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교실 풍경
강의만 하는 교사, 대답 없는 학생, 학생들의 삶이나 이해와는 무관한 지식의 주입은 어쩌면 이번 한 번만이 아닐 터. 아이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내용을 과감하게 추렸어야 한다는 후회, 애써 준비한 내용이 거의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는 아쉬움, 졸고 있는 녀석들에 대한 연민, 그리고 어딘가 모를 답답함이 나를 짓눌렀다.
교단에 선 지 20년이 넘지만, 여전히 수업은 만만치 않다. 열심히 가르치고, 즐겁게 배우고, 함께 느끼는 그런 수업, 늘 읊조리는 '살아있는 수업'은 여전히 꿈인가! 나에게 수업은 무슨 의미인가, 아니 수업이란 대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업은 소통이다
교사가 친절하게 안내하고 자극해야 학생들이 생각을 열고 말문을 튼다. 그래야 소통이 시작된다.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어미 닭의 품속에서 부화를 마치고 알을 깨고 나올 때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안에서는 병아리가 여린 부리로 껍질을 쪼고, 어미 닭도 병아리가 쉽게 껍질을 깰 수 있게 밖에서 도와준다. 어미 닭이 성급하게 먼저 쪼아서도, 병아리만 힘들여 쪼아서도 안 되며, 함께 쪼아야만 껍질을 깨고 진정한 새 생명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수업에는 상대를 헤아리고 때맞춰 도와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민족주의와 잘 사귀자
우리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단일 민족 의식이 대단히 강한 편이다. 실제로는 수많은 전쟁을 통해 다양한 혈통이 스며들었음에도 우리의 의식은 변함이 없다. 이것은 북한을 우리 동포로 여기는 확실한 근거이기도 하다. 또 일제 강점기에 민족 독립의 기치 아래 투쟁해서 해방이라는 값진 결실을 얻어 냈으므로 민족주의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정의로운 표현으로 통할 정도이다.
그러나 안으로의 단결은 외국인에 대한 배타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른바 선진국, 후진국 사람을 가리지 않고 외국인이라면 길 가다가 꼭 한 번은 뒤돌아보는 특징이 있다. 이를 두고 혹자는 우리의 민족주의 정신이 강하다고 자부하는데, 사뭇 폐쇄적인 태도가 느껴진다. 언젠가부터 우리 주변에 그득한 외국인 노동자들, 농촌의 외국인 여성, 그들의 아이들에 대해 우리는 쉽게 한국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세계사는 서양사라고?
이래도 서양 중심의 역사가 당연한 것인가? 17세기 파리 거리는 한양 거리보다 훨씬 지저분했다. 잘 알려진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은 화려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화장실이 변변히 없었다. 그래서 신사, 숙녀들이 정원에서 슬쩍 볼 일을 보았다는데, 골머리를 앓던 정원사가 '소변 금지'라고 세운 팻말 이름이 '에티켓'이다. 에티켓 지키기에 열중하고 있는 우리의 서양 중심의 사고가 새삼 부끄럽게 느껴진다. 적어도 산업 혁명 이전의 서양은 우리가 닮고 배워야 할 보편도 선진도 아니었던 것이다,
수업 연구 실황 중계
기존의 역사 교육 관련 서적에서 수업에 대한 설명은 제법 나왔는데 별로 생생하지 않았다. 지도안만 예시되어 있거나 수업 중의 대화를 채록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수업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안 떠올랐기 때문이다. 왜 그런 분석을 했는지, 어떤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한지, 어떤 발상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눈으로 보이는 교실 분위기와 학생들의 표정 등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모로 엉성하지만 실제 수업 상황을 동영상으로 제시하여 좀 더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아는 데까지 말하라
교사 혼자 하는 열정적인 강의가 수업에서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발상을 바꾸어서 학생이 스스로 탐구하고 진술하게 해 놓고 교사가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면, 학생이 수업 내용을 제대로 알게 되지 않겠는가. 발표를 시켜 보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학생 스스로가 알게 되고, 교사들의 눈에는 더 명확하게 보인다.
혼자서 혹은 모둠 단위로 모여서 이해할 수 있는 것까지 미주알고주알 강의할 필요는 없으며, 필요하면 압축적으로 정리해 주면 된다. 발표를 통해 교사들은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을 헤아릴 수 있다. 다음 단계의 수업 전략을 짜거나 학생들의 학습 수준, 이해하는 용어 등을 짐작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논(論)하고 나서 술(述)하자
논술이란 '논하고 난 다음에 술하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따져 물으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다. 마음만 급해서 섣부르게 쓰는 글은 앞뒤가 안 맞기 일쑤이다. 생각 없이 쓴 글은 알맹이가 없기 마련이다. 교사나 학생 모두 이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막연한 안내와 결과물 검사, 짧은 생각과 엉성한 글짓기는 논술에 대한 회의만 낳을 뿐이다. 당장 쓰는 글들이 신통치 않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학생으로 하여금 자기 힘껏 생각해서 한 자 한 자 의미를 담아 글을 쓰게 해야 한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