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회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 99/12/28 김선희(rosak@hanmail.net)
1990년대, 우리는 세계 도처에서 자행되어온 피비릿내나는 살육을 보며 때론 분노하고, 때로는 인간에 대한 회의에 절망하기도 하였다. 보스니아에서부터 코소보로, 동티모르에서 체첸에 이르기까지, 인종적. 종교적 차이로 인해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 인간의 자화상. 속칭 '세계화'로 표현되는 보편성의 시대에 민족적 특수성이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작금의 상황은 굳이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매우 우려되는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갈등과 혼란의 시대에 '민족의 전시장'이라 불리는 미국 사회는 어떠한가? 물론 LA폭동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 또한 완전한 조화의 상태에 놓여있다고 할 수만은 없다. 어떤 계기만 주어진다면 폭발할지도 모를 '잠재적 갈등'은 항시 잠복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가 다원주의사회로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조화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기득권을 가진 다수와 소외된 소수가 때로는 대립하고, 때로는 협력해서 인류의 역사를 이루어낸 것이라면, 또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 불의에 대한 깨어있는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미국 사회에서 다수파를 형성하고 있는 WASP(개신교를 믿는 앵글로색슨계 백인)의 자각(自覺)이야말로 미국이 이처럼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는 WASP의 '민족적 자각'에 초점을 맞추어 미국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있다. 노예해방에서부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동력으로서의 WASP의 역할, 민권운동과 여성해방운동을 통한 변혁의 과정에서 나타난 WASP의 의식의 변화 등을 잘 보여주었다. 또한 사립학교와 아이비리그, 사교클럽으로 상징되는 WASP의 배타성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가 하는 점도 잘 나타난다. 특히 저자는 여타 민족들에 대한 사립학교 입학 허용과 같은 배타성의 감소는 문화다원주의를 향한 WASP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메카시 선풍'의 장본인인 조지프 메카시 의원이 아일랜드계이며, 그의 빨갱이 사냥은 실은 WASP 상류층을 겨냥했다는 점, 미국 사회에서 사회이동에 따라 개종(改宗)이 빈번히, 그것도 일정한 패턴에 입각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등이 눈에 띄는 내용이다. 특히 WASP 가정에서의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묘사는 매우 설득력이 있다. 유교문화권에 속한 우리에게는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익숙한 모습인데 반해, 여기서는 '가모장적 어머니(matriarchal mother)' 상이 눈에 띈다. 그리고 이러한 가모장적 어머니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났음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독자들에게 친숙한 문학작품들과 영화를 인용함으로써 다소 생경스러울 수도 있는 WASP라는 주제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뷰캐넌과 개츠비를 통해 조상 대대로 이어온 상류계급과 신흥 상류계급을 상징적으로 잘 그려낸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게츠비'의 인용을 통해 1920년대에 최대 전성기를 구가하였던 WASP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영화 '보통 사람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통해 WASP의 속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보이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너무 많은 사례들을 나열함으로써 이 분야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혼돈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책의 뒷 부분에서 서술할 부분을 미리 '○○에서 다루겠지만......' 과 같은 식으로 미리 언급함으로써, 책을 다시 한번 읽지 않는다면 잘 이해되지 못할 서술형식이 되어버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WASP는 한편으로는 사회의 변혁을 이끈 주도층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변혁의 대상으로서 존재해왔다. 그런데 WASP라는 용어는 스스로를 경멸해서 쓰는 호칭이라 한다. 그러므로 이 용어에는 자기 비판적인 의미가 어느 정도 담겨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을 근거로 하여 일본인인 저자는 '다수파 일본인'이 스스로를 낮추어 부를 수 있을 만한 호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개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끼리의 그릇된 동류의식을 바탕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 이러한 잘못된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과연 변화를 주도해나갈 자격이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