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영상 작품을, 가장 값싸게 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 그래봐야 겨우 수십 년 전만 해도 영상 작품을 감상하려면 조금 더 많은 돈이 들었다. 드라마를 DVD로 대여해 본다고 해도 DVD 한 장에 드라마가 2회 정도밖에 담겨 있지 않았고, 대여료도 지불해야 했다. 지금처럼 값싸게 많은 영상을 볼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도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영상을 보려면 그만큼 돈을 들일 각오를 해야 했고, 기껏해야 영화 마니아나 드라마 애호가, 애니메이션 팬 정도만 그만한 돈을 지불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를 이용하면 매달 천 엔 내외의 저렴한 비용으로 ‘원하는 만큼’ 영상을 볼 수 있다. 적은 비용으로 한 달에 몇십 편, 마음만 먹으면 몇백 편의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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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온라인 커뮤니티는 ‘성공’을 열망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한방에 인생 역전을 노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공하려면 00가지만 기억하라”, “잘나가는 사람들의 00가지 비밀”과 같은 ‘치트(cheat, 게임이나 프로그램을 부정하게 바꾸어 캐릭터의 능력을 향상시키거나 아이템 또는 돈을 늘리는 것)’를 찾는다. 라이프 핵Life Hack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지만 치트의 원래 의미는 ‘부정행위’, ‘속임수’, ‘사기’다. 꾸준하게 노력해봐야 보상이 따라올 보장도 없는 시대이다 보니 이해는 된다. 다만 그것을 영상 작품에서까지 추구해야 하느냐다. 아니,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영상 ‘작품’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대신 ‘콘텐츠’라는 말을 사용한다. 영화나 드라마 등 영상 작품을 포함한 다양한 미디어 오락을 ‘콘텐츠’라고 총칭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제는 “작품을 감상한다”보다 “콘텐츠를 소비한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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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감기를 하거나 건너뛰기를 하는 사람들은 스토리를 따라가는 데 필요한 정보가 대사나 내레이션으로 모두 나온다고 믿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도 없는 방에 얼음이 다 녹지 않은 채 마시다 만 위스키 잔이 있다면 그것은 ‘위스키를 마시던 사람이 방을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을 나타낸다. 남편이 퇴근해 집에 들어왔는데도 “다녀왔어요”, “수고했어요”라는 말이 오가지 않는다면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한 소도구가 필요 이상으로 오래 화면에 잡힌다면 전개상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교훈이나 풍자를 이야기 형식으로 전달하는 우화에서도 직접적인 설명은 하지 않는다. 전달하고 싶은 바를 다른 방식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화면에 비친 아름다운 자연이나 사람들의 행동을 ‘단지 바라만 보는’ 것도 영상 작품의 묘미다. 그림이나 사진을 감상하듯 영상 속 아름다운 배치와 구도, 색감을 가만히 바라보고 그것이 어떤 주제를 비유한 것인지 생각해보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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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전체 내용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패스트무비’를 이길 것은 없다. 어째서 그렇게 하면서까지 내용을 빠르게 알고 싶은 걸까? 친구들과의 대화에 낄 수 있고, 결말까지 알았다는 만족감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료로 말이다. 그런 이유로 패스트무비에는 일정한 수요가 있었다. “2019년 여름 무렵부터 조금씩 보이다가 어느 순간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접했어요.”(F 씨) H 씨(남성, 대학교 2학년)의 경우 자신은 본 적 없지만 친구들이 보았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이니 2019년이네요. DVD방에서 친구들과 어떤 영화를 봤어요. 대여한 DVD를 재생한 뒤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그 친구가 ‘앗,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으로 ‘패스트무비’의 존재를 알게 되었어요. 친구는 이야기의 결말까지 전부 알고 있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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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친구와 연결되어 있다. 말 그대로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늘 어떤 반응을 요구받는다. 그렇다고는 하나 세상에 그렇게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손쉽게 분위기가 살아나는 데는 “그거 봤어? (혹은 그거 들었어?)재미있더라. 꼭 봐!”가 유용하다.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혹은 음악 등의 콘텐츠를 화제로 삼는 것이다. 이런 화제를 무시하면 대화에 끼지 못할 뿐 아니라 후폭풍이 따른다. 소위 말하는 ‘읽고 씹기’는 ‘그 화제에 관심이 없다’라는 적극적인 태도로 받아들여진다. 화제가 된 작품은 가급적 보고 감상을 말해야 그룹의 평화가 유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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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나 1990년대에는 개성이 있어야 한다는 압박이 지금만큼 크지 않았다. 오히려 ‘다수에 속함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얻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주류 집단에 속해 있거나 다수와 비슷한 기호를 가지면 크게 틀릴 일이 없다. 모두가 투표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유명한 간식을 먹고, 모두가 보는 드라마를 보는 식이다. 다들 좋다고 하는 것이니 실패할 확률이 적다. 실패하더라도 모두 같이 창피를 당하니 그리 부끄럽지도 않다. 모두가 같이 불평을 말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지금은 문화적으로 주류가 사라졌다. 가치관의 다양성을 추구하다 보니 취미나 취향이 완전히 나누어져 ‘압도적인 다수가 좋아하는 것’이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옛날에는 자신이 개성 없고 평범하더라도 ‘반의 대부분 여자애들이 좋아하고, 대부분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것만 잘 알면 안심할 수 있었어요.”(모리나가 씨) 그때 남자애들이 좋아한 건 [근육맨], [드래곤볼], [슬램덩크] 정도다. 과거에는 ‘보통’ 아이들이라면 으레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드물다. 취미와 취향이 다양해지고 세분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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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라는 호칭이 일반적으로 보급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그 후 20여 년 동안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많이 사용되었다. ‘내향적이고 사회성이 떨어지며 이성 교제 경험이 적고 패션에 둔감한 자’ 등의 이미지였다. 오타쿠에 대한 편견과 박해는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문화가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던 1990년대 전반에 걸쳐 지속되었다. 2000년에 들어 오타쿠 문화가 미디어에 종종 등장하면서 세상은 더욱더 기묘한 눈으로 오타쿠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무렵부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고등학생과 대학생 중 일부가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이 취미’ 정도의 의미로 “나는 애니메이션 오타쿠”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과거 자신에 대해 ‘오타쿠’라고 칭하는 행위는 자기비하에 가까웠다. 오타쿠라는 고백은 “나는 사회 부적응자”라고 소개를 하는 꼴이나다름없었다. 물론 2010년대 초반에도 ‘어둡고, 무섭고, 기분 나쁘고, 찜찜한’ 존재로서의 ‘찐(진짜)오타쿠’를 기피하는 경향은 뿌리 깊이 남아 있었다. 한편으로 ‘오타쿠’의 의미가 가벼워지고 ‘○○를 좋아한다’는 정도의 가벼운 의미로 “○○오타쿠”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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