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학이 날아간다
지리산으로 날아간다
비가 오면 종이는 슬쩍
남겨두고 날아간다
--- p.21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선암사>전문
--- p.47
나그네
한 알 모래 속에 바다가 있다
한 알 모래 속에 섬이 있다
그 섬에 나그네 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
--- p.38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미안하다> 전문
<고요하다>
강아지똥이 얼어붙어 고요하다
개밥그릇도 얼어붙어 고요하다
천지연 폭포도 얼어붙어 고요하다
새벽이 지나도록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도 날아가다가 얼어붙어
고요하다
<여수역>
봄날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가 동백꽃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가을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는 오동도 바다 위를 계속 달린다
다시 봄날에 기차를 타고
여수역에 내리면
동백꽃이 기차가 되어버린다
<연꽃>
남대문과 서울역 일대가
온통 연꽃으로 만발한 연못이었다는
서울시청 앞 프라자호텔 자리에
지천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의 연못 자리가 바로 지금의 서울역 자리라는
그런 사실을 안 순간부터
서울역은 거대한 연꽃 한 송이로 피어나더라
기차가 입에 연꽃을 물고 남쪽으로 달리고
지하철이 연꽃을 태우고 수서역까지 달리고
진흙 속에 잠긴 인수봉도 드디어
연꽃으로 피어나
서울에 연꽃 향기 진동하더라
--- pp. 15, 74, 70
<고요하다>
강아지똥이 얼어붙어 고요하다
개밥그릇도 얼어붙어 고요하다
천지연 폭포도 얼어붙어 고요하다
새벽이 지나도록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꼭대기에 앉아 있는
새 한 마리도 날아가다가 얼어붙어
고요하다
<여수역>
봄날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가 동백꽃 속으로 들어가버린다
가을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는 오동도 바다 위를 계속 달린다
다시 봄날에 기차를 타고
여수역에 내리면
동백꽃이 기차가 되어버린다
<연꽃>
남대문과 서울역 일대가
온통 연꽃으로 만발한 연못이었다는
서울시청 앞 프라자호텔 자리에
지천사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의 연못 자리가 바로 지금의 서울역 자리라는
그런 사실을 안 순간부터
서울역은 거대한 연꽃 한 송이로 피어나더라
기차가 입에 연꽃을 물고 남쪽으로 달리고
지하철이 연꽃을 태우고 수서역까지 달리고
진흙 속에 잠긴 인수봉도 드디어
연꽃으로 피어나
서울에 연꽃 향기 진동하더라
--- pp. 15, 74, 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