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파의 특징을 알고 싶다면 피렌체에 도착하는 즉시 산로렌초 광장으로 달려가보라. 그리고 산로렌초 성당을 마주하고 서서 오른쪽에 있는 부조를 자세히 뜯어보라. 여행자가 볼로냐를 둘러본 후에야 피렌체를 찾는다면, 위대한 화가들을 줄지어 배출했지만 피렌체에게는 악몽 같은 여행 일정이 될 것이다. 구이도 레니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서 살비아티, 치골리, 폰토르모 등의 얼굴에 어찌 감동할 수 있겠는가? 피렌체파의 명예를 지키려 안간힘을 다했던 바사리에게 속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영웅들이 멋진 그림을 그리고 강렬하고 두드러진 색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색에서는 어떤 조화나 어떤 감정도 읽어낼 수가 없다. 베르테르가 그들의 그림을 보았다면 아마도 "나는 사람의 손을 찾고 있었는데 기껏 잡은 손이 나무로 만든 것이로구나."라고 한탄했을 것이다. 물론 특출하게 뛰어난 두세 명의 천재는 이러한 한탄에서 당연히 제외되어야 한다.
---pp. 144~145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갖는다. 미술 평론가들이 냉정한 지성으로 설명한 방법대로 그림을 읽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내면의 감성대로 그림을 감상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이런 의문에서 피카소의 <기타와 바이올린>과 <테이블 위의 기타>를 꼼꼼이 뜯어보자. 두 작품을 처음 대하는 사람은 그림의 위아래를 구분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평론가들은 능수능란하게 두 작품에서 피카소의 정신세계를 읽어내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그림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평론가들에게 위와 아래를 구분해보라 한다면 몇 명이나 그것을 정확히 구분해낼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모든 평론가가 정확히 지적해내지는 못할 것 같다. 그리고 기호학적 분석에 따르면 그림의 위아래가 뒤집혔을 때는 그 해석도 당연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물론 이것은 평론의 무용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예술품을 감상할 때는 냉정한 지성을 앞세운 평론보다 관찰자의 감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스탕달도 똑같은 결론에서 출발했다. "누군가가 위대한 대가의 그림을 찬양할 때마다 나는 '내가 그 그림을 길에서 우연히 보게 되더라도 역시나 그 그림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을까?'라고 반문해보았다!"라고 스탕달은 말한다. 그러면 아무런 편견 없이 위대한 대가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그림을 올바르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pp. 25~26 옮긴이의 글
베네치아파는 자연에 대한 주의깊은 관찰, 그리고 우리 눈길을 자연스럽게 사로잡는 그림들을 거의 기계적으로 모방함으로써 태어난 화파인 듯하다.
그러나 피렌체파의 두번째 빛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는 왜 그렇게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연구한 결과를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그들의 그림은 후손들에게 일종의 계율이 되었다. 그들의 후계자들은 자연에 대한 정확한 관찰보다 스승이 남긴 계율을 더 소중히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은 사실적 현상을 정확하게 관찰하는 데 있다."는 레오나르도의 생각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처럼 레오나르도의 계율에 담긴 뜻을 제대로 이해해서 자연을 정확히 관찰하려 하지 않고 계율 자체에 얽매인 까닭에 후세의 화가들은 레오나르도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현시킬 수 없었다. 그 결과로 바사리와 그 도당은 대가의 결함을 과장되게 떠벌리면서 몹쓸 짓을 저질렀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배우게 된다. 뛰어난 인물의 재능에 대해 피상적으로 아는 것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이 아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요즘 세상에서는 깊은 지식보다 끈질긴 인내심이 더 필요하다.
---p. 148
다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것보다는 차라리 세상의 어떤 것도 보지 않는 편이 더 낫다. 눈에 보이는 그림은 사라질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평생 아카데미에 충성하는 불쌍한 앵무새가 되어 살롱에서 지독한 권태와 씨름해야 할 것이다. 가령 예술에 관련된 모든 책에서 이구동성으로 말하기 때문에 미켈란젤로가 위대한 데생 화가였다고 믿어버리는 고약한 습관에 물들어버린다면, 그 순간부터 그 사람은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볼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며 그 결과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창의성마저 상실하게 될 것이다
---p. 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