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전이라도 된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샤프란을 심으신 건 이미 18년 전의 일인데 알뿌리 한 포기가 그 오랜 세월을 진흙더미 안에 숨어있다가 새싹을 틔운 것이다. 실의에 빠져있는 나를 위해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선물을 보낸 걸까?
"실망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면 희망은 반드시 보일 게다……"
아버지의 분홍빛 샤프란은 단 하루 동안만 꽃을 피우고 사라졌지만 나에게는 평생을 강하게 살아갈 큰 희망을 주었다.
--- 봄, 별빛 희망 / 눈 속에 핀 희망 中에서
너무 순식간의 일이라 우리 가족은 어떻게 손 써볼 틈도 없이 망연자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얼마 후 나는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전에 아버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던 식당의 영수증이 한 장 들어있었고 위쪽에는 메모 한 장이 남겨져 있었다.
"어쩌면 다음 기회란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우선 내가 계산을 했다. 너와 네 남편 두 사람 몫으로 말이다. 너는 그날 밤의 식사가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되었는지 절대로 상상할 수 없을 거야. 영원히 너를 사랑한다. 내 딸아."
--- 가을, 달빛 추억 / 첫 데이트 中에서
드디어 조그맣고 안전한 출구가 만들어졌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다.
"아만다, 어서 나오너라. 이제 이 구멍으로 나오면 돼."
"아버지, 전 나중에 나갈게요. 다른 애들 먼저 꺼내 주세요. 저는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아빠가 늘 얘기했던 것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날 구하러 오실 줄 알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을 구하러 와 줄 것이라고 믿었던 아들의 믿음이 엄청난 천재지변 속에서 결국 소중한 목숨을 13명이나 더 구하게 만들었다. 두 부자는 감격스러운 눈물을 흘리며 죽음의 시간을 견디게 한 믿음과 사랑의 힘을 확인했다.
--- 여름, 쪽빛 평화/ 지진을 이겨낸 믿음 中에서
연신 두 손을 바쁘게 놀리시며 아버지는 무언가를 소중하게 붙들고 손에서 놓을 줄 모르셨다. '무얼 하고 계시는 걸까?'
새벽녘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새우잠을 주무시는 아버지의 머리맡에는 짜다 만 스웨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버진 어려운 형편에 변변한 외투 하나 못 사준 것이 늘 당신 마음에 걸리셨던 것이다. 뻣뻣한 남자 손으로 여자도 하기 힘든 털옷을 지으시며 자식 잘못 기른 것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내가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열심히 사는 아들이 되기를 수천 번 수만 번 빌고 또 비셨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짜주신 스웨터는 비록 잘사는 아이들의 고급스러운 옷보다는 못했지만 그 해 겨울 추위를 막아줬고, 세상의 온갖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해줬다.
--- 겨울, 눈빛 행복 / 스웨터 사랑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