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자가 세살이 되던 해에, 남자용 치마를 입는 의식이 있었다.
먼저 행해졌던 제1황자의 의식에 뒤지지 않도록 내장료(內藏寮)와 창고에 있던 물건을 모두 내어 성대하게 거행했다. 이 때문에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어린 황자가 점차로 성장함에 따라 세상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용모와 기상이 다듬어져 가서 누구에게도 심하게 미움을 사지는 않았다. 사물의 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 세상에 이런 훌륭한 사람이 있을까 하고 망연해할 정도였다.
<전할 곳 없는 마음으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혹시 어떻게 된 것이냐고 찾아주는 사람도 없어서>
이번에는 아주 부드럽고 얇은 종이에 아름다운 필체로 썼다. 이런 편지를 보고도 마음을 움직여 감탄하지 않는 여인이 있다면, 분명 목석일 것이었다. 명석의군은 훌륭하다고는 여겼지만, 비교도 안될 자신의 신세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로 생각했다. 그래도 자기를 알고 찾아 준 것이 고마워서 자연히 눈물이 고였다.
--- pp.20-21, pp.355-356
세월이 흘러가도 임금은 동호를 잊을 수 없었다. 딴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시름을 잊는 일이 있을까 하여 그럴싸한 사람을 입궁시켜 보기도 했으나 동호만한 사람은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라는 생각만 더할 뿐이었다. 그때 임금에게 시중 드는 전시 하나가 전 임금의 넷째 딸을 추천했다. 그녀는 용모가 훌륭하다고 소문나 있었고, 모후가 아주 귀하게 키워 온 여인이었다. 이 전시는 먼저 임금 때부터 궁중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으로, 모후의 방에도 드나들면서 이 넷째 딸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보아 온 사람이었다.
"3대에 걸쳐 계속 궁중에서 봉사하는 동안 돌아가신 동호와 얼굴이 비슷한 분은 볼 수도 없었습니다만, 왕후궁의 아씨는 정말로 꼭 닮은 모습으로 자라났습니다. 세상에 드문 모습입니다."
정말일까 하고 임금은 마음이 쏠려서 정중하게 입궁을 종용했다.
"두려운 일이다. 동궁의 어머니 여어가 몹시 정이 없어, 동호를 노골적으로 박대하던 것이 꺼림직하다."
모후는 입궁을 조심스럽게 여기더니 결심을 내리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씨가 불안하게 지내고 있는데, 임금은 그저 자신의 황녀들과 동렬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자고 간절하게 말하였다. 아씨에 시중 드는 여인이나 후원자인 오라비 병부경궁은 이렇게 불안하게 지내는 것보다는 궁중생활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씨를 입궁시켜 버렸다. 아씨의 이름은 등호였다. 과연 얼굴이며 자태가 이상하리만치 죽은 동호와 비슷했다. 신분이 높아서 아무도 나쁘게 말할 수 없고 무엇하나 거리낌이 없을 뿐 아니라 아무 부족함이 없이 훌륭했다.
--- p.32
사소한 화잿거리로도 사람을 끌어들일 듯이 이야기 하는 겐지를 화산리는 정답게만 느껴졌다. 부드러운 겐지의 말솜씨는 겉치레로 느껴지지 않았다. 겐지가 상대하는 여인들은 모두 개성이 달랐지만 저마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동안 겐지와 화산리를 서로 속마음을 터놓는 사이로 지내오고 있었다
--- p.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