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민족차별의 역사 속에서 나가타지역 케미컬슈즈산업으로 유입되고, 가족과 친족의 에스닉 네트워크 속에서 영세자본을 통해 제조업 경영자로 성장하고, 또한 내리막길로 들어선 지역산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상승’과 ‘성공’의 사례로는 조명되지 않는, 에스닉 마이너리티의 경로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역산업의 주역인 동시에 지역사회의 오랜 멤버로 존재하는 나가타지역 재일코리안을 조명한 본 연구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떠다니는 일개 부초’가 ‘지역’에 뿌리내린 역사와 현재에 대한 인류학적 기록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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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코리안에 대한 차별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근대화와 궤를 같이하면서 뿌리를 내렸고, 과거사 반성의 부재는 이러한 차별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일본사회에 지금도 남아 있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 비하 발언은 이념을초월해 국가 자존이 폄하되었다는 피해자의식과 모멸감을 일본인 전반에 안길 정도의 충격이었다. 동시에 이 같은 충격은 가해자로서의 가책에서 해방시켜주는 효과도 가져다주었다. 2002년 북한의 일본인 납치시인 이후 북한/총련을 공공연히 비방하는 데 대한 금기가 풀렸다면, 2012년의 사건은 그 화살이 이제 한국을 향해서도 날아오게 한 것이다.적지 않은 일본인이 느낀 해방감은 민족차별에 대한 금기를 깨고 말았다. 그리고 한국은 이제 조선과 마찬가지로 일본인에게 가해자로 인식된 것이다.
--- p. 113
해방 직후 한국으로 돌아온 원폭피해자들의 귀환 서사들은 한국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해방의 공간’이 표상하던 전형적인 내셔널리즘적 수사들과는 구분되는 양가적인 감정이 배어 있다. 해방 직후의 혼란은 단지 정치적 이념이나 경제적 수준뿐만 아니라, 과거에는 “제국의 신민”이었던 이들이 새롭게 생겨나는 국민국가적 경계 속에서 새롭게 부여받은 ‘국민’이라는 정체성 속에서도 쉽게 좌표를 찍지 못한 공간이기도 했다. 또 이 패전과 해방의 공간은 ‘강제’와 ‘독립운동’ 등 기존의 해방공간을 상기하는 국민국가주의적 서사 담론들에는 소환되지 못하는 많은 기억이 상존하던 곳이기도 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귀환이주자들에게 ‘패전의 공간’과 ‘해방의 공간’은 단순히 일본이나 한국이라는 영토적 장소에 한정되지 않았다. 그들은 패전을 맞은 제국 일본의 본토에서 ‘해방’을 맞았고, 귀환한 ‘고국’에서 여전히 ‘패전’의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았다. 전쟁이 종결되고 귀환 결정을 내릴 때, 그 어느 곳도 무조건적인 ‘두려움’의 공간이거나 당연하게 돌아가야 할 ‘막연하지만 열렬했던 환상과 기대’의 장소였던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이주로 생겨날 두려움과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낯선 이향(異鄕)’이기도 했던 ‘고국’ 과 궁핍과 고통이 지나칠 때는 너무나도 그리운 ‘일본’이기도 했다.
--- p. 156
개발국가시기 재일교포와 결혼한 한국여성들의 생활사와 경험이 공공영역에서 비가시화되고 왜곡된 탓에 한국인은 일본과 재일한인사회에 관한 진전된 인식으로 나아갈 주요한 경로를 차단당했다는 역사적 손실을 입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전후 근대국민국가의 형성과 재일교포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필터의 작동을 살필 때, 젠더 관점의 도입이 왜 중요한가를 시사한다. 그러므로 개발국가시기 재일교포 남성과 한국여성의 결혼을 매개로 형성되었던 한일교류의 여성장(women’s sphere)을 탐구하고 묻혀왔던 목소리를 발굴하는 것은 재일한인 이주사를 젠더 관점에서 정교화하는 작업이면서, 동시에 여성의 초국가적 이주를 통해서 재일한인사회와 한국,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접근하는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 p. 194
고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기억을 공유하고 소통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한다(차은정 2016). 2세 여성은 일본에 두고온 집을 그리워하지만, 그 집을 재구성할 수 있는 조건은 한국에 있었다. 여성들은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낙인찍힌 일본어를 역으로 이용해 일본어에 부여된 낙인을 제거하고자 한다. 또한 여성들은 한국의 가족을 떠나 일을 함으로써 귀환 전의 기억을 같이 되살리는 ‘안전한 집’을 재구성하고 있다. 오늘도 재한 자이니치 2세 여성들은 이곳 조국에 살고 있다. 귀환전에 일본에 두고온, 그리고 물질로서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고향을 조국 한국에서 꾸리면서 지내고 있다.
--- p. 223
국내외의 여러 경계를 넘고 있는 그들의 존재로부터 드러나는 것은 글로벌하게 표준화된 균질한 상태로서의 동시대적인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그 안에 다 담길 수 없는 수많은 과거·현재·미래의 이미지다. 개인의 수만큼 복잡하게 교착하고 뒤섞이는 역사와 사회의 교차점에 주목할 때, 그들이 한 덩어리의 바위처럼 여겨지는 민족적 정체성으로서의 ‘자이니치’라는 경계를 넘어서서, 자신들을 둘러싼 사람들과의 글로벌한 동시에 로컬적인 결속이나 유대 속에 살아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 p. 256
북한과 일본에서 여성들이 행한 친족노동은 송환자 가족을 지탱했고, 송환자들이 일본 내 한인공동체의 시각, 청각, 후각을 계속 경험하며 초지역적 정체화를 이루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송환자 가족들은 집에서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음식을 요리하며 일본에서 보내준 옷을 입고 북한에 오기 전의 삶을 떠올리게 해주는 노래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향수 어린 기억을 통해 오사카, 도쿄, 고베 등에 있는 친구와 가족, 그리고 한인공동체에 스스로를 연결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많은 가족은 북한으로 이주하면서, 자신들이 일본제국의 피식민자 출신으로 주변화되었던 까닭에 일본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기회를 북한이 제공해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유입국인 북한에서는 재일한인을 과거 일본 식민지배자와 크게 다르게 보지 않았다. 송환자들이 북한에서 마주하게 된 현실은 북한의 사회정치적 위계의 밑바닥에 놓인 삶이었고, 이는 송환자들이 새로 정착한 사회와 떠나온 공동체 사이에서 자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정체화하게 했다. 여기에 더해 편지, 자본, 재화의 흐름은 송환자의 자녀세대가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열망을 부추겼다. 북한을 벗어나 일본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귀환자들은 한인에 대한 일본의 편견에 직면하여 다시 민족적·정치적 자아에 대해 재교섭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많은 사람이 부모나 조부모가 청진항에서 처음으로 북한주민들을 봤을 때 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당신들은 누구인가요? 나는 누구죠? 여기가 고향인가요?”
--- p. 291
이 글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아마도 오늘날 일본사회에서는(그리고 남한에서도) 상당히 민감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조선학교가 가진 정치적인 입장, 즉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개의 국가 중 북쪽에 위치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정통성 있는 국가로 인정하는 입장에서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고찰해보는 것은 오늘날 일본사회 속 재일조선인의 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이러한 고찰은 조선학교의 운영이 ‘국가주의’적이고 ‘민족본질주의’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어떠한 반론을 제시할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 p. 298
재일한인 귀환자들은 한국에 오면 “더 진짜 한국인”이 될 거라 기대했지만, 그리고 스스로는 여전히 한국인이라 생각하지만, “한국인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 대신 “재일교포”라는 범주를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한국에 오기 전 재일교포라는 정체성에 대한 입장은 다양했지만, 모든 피면담자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재일교포라는 범주를 무언가 긍정적이고 ‘한국인’과는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즉, 이들의 경우는 조국에서의 부정적 경험을 통해 출신국과의 동일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구축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새롭게 강화된 재일교포 정체성은, 자신들이 재인식한 종족적 문화와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드러내고 연행하기도 하는 다른 귀환자 집단의 경우와 달리, 독특한 문화적 특징이나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 p. 367
독일과 유럽의 거리에 설치한 ‘걸림돌’ 사례와 정반대로, 일본정부는 한국과 국제사회에 이미 설립된 ‘평화소녀상’마저 철거를 요구하며 ‘기억의 예술’을 말살하려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김서경·김운성 2016). 일본 각지에서 강제노동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 건립이 우익단체의 압력으로 중단되거나, 이미 각지에 세워진 강제노동 추모 상징물과 안내판도 철거 협박을 받고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동원되어 희생된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과 그 유족들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피해자 측으로서도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부터 멀어져가는 사이에 민족 간 갈등과 국가 간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이 다시 자라나고 있다.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 p. 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