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그 얘기 들었어? 히몬야 공원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소문.”
“아니. 뭔 일?”
“한밤중에 남자애랑 단둘이 그 공원에 가면…… 나온대.”
“나와? 뭐가?”
“레인맨.”
“레인맨?”
“그래, 맑은 날에도 후드 달린 새까만 레인코트를 입고 마스크를 쓴 남자가…….”
“그게 왜? 위험한 거야?”
“응, 완전 위험하지.”
“그 남자가 코트 앞자락을 열면, 알몸에 그게 막 덜렁거리는 그런 거?”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 진짜 위험한 거라니까. 만약 레인맨이랑 마주치면 그냥 끝이야. 남자는 때려눕히고 여자만 잡아 간대. 더 끔찍한 건 여자애 발을 자른다는 거야. 양쪽 발목을 다 삭둑!”
“거짓말. 말도 안 돼!”
“정말이라니까. 메구로고등학교에 다니는 애도 한 명 당했대. 그런데 레인맨이 뮈리엘을 뿌린 애들은 절대 안 건드린다는 거야. 대박이지?”
“뮈리엘?”
“이번에 나온 향수 몰라? 샤넬이나 캘빈 클라인은 소용없고 뮈리엘에서 나오는 로즈만 효과가 있대.”
“진짜?”
“진짜라니까.”
--- pp.7~8
““WOM의 위력은 대단하죠. 예전에 ‘저 은행 위험하대’라는 아무 근거도 없는 누군가의 한마디에 예금 인출 소동이 벌어져 결국 파산한 은행도 있어요. 과거에 벌어졌던 화장지나 쌀 사재기 소동도 근거 없는 소문 때문이었죠. 얼마 전에도 인터넷에 올라온 단 한 건의 클레임이 대기업 가전제품 브랜드의 신용을 무너뜨린 사건이 있었어요. WOM만으로도 회사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죠.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간토 대지진 때 한반도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희생당했던 이유도 누군가 퍼뜨린 유언비어 때문이었습니다.”
쓰에무라는 플러스 이미지보다 마이너스 이미지의 정보가 열 배는 빨리 퍼진다고 했다.
“예를 들면 다른 사람에 대한 뒷담화입니다. 사람들은 다들 칭찬보다 욕이나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또 듣고 싶어 하죠.”
그리고 마이너스 이미지의 정보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공포심을 자극하는 방법이다.
“가장 유명한 WOM을 아세요? 아마 프랑스에서 시작된 모양인데 이제는 온 세상에 퍼졌죠. 여자 혼자 외국 부티크 탈의실에 들어가면 위험하다, 거울이 빙그르르 돌면서 사람이 사라진다, 거울 뒤에 인신매매 조직원이 숨어 있다가 매춘 소굴로 끌고 간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 패턴이 있어요. 예를 들면 납치된 여자가 도망치지 못하게 팔다리와 혀를 잘라낸다거나, 몇 해 뒤에 애인과 다시 만났을 때는 마약에 찌들어 노파 모습이 되어 있었다거나. 정말 무서운 이야기죠. WOM이 널리 퍼지는 가장 큰 심리적인 요인은 인간의 잠재적인 공포와 불안이에요. 여자애들에게는 무서운 이야기, 기분 나쁜 이야기가 제일 효과적이죠.”
--- pp.24~25
“너, 레인맨이라고 들어봤어?”
고구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쓰미는 눈을 다시 크게 떴다.
“역시.”
“역시라니?”
“그 사건이구나? 그래서 매일 늦는 거지? 그랬구나. 그게 역시, 레인맨이구나.”
고구레도 속으로 ‘역시나’ 했다.
레인맨, 어른들은 전혀 모르는 이 이름을 어떻게 된 까닭인지 10대 소녀들은 다 알고 있다. 나쓰미의 대답도 오늘 만난 소녀들이 한 말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유명한 얘기야. 여러 애들한테 들었어. 당연히 누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다들 레인맨이 진짜 있다고 믿어.”
딸의 얼굴이 왠지 낯선 소녀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오늘 만난 소녀들도 나이가 다들 열여섯이나 열일곱이라고 했다. 나쓰미도 요란하게 치장을 하고 번화가에서 무리를 짓는 그 아이들 속에 섞인다 한들 이상할 것 없는 나이다.
(…)
“레인코트를 입고 있어서 레인맨이라고 부르는데 그 코트가 검은색이라고 하기도 하고, 노란색이라고도 하고, 미키마우스 그림이 그려진 거라는 이야기도 있어. 완전 기나오싹이지? 죽은 사람이 다섯 명이라고 하기도 하고, 아홉 명이라고 하기도 하고, 스무 명도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어.”
(…)
내일 나지마에게 말하자.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다.
“그 레인맨 이야기, 드디어 알아냈습니다. 여고생들 사이에 떠도는 어이없는 뜬소문입니다. 제 딸도 알고 있더군요.”
--- pp.191~194
고구레는 MURIEL이란 로고가 들어간 향수를 미유키의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언제 구했을까요? 아세요?”
“글쎄요.”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병이 세 개나 있습니다. 돈 주고 산 것은 아닌 듯한데요.”
미유키의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미유키 방에서 화장품이 잔뜩 들어 있는 쇼핑백을 보고 뭐냐고 캐물은 적이 있었어요. 혹시 화장품 가게에서 몰래 가지고 나온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어서요. 부끄럽지만 전에 한 번 그런 일이 있었죠. 그랬더니 막 화를 내면서 아르바이트 때문에 받은 거라고 하더군요. 지금 생각하니 그때 그 쇼핑백에 이것이 들어 있던 것일지도…….”
“그게 언제쯤입니까?”
미유키의 어머니는 잠시 관자놀이에 손을 대고 생각에 잠겼다.
“제가 자기 방에 들어오는 걸 싫어해서 미유키 방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거든요. 들어간 것이…… 아, 에어컨을 슬슬 쓰기 시작할 무렵이라 필터 청소를 해두려고……. 그때가 막 7월로 들어섰을 즈음인 것 같아요.”
두 피해자가 같은 향수를 사용한 이유를, 그리고 절대로 만난 적이 없을 두 사람의 접점을 겨우 찾아냈다. 두 사람은 같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 pp.279~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