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와 한창 연애할 때였다. 우리는 만나면 눈에 띄는 술집에 들어가 소주부터 시켰다. 안주가 나오기 전에 소주 한 병을 다 비웠고, 안주가 나오면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그렇게 우리의 데이트 코스는 매번 술집, 술집 옆에 술집, 길 건너 술집 순이었다. (…) 결국 또 소주를 마실 수밖에 없었고, 우리는 여느 때처럼 안주가 나오기 전에 소주 한 병을 비웠다. 마누라는 장모님한테 “친구 집에서 밤샘 작업한다”며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잔뜩 취한 우리는 근처 모텔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한 몸이 됐다. 오늘이 마지막인 사람들처럼 몇 번이고 섹스를 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밤샘 작업한다”는 마누라의 말이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튿날 나는 마누라를 집까지 바래다줬다. 살이 구부러진 낡은 우산은 온데간데없었다. 간밤에 비가 그치는 바람에 술집에 두고 왔는지, 아니면 모텔에 두고 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마누라 집 앞에서 헤어지려고 했는데, 왠지 아쉬워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러고는 마누라가 나를 다시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줬다. 나는 지하철을 타려다 말고 마누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소주나 한잔 더 할까요?”
--- 「평범한 데이트와 밤샘 작업」 중에서
우울에 빠질 때마다 혼자 불 꺼진 주방 식탁에서 소주를 마셨다. 아무 조리도 하지 않은 비엔나소시지를 안주 삼았다. 우울에 빠진 주제에 비엔나소시지를 맛있게 구워 먹을 수는 없었다. 그럼 잠든 마누라가 “무슨 냄새야?”라며 깰 테니까. 나는 우울에 빠졌을 뿐인데, 마누라 몰래 비엔나소시지를 맛있게 구워 먹는 것처럼 보이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아무튼 소주 한 모금 마시고 비엔나소시지 한 입 베어 물면, 그 맛이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마시면 비엔나소시지 한 봉지에 소주 한 병 반 정도 마실 수 있다. 비엔나소시지를 아껴 먹으면 소주 두 병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두 병까지 마신 적은 없다. 비엔나소시지가 너무 맛있어서 도저히 아껴 먹을 수 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우울하다고 입맛까지 달아나는 건 아니었다.
--- 「엄밀히 말하면」 중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운 얘기지만, 나는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 내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지만 그 남다른 재능은 살아 있는 동안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끈질긴 불운과 가난에 시달리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세상을 떠날 줄 알았다. 이를테면 반 고흐처럼 이번 생은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다. 내 책은 (내 입으로 이런 얘기 좀 그렇지만) 정말 재밌는데 더럽게 안 팔리는 것도 운명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눈떠보니 고흐와 달리 웬 여자와 결혼도 했고, 애도 하나 있는 것이다. (…) 참 이상한 일이다. 웬 여자와 하루가 멀다 하고 부지런히 술을 마셨을 뿐인데 말이다.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 웬 여자와 다정하게 귓속말을 속삭이던 어느 겨울 술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시절이 그립다는 얘기가 아니라, 먹고사느라 숨 가쁜 지금이 이따금 낯설다는 얘기다.
--- 「전생에 나라를 아무리 구해도」 중에서
원고 마감이 겹쳐서 저녁에 있을 술자리 참석이 불투명해졌지만, 나는 계획이 다 있었다. 게다가 하필 이 시국에 모처럼 대청소하기로 했지만, 나는 계획이 다 있었다. (…) 보일러 기사가 새 보일러를 설치하는 동안 마누라는 다른 볼일이 생겨, 앞서 말한 뒷일은 내 몫이 됐다. 이를테면 걸레질과 자질구레한 뒤치다꺼리를 누군가는 해야 했다. 다행히 걸레질을 마칠 무렵 새 보일러는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계획은 약간의 차질이 있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다만 보일러실이 엉망진창이었다. (…) 보일러실 청소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그동안 우리집 보일러실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던 미지의 공간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욕실에 쭈그려 앉아 바지 뒤춤을 추스르며 새까매진 걸레를 빨고 있을 때였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온 마누라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뭐야? 아직 안 나갔어?” 창밖으로는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계획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 「나는 계획이 다 있었다」 중에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이 재밌다며 “평소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처럼 부담 갖지 말고 가볍게 써달라”고 부탁하기 일쑤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세상에 이보다 부담스러운 요구가 또 있을까 싶다. ‘평소처럼 가볍게’가 말처럼 쉬웠다면, 아사다 마오가 트리플 악셀 실패했다고 눈물까지 흘리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내 글이 아사다 마오의 피겨 실력과 버금간다는 얘기는 아니다. (…) 문득 뭐든지 ‘평소처럼 가볍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뭐든지 대충 마시다 마는 소주처럼 크게 아쉽지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한번 마시면 끝장 보려는 주당도 계시겠지만 나는 소주만큼은 정성을 다해 마시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소주는 마시다 말고, 내일 또 마신다. 내일 못 마시면 모레 마시고, 모레 못 마시면 글피에 마신다. 아, 인생도 진작 소주 마시는 것처럼 살았어야 하는데 말이다.
--- 「대충 마시다 마는 소주처럼」 중에서
마누라는 웹툰을 연재하면서 게실염을 얻었다. 당시 마누라는 웹툰을 열흘에 한 편씩 연재했는데, 게실염뿐만 아니라 머리에 500원짜리 동전만 한 원형탈모도 생겼다. 내가 허드렛일과 채색을 도와주긴 했지만, 웹툰 연재는 애초에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야기를 구상하고, 그 이야기로 밑그림을 그리고, 그 밑그림에 선과 색을 입히고, 연출과 완성도에 대한 고민은 열거한 과정의 쉼표 사이에 쉴 새 없이 반복됐다. 연재를 마칠 때까지 쉬려고 해도 쉬는 게 아니고, 자려고 누워도 자는 게 아닌 상태가 계속됐다.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간혹 그 모든 걸 혼자 다 해내는 웹툰 작가도 있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웹툰은 대개 일주일에 한 편씩 연재한다. 그러고 보면 웹툰 작가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내가 소주를 줄기차게 마시고 담배를 부지런히 피워서 생명을 깎아먹는 중이라면, 웹툰 작가들은 마감에 시달리며 생명을 깎아먹고 있는 중이다.
--- 「진실은 괄호 안에 있다」 중에서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애를 재우고 하루 일과를 마치면 자기 전에 꼭 술을 마셨다. 애를 돌보고 남는 시간을 쪼개서 일하다 보면, 애가 잠든 후의 시간이 그만큼 아까웠다. 이 밤의 끝을 잡고만 싶었고 그렇게 술을 마시다 보면 시간은 어김없이 하루의 경계를 지나가곤 했다. 남들은 24시간밖에 못 사는 하루를 2시간 정도 더 사는 것 같았다. 이튿날 숙취로 곱절의 시간을 까먹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애를 억지로 재울 필요도 없고, 애를 돌보고 남는 시간을 쪼개서 일을 할 필요도 없다. 애는 제법 커서 웬만한 일은 스스로 다 해결한다. 마누라와 나는 얼마든지 일에 집중할 시간을 따로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마누라와 나는 이 밤의 끝을 잡을 만한 명분이 필요했다. 가령 이런 식으로…. 연재 원고 마감했다고? 그럼 한잔해야지. 콘티를 세 장이나 짰다고? 그럼 한잔해야지. 오늘 날씨 좋은데? 그럼 한잔해야지. 오늘은 아무 껀수가 없는데? 그래도 한잔해야지.
--- 「이 밤의 끝을 잡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