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유로가 한화 2,000원에 육박하던 때 유럽 여행 계획을 짰다. 부담스러웠지만 절실함으로 인해 떠나야만 했다. 여행의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여행의 키워드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현대건축 테마 여행이었다. 보고 싶은 건축물과 머물고 싶은 도시를 추려 유럽 지도에 동선을 그리고 시간과 날짜를 맞춰 한국에서 미리 열차를 예약했다. 런던을 시작으로 파리에서 끝나고, 경유하는 홍콩에서 일주일을 머물로 한국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한국을 떠나 이렇게 먼 곳으로 여행을 시작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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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영국 미술계의 대표 컬렉터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는 미국의 현대 미술 작품들을 들여와 사치 갤러리에서 많은 전시회를 열었다. 영국의 신진 작가들은 미국의 팝아트나 미니멀리즘 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영감을 받아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현대 미술의 악동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나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등 독창적인 신진 작가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으면서 영국의 현대미술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미국의 자유로운 미술 문화를 받아들이고 영국의 독특한 현대미술 문화를 만들어 미국과 함께 세계의 현대미술을 이끄는 나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 성장 속에서 많은 지원에 힘입어 도시 문화공간의 확장과 동시에 현대미술의 자부심을 지키고 있다. 테이트 모던이 현대 미술을 미국에서 영국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버려진 도시 공간의 시간과 동시대 현대미술의 성장이 맞물려 도시의 새로운 문화가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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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영화가 강렬한 여운을 남기듯 유대인 박물관의 공간도 건축가의 메시지와 사람의 심리를 효율적으로 끌어낸 예술 작품이다. “예술가는 건축을 못 해도 건축가는 예술을 할 수 있다.”는 어머니의 조언으로 건축을 시작했던 다니엘 리베스킨트. 그는 건축물에 그의 예술성을 담았다. 구겨져 있는 형태의 강렬한 외관과 세 개의 선에서 나타나는 불편한 내부 공간은 분노, 절망, 기쁨, 희망 등 다양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관람 내내 뼛속까지 전달된다. 공간과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느낀 감정은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유대인 건축가의 작품을 통해 베를린은 속죄하는 마음과 참회의 시간을 갖는 도시가 되어 뼈아픈 과거를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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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 광역도시 파리에 대한 미래 진단, 지역적 정체성을 고수하면서 파리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가 주제다. 국제 공모전을 통해 세계 건축가들이 제안한 디자인 프로젝트 중 10개의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하고 있었다.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영국의 리처드 로저스(Richard G. Rogers), 케 브랑리 미술관과 아랍문화원을 설계한 프랑스의 장 누벨(Jean Nouvel), 실로담을 설계한 네덜란드의 MVRDV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파리의 외곽을 잇는 거대 도시를 상상하며 도전하는 건축가들의 열정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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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사랑하는 미술관이 있다. 파리에서 가장 핫한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다. 독창적이고 재능이 뛰어난 신인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회가 주로 열리는 곳. 파리의 디자이너들은 엉뚱하지만, 상식을 깨는 실험적인 디자인을 시도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이곳은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의 천국이다. 독특한 작품이 많아 시즌별로 볼거리가 많지만,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형식과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제멋대로인 듯 보이지만 정교하고 창의적인 작품과 공간 활용에 지루할 틈이 없다. 그 외에도 다양한 퍼포먼스, 작가와의 만남, 강연, 패션쇼 등 공간의 활용 범위가 넓다. 젊은 예술가들과 파리지앵들 사이에서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이곳은 살아 있는 ‘창조적인 미술관’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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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공동묘지는 아름답다. 공동묘지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처음 느꼈던 곳은 잘츠부르크에서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1965)에서 마리아와 폰 트랩 가족이 나치로부터 도망쳐 숨어 있던 곳. 페터 수도원 묘지다. 겨울이라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정원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아늑하고 따듯하게 느껴졌다. 소복이 쌓인 눈을 뚫고 자란 이름 모를 들꽃 하나가 나를 반겼던 곳. 비석과 묘비의 장식들이 하나같이 예술품처럼 매혹적이었다. 묘비의 아름다운 십자가는 행복한 인생을 살다 간 사람들만 모여 있는 듯 화려했다. 그 기억에, 파리의 공동묘지를 홀로 간다는 것이 그리 두려운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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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 조금씩 관심을 두게 된 것은 20세기 현대 건축의 거장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와 루이스 칸 때문이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사진 때문이었다. 한참 사진에 빠져 있을 때,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Magnum Photos)에 속한 작가들의 사진을 찾아보는 것이 취미였다. 그때, 198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표지를 장식한 사진 〈아프간 소녀〉(1984)를 처음 보았다. 그 강렬한 눈빛에 매료되어 한참이나 그녀의 깊고 푸른 눈빛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었다. 사진 작가 스티브 맥커리(Steve McCurry)는 이 사진 한 장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17년 후 그 소녀를 찾아가 그 눈빛을 사진으로 다시 담았다. 오랜 세월 살아온 그녀의 삶을 사진 한 장에 다시 담은 것이다. 그의 진정성에 감동하였고 그가 인도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충분히 나를 매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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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마할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붉은 사암으로 된 쌍둥이 건물이 대칭으로 놓여 있다. 동쪽은 영빈관, 서쪽은 이슬람 사원이다. 지면에서 첨탑까지는 107미터. 7미터 높이의 영묘 기단은 가로세로 길이가 100미터다. 네 모퉁이에 40미터의 높은 미나레트(이슬람교의 예배당인 모스크의 일부를 이루는 첨탑)가 밖으로 미묘하게 기울어져 있다. 지진이 났을 때 밖으로 무너져 타지마할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었다. 기단 위의 영묘는 모서리를 잘라낸 듯 팔각형의 모양으로 가로세로 길이는 55미터이다. 바닥은 붉은 사암과 대리석이 맞물려가며 기하학적 모양으로 포장되어 있다. 가장 큰 돔은 높이만 25미터. 큰 돔 주변에는 네 개의 작은 돔이 둘러싸고 있다. 인도는 가즈(80~82cm)라는 단위와 고대 인도로부터 내려오는 손가락 마디 하나의 단위 측량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정확한 대칭 미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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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피에르 잔느레도 르코르뷔지에와 50년간 협업하며 건축 여정을 함께했다. 국제적으로 유명세는 작았으나 르코르뷔지에와 함께 많은 작품을 남긴 기억해야 할 건축가다. 특히 찬디가르에 15년을 머물면서 도시 계획의 관리·감독을 총괄했으며, 찬디가르 건축학교 교장으로 학생들에게 모더니즘 건축을 가르쳤다. 그는 펀자브 주의 수석 건축가이자 도시 계획 연구팀의 고문이었다. 인도의 다른 크고 작은 도시 계획에 참여하면서 간디 도서관을 포함해 다양한 문화 시설과 주택을 설계했다. 인도를 사랑했으며 인도 공예를 응용한 수많은 가구디자인과 작품을 이곳에 남겼다. 1965년 르코르뷔지에가 사망하고 피에르 잔느레도 건강 악화로 고향인 제네바로 돌아갔다가 2년 뒤인 1967년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찬디가르 수크나 호수에 뿌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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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에서 지하철을 타고 매일 아침 맨해튼으로 향했다. 어젯밤 달콤했던 꿈을 망친 것은 지하철이었다. 정말 최악이다. 100년이 넘은 지하철에서 풍기는 시큼하고 이상한 오물 냄새, 팔뚝만한 쥐, 인터넷도 답답하다. 노선이 갑자기 마음대로 바뀌는데 친절한 안내 방송 하나 없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기다릴 뿐…. 이 사람들 뭐지? 뉴욕의 대중교통은 BMW라는 말이 있다. Bus, Metro, Walk의 줄임말이다. 바둑판 모양의 맨해튼 거리는 일주일만 걸어보면 동서남북으로 방향 감각을 쉽게 익힐 수 있다. 스트리트(street)와 애버뉴(avenue)만 외우면 된다. 어디서든 잘 적응하는 성격 탓인지 금세 불편함이 익숙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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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토머스 헤더윅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건축이 아니라 스펀 체어(Spun Chair) 때문이다. 스펀 체어는 회전체 형태의 바퀴 없는 의자로 놀이기구를 타듯 앉아서 빙빙 돌 수 있는 재미있는 의자다. 처음 서울 DDP에서 의자를 보는 순간 누가 이런 재미있는 발상을 했는지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의 디자인에 휴식과 놀이를 담아 사람들의 마음마저 행복을 주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 개발의 큰 프로젝트부터 건축, 공간디자인, 설치, 조각, 가구, 제품, 자수 등 작은 소품 하나까지 디자인한다. 천재는 언제나 작품 범위가 넓다. 그는 21세기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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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마천루가 한눈에 들어 왔다. 허드슨강도 보이고,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뉴욕타임스도 보인다. 발아래는 1858년에 창립한 뉴욕의 최대 백화점 메이시(Macy’s)가 있다. 인도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도로에는 옐로 캡이 신호를 기다리며 일렬로 서 있다. 저 멀리 브루클린 다리를 지나 강 건너 브루클린까지 보인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허드슨강 건너 아스라이 뉴저지까지 보인다. 바로 옆에는 손만 뻗으면 닿을 듯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이 웅장하게 서 있다. 갑자기…. 온몸의 털이 서면서 닭살이 돋는다. 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전율을 느낀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그렇게 현장 한가운데 서서 한참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게 밖을 바라봤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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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뉴욕을 사랑했듯이 나의 도시를 사랑한다면 행복은 이렇게 먼 곳까지 와서 찾을 필요는 없는 거니까. 모든 것이 괜찮으니 돌아가도 된다는 느낌. 뉴욕이 이제야 편안하게 나를 놓아주겠노라 허락하는 듯했다. 이곳에서의 삶은 힘들었지만, 행복했다. 부활절에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에는 아무도 없는 맨해튼 거리를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깔깔대며 친구들과 활보하고 다니던 추억도 있다.
매일 보던 마천루와 붉은 노을, 브로드웨이에서 실컷 즐겼던 뮤지컬과 연극들, 무용가들의 땀의 현장. 그리고 수많은 미술 전시, 퍼레이드와 축제, 록펠러센터에서 보냈던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티파니 앞에서 들었던 달콤한 아카펠라, 파리에서 나를 만나러 온 샤르벨과 파밀라 그리고 많은 인연, 도시를 즐기며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과 생각들, 수많은 삶의 이야기…. 소중한 영감을 주고받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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