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스토리란 만화의 이야기를 말한다. 최근 들어 ‘만화스토리 작가’라는 말이 일반화되어 있으나 기실 이러한 용어가 정착된 것은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만화스토리 작가는 ‘스토리작가’라는 명칭보다 ‘스토리맨’이라는 명칭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스토리작가’와 ‘스토리맨’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작가로서의 지위에 따른 보장의 차이이다. 단순한 ‘스토리맨’이었던 시절 만화스토리작가들은 만화가를 보좌하는 스텝(step)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스토리작가에 대한 처우가 열악한 환경이었음을 반증한다. 일반적으로 저작물에 대해서는 작가의 저작권이 인정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그렇지만, 스텝으로 대우받던 시절의 스토리맨들에게 저작권은 가당찮은 것이었다. 만화의 모든 저작권은 만화가의 몫이었고 스토리맨들은 만화가를 보좌하는 단순한 스텝으로 취급되었다. 당연히 그들에게 저작권이 주어질리 없었다.
1980년대 중반에 이르러 만화시장은 전문 만화잡지의 발행과 더불어 외형적으로 급성장을 이루게 된다. 이와 더불어 잡지사의 현상공모를 통한 만화가와 만화스토리 작가의 발굴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주간연재와 월간 연재의 타이트한 연재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작화와 스토리의 분업화가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스토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전문적인 만화스토리작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스토리맨’에서 ‘스토리작가’로의 전환을 가져오게 한 계기였다. 하지만, 독자들에게까지 스토리작가의 존재를 알리기에는 아직도 열악한 상황이었다. 결국, 90년대 초반에 와서야 비로소 독자들에게 스토리작가의 존재를 알리는 작품이 등장하게 된다. 바로 ‘야설록’의 작품 『남벌(南伐)』의 등장이다.
그가 일간스포츠에 93년 7월부터 94년 11월까지 연재한 『남벌(南伐)』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만화가 ‘이현세’보다 스토리작가 ‘야설록’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일반 독자들 사이에 만화작품이 만화가와 스토리작가의 공동작업의 소산임이 인식되어졌으며 스토리작가에 대한 관심도 함께 증대되기 시작하였다. 야설록 이후 『비트』의 스토리 작가 박하, 『타짜』, 『사랑해』의 김세영, 『공포의 외인구단』의 스토리작가 김민기 등이 알려져다. 그들 대부분이 임웅순의 뒤를 이어 한국 만화스토리작가 2세대를 형성한 작가들이다. 이후 잡지사의 현상공모를 통해 스토리작가들의 등용이 활발해지면서 2, 30대 작가 군들이 배출되기 시작하고, 그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만화시장은 외형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06년 자료를 살펴보면, 만화산업의 시장규모는 7,591억 원에 이르고, 발행부수는 연간 3만 3,359종이나 된다. 이는 전체 출판 시장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이러한 만화시장의 성장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만화는 점점 전문화 되고 세분화되어 간다. 한국만화의 중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길은 우수한 만화스토리작가의 양성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스토리작가 양성시스템이라고는 명지대 사회교육원 내의 만화스토리학과와 우리만화연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만화스토리양성교실 정도가 유일하다. 대학의 만화관련학과에 스토리를 전문적으로 쓰는 작가들이나 관련전공자들이 이제 겨우 첫 발을 내딛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만 보아도 만화스토리 작가의 제대로 된 육성시스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하겠다.
13년 동안 만화스토리작가로 일하며 개인 홈페이지를 10여 년 동안 꾸려왔다. 홈페이지를 통해 스토리 작가에 대한 꿈을 꾸는 학생들을 만났고, 내 예상보다 만화스토리에 대한 관심이 훨씬 높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들의 공통된 질문은 ‘무엇을 보고 공부해야 할 것인가?’와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였다. 만화스토리라는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면서 가장 처음 접하는 난관은 보고 배울 책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필자의 데뷔 시절에도 길잡이가 되어줄 책 한 권이 아쉬웠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후배들이 똑같이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다.
1998년, 국내 만화스토리작가로는 처음으로 내 개인홈페이지를 열었다. 네이버니 야후니 하는 포털사이트들에 만화가의 링크만 있을 뿐 만화스토리작가의 링크도 없던 시절이었다. 홈페이지를 열고 일일이 포털사이트들에 메일을 보내 만화스토리 작가의 링크가 만화가의 링크와 분리되도록 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처음 결심했을 때에는 2, 3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되었었지만 8년이 지난 지금에야 책을 내게 되었다. 미숙한 지쒽과 솜씨나마 만화스토리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