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현장에 계실 거요?”
“예. 공사 때문에 무급 휴가를 여섯 달 얻었어요.”
“그러니까, 매일 현장에 나오시겠다고?”
“왜, 싫으세요?”
“그럼 미리 말씀을 하셨어야지. 우린 누가 지켜보고 있으면 일을 잘 못한단 말이오. 보통 집 주인은 일주일에 한 번만 현장에 나타나는데. 돈 주는 날에만.”
“어쨌든 난 매일 현장에 나올 겁니다.”
“타네 씨, 농담도 잘하시네. 여하튼 한 가지만 확실히 해둡시다. 현장 지휘는 누가 하는 거요?”
--- p.22
2인조는 일하는 속도도 느려터진 데다 툭하면 꽁무니를 빼기 일쑤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그 놀라운 재주라니. 까마귀든 뭐든 진짜 새가 무색할 정도였다. 지붕 밑에서 기왓장을 챙기고 있는 척하다 내가 지붕 위로 올라가는 사이에 벌써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것도 개떼와 함께. 그리고 돌아와서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강아지가 쥐약을 삼켰다느니, 은행에 급한 볼 일이 있었다느니, 차량 안전점검을 받으러 갔었다느니, 국세청에서 세무조사를 나왔다느니 등등. 그리고 말끝마다 이렇게 덧붙였다. “너무 급해서 미리 말씀을 못 드렸지 뭐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어쩌면 그렇게 잘도 갖다 붙이는지. 퇴근하면서 “내일 봅시다.”라고 해놓고는 내일도 모레도 아니고 사흘이나 지나서 그 막돼먹은 개떼를 끌고 나타나는 꼬락서니라니.
--- pp.31~32
“기계로 하지 그러세요?”
“그럴 필요 없소. 멀쩡한 두 손 놔두고 뭐 하러 기계를 써?”
“그럼 어떻게 정확한 모양을 만들 거예요?”
“손으로 구부리고 망치로 두드려서.”
“용접하기 전에 함석판부터 닦아주셔야죠?”
“그럴 필요 없소. 이것 봐요, 타네 씨. 내가 이런 일 처음 해보는 줄 아쇼? 대로변에 있는 은행 건물을 손본 게 바로 나요……. 거 왜, 레퓌블리크 가에 있는 큰 건물 말이오.”
“그때도 휴대용 가스버너로 용접하셨나요?”
“아니지, 그땐 라이터로 했소이다. 그렇지, 이 친구야? 이 페드로 캉토르께선 라이터로도 용접을 하신다니까…….”
그러자 피에르인지 피에로인지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페드로는 아예 뒤로 벌렁 나자빠졌다. 나는, 망연자실한 채 그 꼬락서니들을 지켜보았다. 내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나는 페드로의 ‘걸작’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세자르의 <압축>이랄까, 칼더의 <모빌>이랄까.
--- pp.44~45
우리는 절대로 집을 가질 수 없다. 그 안에 들어와 살 뿐. 즉 ‘생활’할 뿐. 어쩌다 운이 좋으면 집이랑 친해질 수 있다. 그러자면 시간과 노력과 참을성이 필요하다. 일종의 ‘말없는 사랑’이랄까. 우리는 집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하나하나 배우고 익혀야 한다. 그 힘과 연약함도. 그리고 수리를 할 땐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안에 자리 잡은 ‘생태계’를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하루하루가 지나고 한 해 한 해가 지나면 집과 그 안에 사는 사람 사이에는 특별한 우정이 싹튼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런 우정이. 그때 우리는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으리라. 이 집이 절대로 우리 것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를 평생토록 든든하게 지켜 주리라는 것을.
--- p.78
온수기 앞에 버티고 선 우리는 바늘이 돌아가기만 기다렸다. 하지만 바늘은 그 자리에 들러붙은 듯 계속 0만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곧 돌아가겠죠……. 혹시라도 나중에 온수기나 이번에 손본 것들한테 문제가 생기면 바로 저한테 연락주세요. 그동안 저한테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그럴 때라도 제가 도와드려야죠.”
“고마워요, 코티 씨.”
“어, 지금쯤은 바늘이 돌아가야 하는데?”
“급수전은 열려 있나요.”
“그럼요. 이상하네.”
“이게 무슨 소리죠?”
“소리라뇨?”
“물 흐르는 소리 같은데.”
마치 레이몽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대통령’께서는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부엌으로 돌진했다. 부엌 바닥에는 물이 5센티 넘게 고여 있었다. 그는 “맙소사맙소사맙소사!”라고 외치더니, 순식간에 바지를 벗어들고는 그걸로 부엌바닥을 훔쳐내기 시작했다.
--- pp.206~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