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뭐 하는 물건이에요?
도서2팀 진연우 (lila@yes24.com)
서점에 들어와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정말 많은 책들이 출간된다는 것이었다. 인터넷 서점에 등록되지 않은 책도 있으니 실제로 나오는 책의 양은 훨씬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렇게 많은 책, 누가 읽고 있는 걸까? 분명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주변에서 책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책 읽는 모습이 어색해졌다. 대학에서도 시험이나 과제 때문이 아닌, 책을 자연스럽게 가까이 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읽지도 않는 책이 많이 나온다니. 혹시 책에 내가 모르는 다른 용도가 있지 않나 의심스럽다.
돼지 레옹이 사는 버드나무 마을의 동물들은 책을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 오랜 옛날에는 그들도 책을 읽었지만, 읽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사용법을 알고난 후부터 책을 읽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책이 읽는 물건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버드나무 마을 시장은 매년 책 사용법 대회를 열어 책을 ‘다양하게’ 사용하는 법을 마을에 널리 알린다. 뱀 아주머니는 책을 세워 그늘을 만들고, 곰 아저씨는 두꺼운 책을 베고 낮잠을 잔다. 레옹은 책을 찢어 엉덩이를 닦기 시작한 후부터 똥을 묻히고 다니지 않아 아이들의 놀림에서 벗어났다.
버드나무 마을 시장은 집에서 몰래 책을 읽으며 즐거워 하고, 책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마을 동물들을 구경하며 비웃는다. 재미있는 책을 독차지 하고 싶고, 남들이 똑똑해지는 걸 막기 위해 책 읽는 법을 숨겨왔던 것. 우연히 이를 알게 된 레옹은, 책으로 똥을 닦는 대신 읽기 시작한다. 책 사용법 대회 날, 레옹은 마을 동물들 앞에서 책을 읽어주며 시장의 비밀을 폭로한다. 동물들은 좋은 책을 옆에 두고도 읽지 않던 지난 날을 반성하며 열심히 읽을 것을 다짐한다. 시장은 자리에서 물러난 후 자신의 집을 도서관으로 개방한다.
『책으로 똥을 닦는 돼지』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지만 어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 자의든 타의든 어릴 때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책을 자주 읽었다. 글을 깨치기 전에는 잠들기 전 부모님께 책을 읽어 달라고 졸랐고,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글을 배운 후로는 스스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초등학교에서는 학급문고 덕분에 말 그대로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책 읽는 기쁨을 느껴 보았다. 그런데 자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책은 점점 멀어진다.
우리는 너무 바빠졌다. 책 말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수백 개의 TV 채널에서 쏟아져 나오는 방송, 이제는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 같은 스마트폰이 책을 대신한다. 세상에 책이 그렇게나 많은데 읽을 책이 없다고, 할인되지 않은 책 값이 너무 비싸다고도 한다. 책 읽어야 하는데, 책 정말 좋은 건데, 말하면서도 정작 즐기지는 못한다. 동화 속 마을처럼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 행복해 하고 똑똑해지는 걸 두려워하는 누군가가 이리저리 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은 언제나처럼 꾸준히 나오지만 서점과 도서관이 아닌 곳에서는 만나기 어려워졌다. 그 많은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걸까. 사람들이 책 읽는 법을 잊어간다. 책장에 꽂아두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가장 좋은 사용법은 읽는 것. 동화를 마냥 동화로만 보고 넘기기 어려운 요즘이다.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건 막을 수 없어도 책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까지 잊어버리는 날만은 제발 오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