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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리사의 가족
중고도서

안나리사의 가족

: 천천히, 느리게… 핀란드에서 온 가족이 전하는 조화로운 삶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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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4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68g | 규격외
ISBN13 9788993976465
ISBN10 8993976465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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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시간이 멈춰 있듯이 곳곳에 정지된 물건들과 흔적은 혼자 작업실에서 무심히 시간을 보냈던 내 마음을 일깨운다. 가족들에게 대한 미안함과 그래도 서둘러 보고 싶은 벅찬 마음으로 잠자는 아이들과 아내가 있는 방문을 조심스레 열어본다. (중략) 뭐가 그렇게 피곤했는지 입을 살짝 벌린 채 잠자는 사가 그리고 이불 밖으로 나온 사라의 오른 손바닥에는 화장실 거울에 묻은 색연필과 똑 같은 색이 군데군데 묻어있다. 늦게까지 재봉틀 앞에서 아이들 옷을 만드느라 피곤했는지 잠옷도 못 갈아입고 아이들 사이에 잠이 든 아내 곁으로 조용히 다가가 머리카락에 붙은 연분홍색 실밥을 걷어내면서 소리 낮춰 속삭인다. "사랑해요." 차례로 사가와 사라에게도.

* 굳이 선진화된 교육 시스템의 혜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밀착된 가정생활 속에서 아이들은 부모를 이해하고 부모 또한 아이들의 성향을 주시할 수 있다고 여긴다. 또한 이해심과 사랑만큼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없다고 우리 부부는 믿고 있다.

* 온종일 모래밭과 야외 욕조를 오가며 뛰놀던 사가와 사라의 저녁 준비에 한창인 안나리사의 쿠리쿠리한 청국장 냄새가 솔솔 풍겨 나올 때쯤이면, 대문 근처까지 슬그머니 어둠과 함께 내려와 열심히 개 짓는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맛있는 풀을 골라 먹는 배짱 좋은 새끼 고라니도 가끔 볼 수 있다. 도시에 살았던 나의 어린 시절에는 한번도 볼 수 없었던 '반딧불이'들은 아이들을 위해 마당 한복판에서 상영 중인 디즈니 만화영화의 밝은 스크린이 성가신지 아예 멀찌감치 빛을 피해 우회 비행을 한다. 영화가 끝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안나리사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 시작하고, 유리 스튜디오에 혼자 남아 막바지 작업에 심혈을 기울일 때쯤이면 정체 모를 야생동물들의 수풀을 헤치는 소리에 공연한 상상을 하며 몸을 움츠리기도 한다.

* 어느 날 사과를 썰어 넣은 소스로 만든 나의 실험적인 파스타 오리는 보기 좋게 실패했다. 식탁 앞에 앉아 있는 자체가 특히 아이들에겐 곤욕스러운 시간이었을 정도로 소스는 밍밍했고, 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퉁퉁 불어만 가고 있었다. (중략) 급기야 나는 스파게티 면을 입가 양쪽으로 수염처럼 길게 늘어트린 후 단숨에 주르륵 빨아들이면서 맛있게 먹는 표정을 아이들에게 지어 보였다. 나의 장난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아이들은 흉내를 내기 시작했고 나의 맛없는 요리가 담긴 접시는 어느새 말끔히 비워져 있었다. 적당한 장난이 때로는 좋은 반찬이 되어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 나와 안나리사는 동네 고물상에 들러 값싼 쇼핑을 즐기는 방법으로도 생활의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운이 좋으면 청계천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도 구할 수 없었던 기계 부속에서부터 냄비 뚜껑에 이르기까지 식료품만 빼고 전부 있는 것 같다. 백화점에서 조심스레 만져보았던 고리 달린 금속제 화병도 그간의 기구한 사연과 함께 찌그러진 자전거 바퀴와 뒤엉켜 섞여 있고, 이를 빨간 고무가 코팅된 목장갑을 끼고 갸륵한 마음으로 건져 올려 이리저리 살피다 핑개쳐버려도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아침 저녁으로 온 가족이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여전히 엄마 아빠와 밀착하며 보내는 시간이 제일인가 보다. 온 가족이 모여 테이블 주변이나 따뜻한 아랫목에서 고구마를 까먹으며 자연스럽게 오가는 가족회의는 우리 계단에서 열린다. (중략) 가족회의가 열리고 있는 계단에서는 '사가와 사라가 반성해야 하는 이야기를 비롯하여 그 어떠한 심각한 이야기가 나와서도 안 되며 마치 기저귀를 하는 애기를 대하듯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거나 발가락을 주무르는 등 오직 그들만을 위한 서비스를 베푸는 자리여야만 한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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