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이 고린도 교회에 관해 잘 알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고린도 교회가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이다. 그곳은 문제와 죄와 분열과 이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고린도 교회는 현대의 어떤 교회와도 다르지 않았다. 교회는 성도들의 교제 모임이기 이전에 죄인들의 교제 모임이다. 찬란한 명성을 자랑하는 교회마저도 그 교회 교인들과 목사들은 그 교회가 약점과 죄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슬픈 사실은 불만족한 교인들이 순진하게도 그 지역에 있는 다른 교회는 지금 출석하는 교회보다 더 나을 것이라고 종종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같이 진중하지 못한 탓에 떠돌이 교인이 흔히 생겨난다.
지역 교회에 대한 우리의 비전과 관련하여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실제로 함축하는 바는 비교적 간단하다. 그것은 분명 우리가 속한 하나님의 교회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것, 그곳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만들려는 하나님의 바람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주저 없이 확신하는 것,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가 거룩하도록 부르신 것에 대해 양보 없이 확신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1장 완전한 교회」중에서
유대인들은 ‘표적’을 원하는 반면 그리스인들은 끊임없이 ‘지혜’를 찾는다. 하지만 자신의 통찰과 이해에 의지하기를 포기할 때까지 그들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형태로 태어나신 것 그리고 사실상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성인으로 자라신 것, 두루 다니며 선을 행하고 온갖 병을 고치신 것, 자신의 생명을 악랄한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신 것, 일반 범죄자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모든 것은 인간의 지혜와 이해에 도전을 가한다.
우리는 웅크리고 앉아서 이미 ‘도달했다’고 느끼는 경향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온 존재를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결정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동료 신자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공동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우리가 이러한 우선순위를 추구할 때에야, 성령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점점 더 펼쳐 보이실 것이다.
---「3장 참된 지혜와 거짓된 지혜」중에서
고린도인들처럼 지위, 명성, 인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진정한 기독교적 사역을 기꺼이 맞이하는 것은 고사하고, 받아들이기조차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의 강함이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완전해진다는 진리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는”(고전 4:9) 것은 우리의 비위에 맞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우리를 비판적으로, 종종 경멸적으로 면밀히 살펴보는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4장 그리스도를 위해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중에서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현재 그들이 처한 상황을 중요하게 만드는 비결은 하나님이 날마다, 그들을 처하게 하신 바로 그곳에서 그들을 변화시키시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할례는 실제로 유대인과 이방인 간의 거대한 장벽을 나타낸다. 하지만 하나님은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 양자 안에서 역사하심으로써 그러한 장벽을 극복하실 수 있다. 종과 자유인 사이의 간격은 넓고도 크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인 종과 그리스도인 자유인 양자 안에서 역사하심으로써 그러한 간격마저도 메우실 수 있다.
---「7장 결혼과 독신: 하나님이 주신 두 은사」중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무거운 무게를 받쳐 주기에 충분할 만큼 강하고 확고하게 되도록 하는 데 관심이 있으며, 그것은 교만하게 만들지 않는 참된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확고한 기초를 요구한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사랑의 지배를 받고 참된 지식에서 자라고 있다면, 그는 이제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는가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하나님께 알려지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것은 사실상 하나님에 대한 참된 사랑의 증거다. 참된 지식은 우리가 아는 것에 대한 교만이 아니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겸손으로 나아간다.
---「8장 자유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민감함」중에서
성령님께 민감한 공동체는 성경에 의해 모든 사람이 서로 또한 하나님과 화목하는 삶을 살도록 희생적으로 노력한다. 이것은 흑인과 백인, 지성적인 사람과 행동 지향적인 사업가, 새 신자와 성숙한 제자, 유대인과 이방인,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 남자와 여자, 독신자와 결혼한 사람을 하나로 연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12장 영적 은사에 관하여」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인간적 개념이나 사랑의 표현을 완전히 초월한다. “그것은 무가치한 자들을 향한 사랑, 사랑이신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사랑, 상대방이 그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풍성하게 주는 사랑이다. 그것은 사랑받는 쪽의 공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의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수님에 따르면 이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특징을 이루고 그것을 지배하는 사랑이다. 그 공동체가 어떤 의미에서든 기독교적인 것으로 인정되려면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세상의 구세주로 인정되려면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13장 내가 사랑이 없으면」중에서
지역 교회의 예배는 교인들의 믿음과 제자도를 세우는 데 필수 불가결한 역할을 한다. 예배가 생기 있고 참여를 유도하며 기대감을 갖게 하고 매력적일(40절에서 ‘적당하게’라고 번역된 말의 어원적 의미) 때 전체 회중은 주 안에서 강하고 꾸준하게 자란다.
---「14장 예언과 방언」중에서
부활이 완전히 무시된다면 그리스도인이 전파하는 것과 심지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도 ‘헛된’ 즉 공허한 것이다(고전 15:14). 하지만 부활이 진짜이고 확실하다면 그리스도인의 삶과 일 전체는 목적과 소망으로 가득 찬다.
---「15장 부활: 과거, 현재, 미래」중에서
복음이 신실하게 전파되는 곳이면 어디서나 복음은 항상 경제적 기득권에 도전을 가하며, 많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매우 신경 쓰이게 만든다. 참된 교회는 언제나 가난한 자들이 아니라 부유한 자들에 의해 반대를 받곤 했다
우리는 한 가지 특별한 종류의 교육을 받은 사람, 어느 정도의 명료함과 즉석에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일반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 세상적인 리더십 기준에 맞는 사람 등에게 리더십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섬김으로서의 리더십에 대해 바울이 제공하는 관점을 제대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예수님도 똑같은 진리를 가르치셨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 20:26). 이는 견실하고 진정한 지역 교회 리더십은 성도를 섬기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 중에서 나올 것임을 가리킨다. 그런 리더십은 교육, 자격, 학위, 타고난 카리스마 등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자신의 백성을 신자들의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들의 종이 될 수 있게 하는 은사로 구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온다.
---「16장 국제적인 교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