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 받은 존재들의 조용한 멸종
안현재 자연과학 PD
2022-11-23
지금까지 환경위기, 기후재난 등 멸종과 관련된 논의는 인간과 동물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개체 수를 지니고 있는 곤충은 이 논의에서 외면 받고 있다. 『침묵의 지구』 저자 데이브 굴슨은 뒤영벌을 비롯한 곤충들의 생태와 보전을 다루는 생물학자로, 인류 문명의 몰락은 곤충 세계의 멸망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근 수십 년 사이에 곤충의 수는 충격적으로 감소했다. 먹이사슬 가장 아래에 존재하며, 생물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조용히 돕고 있는 곤충들이 조용히 멸종하고 있다. 정말 이들의 멸종은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이들의 멸종에 어떤 책임도 없는 것일까?
곤충의 역할은 곤충만이 할 수 있다
우리는 대개 곤충을 방제의 대상으로 보거나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존재 필요성과 역할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붙는다. 모기에 뜯기는 밤이면, ‘백해무익’이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곤충은 정말 모든 것이 해롭고 이익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을까? 모든 곤충에게는 자신의 역할이 있다. 곤충은 작물을 수정시키고, 배설물, 낙엽, 사체를 재순환하게 만들고, 토질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해충을 방제한다. 조류, 어류, 양서류는 곤충을 먹이로 삼고, 야생의 꽃들은 곤충을 통해 꽃가루를 옮긴다. 민달팽이는 느린 먹이를 선호하는 동물의 먹잇감이 된다. 모기는 카카오와 같은 열대작물의 수분을 옮긴다. 모기가 없으면 초콜릿은 없다. 곤충이 지금 맡고 있는 역할은 곤충만이 할 수 있다.
알고 보면 경이로운 곤충의 세계
아무리 곤충이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꿀벌의 실종보다 녹아내리는 빙하 위에서 어쩔 줄 모르는 북극곰이 먼저 떠올린다.
데이브 굴슨은 이 모든 것이 곤충과 곤충의 세계에 대한 무지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곤충의 세계는 포유류의 세계보다 더 경이롭다. 굴슨은 이 경이로움을 알리기 위해 5억 년 전에 해저에서 진화한 곤충의 시작부터 이들이 획득한 '비행' 능력까지 곤충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변하는 탈바꿈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잘 만든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생생함과 신비로움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곤충의 세상을 멸종시키는 인류의 발
2022년 초, ‘대한민국 꿀벌 실종 사건’이 많은 언론과 매체를 통해 보도되었다. 꿀벌의 수가 예년에 비해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보도도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 원인을 기후위기와 농약이라고 이야기한다. 특히 무분별한 농약의 사용은 꿀벌의 비행능력과 방향 능력을 떨어뜨린다. 꿀벌에게 영향을 주는 농약이 인간에게는 100% 무해하다고 할 수 있을까? 비료 사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확량을 올려주는 비료는 환경에 많은 피해를 준다. 목초지와 농경지 가장자리의 꽃식물 다양성을 크게 줄이며, 남아 있는 식물도 독성을 띠게 하거나 곤충이 먹기 어렵게 만든다. 물론 무조건 곤충을 죽이기 위해 농약과 비료를 쓰는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곤충의 집과 먹거리를 뺏고 있다.
"인류는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자기자신과의 전쟁이다."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1963년 출간된 환경 고전 도서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의 한 문장처럼 인류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곤충 역시 자연의 일부다. 곤충과 인류는 지구라는 한 집에 살고 있고, 인류에게 그 어떤 종을 약탈하거나 절멸시킬 권리 같은 것은 없다. 곤충 역시 이 범주에 포함된다. 사실 개체 수와 지구에서 살아온 시간만 따진다면 지구의 주인은 곤충이다. 이제 우리는 함께 살아야할 방법을 배워야 한다. 겨울이 끝나는 순간 텃밭에 나타난 멧노랑나비 날개의 아름다움과 통통한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 등 세계를 가득 채우는 곤충이라는 작고 경이로운 존재가 만드는 매혹적인 세상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