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과학기술의 시대와 새로운 리더십
- 평생 과학기술을 연구한 석학이 융합과 소통의 총장이 된 비결
큰 계획을 실현시킬 때에 천천히 서둘러서 한다. 계획에 따라 천천히 시작해서 변화와 개혁의 속도를 늘려가되, 공감하는 구성원의 수를 점진적으로 늘려간다. 다시 말해서 전체 구성원의 수에 해당하는 전체 질량을 가급적 크게 하면서, 변화의 속도도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천천히 서둘러라”는 유명한 말은 로마의 절대권력자이며 달팽이 걸음으로 나아가는 개혁가였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한 말로 알고 있다. 큰 집단일수록 변화의 속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공감하는 구성원의 참여를 늘려나가는, 질량을 크게 하는 것이다. ---p.240
- 원칙과 정도를 통해 ‘토론의 달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설득하다
내가 200여 개의 4년제 대학 총장으로 구성된 대학교육협의회의 회장으로 있던 2007년 6월 무렵 노무현 대통령과 대학총장 간의 토론을 위해 청와대에 초청받았을 때의 일이다. … 대통령께서는 입시에서 서울대가 기존 입장을 변경하지 않으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취지의 폭탄선언에 가까운 말씀을 하였다. 그 순간 전국방영을 하던 TV 카메라의 초점이 내게로 맞추어졌고 일간신문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내게 쏟아졌다. 나는 대통령의 발언이 계속되는 동안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 대통령께서는 이제 같은 자리의 사립대 총장들을 지칭하며 저 대학들과 연대를 끊으라고 하였다. 서울대가 앞장서 그들을 막아주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우리 대학은 이미 4월에 1, 2등급 통합내신 발표를 했기 때문에 대학의 신뢰성이 무너지면 안 된다고 하였다. 대통령께서는 그러면 대학의 신뢰성은 있고 국가의 신뢰성은 없는 것이냐고 하였다.
(중략) 대통령께서는 토론을 잘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잘 경청하는 분이었다. 나는 우선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는 우리 대학의 입시를 차분하게 설명하고 한 해에 3천여 명을 선발하는데, 9백 개에 달하는 고등학교에서 신입생이 들어올 정도로 내신을 중시하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입시를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1, 2등급 통합내신의 경우 최상위 등급은 상위 11퍼센트이니 학급 30명 중 상위 3명인데, 우리 대학은 70여 개의 과목 모두를 내신에 반영하므로, 모든 과목에서 상위 3명 안에 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70여 개 과목의 상위 3명의 조합은 대단히 많아 변별력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 나는 원칙과 정도로 말씀드렸고, 대통령께서는 결국 경청과 포용으로 화답하셨다. 그 후 우리 대학에 대한 ‘상응하는 조치’는 없었다.---pp.49-54
2. 변화하는 서울대가 꿈꾸는 인재는 무엇인가
- 전공을 넘어선 도전, 일류가 아닌 일품을 향해
지금까지의 인재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독자적인 판단으로 주어진 임무를 달성하면 족했다. 그러나 미래의 인재가 만나는 문제들은 통합하는 접근을 필요로 한다. 종합사고와 판단능력이 높아야 하고, 타 전공과의 소통을 잘할 수 있는 ‘연결망형 인재’가 요구된다.---p.70
그래서 나는 수치화한 학점보다 판자촌 이웃을 위해 연탄을 나르던 학생의 땀방울에 더 믿음이 간다. 멋들어진 답안보다 산골 분교 아이들에게 학습 멘토가 되어 수학공식을 설명하던 학생의 열변에 더 감동한다. 그들에게서 그 순간 샘솟아 나오는 따뜻한 마음이 바로, 교정이라는 공간을 평화라는 에너지로 가득 채우는 진정한 젊음이자 지성일 것이다. “행유여력 즉이학문 즉 마음을 깨끗이 하는 행동 뒤에 배움에 임하라는 ≪논어≫의 한 구절처럼 학문의 진정한 뜻은 곧 바른 가치를 실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실천적 지혜를 뜻하는 우리 대학 봉사단 ‘프로네시스’의 이름처럼 대학의 사명은 이 따뜻한 메시지와 함께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pp.119-120
나는 우리 대학의 졸업생들에게서 두 모습을 본다. 그 하나가 지식은 일등이지만 인생은 일품이 아닌 사람들이다. 예컨대, 우리 대학의 졸업생 중에도 고시에 합격하여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열린 마음과 균형 있는 시각으로 사회를 보지 못하고 자기중심의 편협한 사고와 극단적인 행동으로 몰락한 경우가 그렇다. 너무 출세만 좇고 기회에 급급한 사람들, 모교로부터 배운 바 없고 내가 머리가 좋아서 오늘의 위치에 올라섰다고 자만하는 사람들, 자신만 잘났다고 안하무인인 사람들,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면서도 일평생 남을 위해 베풀거나 봉사한 적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적엔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p.117
3 . 한편으로는 생존을 위한 최고의 경쟁력을, 다른 한편으로는 소외된 곳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우리는 지식의 구축에 있어서나, 기업의 능력에 훀어서나, 스포츠 경기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서 세계수준에 경쟁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벽을 허물고 우물 안에서 벗어나,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경쟁해야 한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기중심의 사고와 전공지식과 지역을 벗어나,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중요 쟁점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모든 일에 있어서 사고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시각으로, 아시아 · 유럽 · 미주, 그리고 세계의 시각으로 조망할 줄 알고, 아시아와 유럽과 세계를 한국의 시각, 그리고 동북아의 시각에서 바라볼 줄 아는 학제적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p.63
그러므로 나는 총장재임 중 우리 대학의 신입생을 선발하는 입학전형 방식에서 지원학생의 지적 능력뿐 아니라 학생의 인성과 봉사활동을 포함한 생활기록부와 선생님의 추천서,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이를 긍정과 불굴의 정신으로 극복한 내력 등 일품 인재의 잠재력을 주요 선발조건으로 할 것을 입학관리본부에 주문하여 왔다. 총장재임 중에 어려운 환경의 학생을 별도로 선발하는 기회균형선발, 울릉도를 비롯한 산간벽지에서도 잠재능력이 있으면 선발하는 지역할당제, 그리고 지원자의 평가를 지식과 인성 및 발전가능성 등 전인평가를 하는 입학사정관제를 신설하게 된 것을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p.118
4 .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이장무가 건네는 섬세한 지혜
대학모금을 선진화하는 방안 중 하나가 기부보험의 도입이었다. 대학과 금융회사가 기부보험 계약에 대한 협정을 맺고, 기부자가 보험에 가입하여 목표액엘 정해서 매년 일정액을 불입해가면, 보험회사가 만기 시에, 또 그 이전이라도 사유가 있으면 가입액을 지급해 주는 신종 모금방법이다.(중략)
나는 총장직을 맡으면서 4년간 3천억 원을 모금하겠다는 공약을 했다. 우선 내 자신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서 총장 재직 중 매년 월급의 30퍼센트를 기증하기로 하고, 가족의 동의를 구해 내 계획을 실행했다. 그 덕분인지 모금공약도 실현되었다.---p.102
우리 대학교는 2006년부터 학생들 중심의 ‘프로네시스 나눔실천단’을 구성해서 대학 안팎을 넘나들며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최근에는 어려운 분을 위한 학교 차원의 무료급식 봉사를 한다. 또 2년 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대폭 줄이고 에너지를 최대한 절약하여 지구의 온난화를 방지하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녹색 지속가능 교정을 선포하고 백서를 만들어 녹색교정을 추진한다. 대학총장 직할로 봉사센터도 신설하여 동반자사회운동을 주창하고, 실직자와 미취업자에게 취업역량강화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인턴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상담과 학습지도를 제공하는 서울대 장학생 멘터링 사업을 하는 등 많은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대학으로 거듭나고 소프트 파워도 커졌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