니 욕하잖아! 굼뜨다고, 지질하다고!”
“야, 너 가.”
현주가 상연의 어깨를 밀었다.
“가라고! 야, 이 쌍년아! 내가 욕하는 거랑 네가 하는 거랑 같아? 까도, 내 가족은 내가 까!”
--- p.214
현호는 말끝을 흐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러웠다. 희례가 실종되자 엄마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났다. 현호가 아는 거라곤 그녀의 고향이 부산 대연동이라는 것뿐이었다. 그 외에 희례는 좀처럼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려 들지 않았다. 물어도 어설프게 말을 돌리곤 했다. 아니, 더 솔직해지자면 엄마의 과거 따윈 관심도 없었다. 자신이 아는 엄마는 그저 엄마로서의 모습뿐이었다.
“어머니가 졸업한 학교는?”
“동아대…….”
“어머니 고향이 부산 대연동이라는 거 말고 아는 건?”
세 남매의 옹송그린 어깨가 점차 움츠러들었다.
--- p.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