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보이지 않는 세상과의 연결이 내 몸, 내 정신으로 그 어떤 방식이든 느낄 수 있는 채널이 열려져 가고 있고 그러할 확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때입니다.
이 확률은 본인의 상상을 이미 초월해 있는 실정입니다.
여러 대중大衆을 만나면서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어떻게 알려 드려야 할지, 어떻게 하면 자신이 바뀌어 가고 있는 모습을 인식시키며 받아들일 수 있게 할 수 있을지가 제일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다생소활은 그래서 시작하게 된 일입니다.
만 2년의 문턱을 넘고 있지만
그 시간은 참으로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아니, 어쩌면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
예정된 시간 안에서 지내온 느낌입니다.
‘지구 온난화’라는 말로 덮어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화의 행보가 우리 모두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당장 겪고 있고 느낄 수 있는 변화보다 어쩌면 동식물과 인간, 그 모든 존재들의 몸과 의식이 달라지고 있는 폭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대부분은 당장에 닥친 비, 바람, 기온 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힘없고 어리석은 동물이라 여겨 그들이 다칠까 걱정하는 일에 마음을 씁니다.
이 모든 변화의 노중路中에 우리가 바라보며 나아가야 할 지향은
이 변화의 마지막 지향은 ‘의식상승’입니다.
미래의 지구가 버티어 낼 수 있는 마지막 힘도, 마지막 희망도
바로 이 ‘의식상승’에 있습니다.
다생소활은 ‘평등’을 기치로 삼아 내걸었다.
이는 우리가 어지간해서는 진정으로 닿기 어려운, 알아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절대적 평등, 우주적 평등을 뜻한다.
우선 우리가 이해할 수 있기로는, 이 ‘평등’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개별성’, 우리의 존재 자체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나와 다른, 다른 사람의 장점뿐만 아니라 단점까지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 쉬운 노릇은 아니리라.
큰 포용력을 가진 ‘사랑’이, ‘자비’가 우리의 밑바닥에 깔린 의식에까지 퍼져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이미 인식조차 되지 못할 만큼의 상태로 젖어 있을 때 ‘평등’은 조금씩 내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 대체로 큰 나무에는 큰 기운을 가진 존재들이 머물고 있고
기운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기운의 차별도 느낄 수 있다.
마을을 지키는 큰 나무를 향해 우리네 조상들은 그 앞에서 마을을
잘 돌봐 주실 것을 기원한다.
큰 나무, 더구나 마을을 지키는 나무에는 실제로 그들을 지켜 줄 수
있을 만한 역량을 가진 존재들이 머물고 있다.
우리들의 인식 밖에는 우리들의 주변을 조절해 주고 돌봐 주고 있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엄청나게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산신이라는 존재도 산 하나에 한명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의 체계와 질서를 가지고 여럿이 움직이고 있다. 이들의 일 중에는 식물들 안에 있는 존재를 머물거나 떠나게 하는 것을 관장하는 것도 해당된다. 그들도 영계의 설계하에(이제는 그다지 의미가 없지만) 그렇게 이동을 하는 것이다.
우리 육신의 개념처럼 영혼이 떠나면 죽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에너지체로 움직이므로 그냥 이동하는 것이다.
세상의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세월을
이성異性으로 인해 휘청거렸던가.
특히나 이 시대는 더 광란적이다 할 만하다.
차마 놓치기 싫은, 아쉬운 마지막을 알기라도 하듯이 그 절정을 향해 내닫고 있다.
윤회제도가 마지막이며 ‘이러한 암컷, 수컷의 놀음도 이제는 끝에 왔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여태까지의 긴 윤회의 여행에서 못다 푼 것을 해원하기도 해야 할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지금껏 누려온 지구만의 문화, 그 끝을 마지막까지 향유라도 하려는 듯 더욱 질기게 탐하고, 더 깊게 가지고 싶어 하느라 온 세상이 시끄럽다.
이제는 지구에서 겪었던 음과 양, 남성과 여성의 개념을 내려놓을 때가 되었다.
남성과 여성…….
사랑이란 이름 하에 벌어졌던 일련의 행위들이 최절정을 향하면서
그간의 해원을 동반한 마지막 체험을 숨가쁘게 하고 있다.
지구에서 행해 왔던 성性 문화,
그 에너지에 대한 정리가 이미 지난 2월 중순부터 시작되었다.
모두가 어쩌면 좀 더 힘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고 정리되고 정화되어져야 할 것들이다. 혹자는 아쉬움도 남겠지만 다가올 지구에서의 삶은 우주의 다른 별들과 같이 이제껏 보아 온 그러한 음양으로서의 성문화는 없다고 한다.
우리가 매번의 삶을 살면서 체험하고 공부하여 확장된 의식, 혹은 기운이나 파장은 우리가 영계로 돌아가 있을 사이에 우주의 상위자아와 연결되어 그 확장되어 상승되어진 부분만큼 자신의 상위자아에게 전달되어졌다. 그러니 우주의 상위자아는 차곡차곡 쌓여진(상승된) 만큼 그 모습 그대로 우주에서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돌아가서 한꺼번에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것은 연결되어져 각자의 상위자아들은 에너지 레벨이 상승되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 물론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정말 중요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래도 몇 분은 차원이 바뀌는 상승이 있음을 밝혀주기도 했다. 이곳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고 희생만 요구된 것도 아님을 알았다. 우주에서는 오히려 오지 않은 쪽에서 이젠 후회를 하는 축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이 곳 지구 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고 또 몇 계단씩 자신의 의식을 올리는 과정들을 지내 왔다.
그러나 이번의 생은 지금까지의 그 모든 것을 마무리 혹은 정리를 하면서 그간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우리의 일, 역할을 하여야 한다.
조금씩 자신들에 대한 자각이 일어나고 있는 사람들이 서서히 많아지고 있다. 그 긴 시간을 우리는 두터운 육신을 입은 덕에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 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의 옷을 조금씩 벗기며 그리하여 우리가 가지고 왔던 원래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게 하고 있다.
자신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세상에 어떤 역할이 있다는 자각이 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까지의 공부가, 수련이, 영적 추구가
과연 무엇을 하기 위함이었던가?
단지 자신의 영적 상승만을 위한 것이었던가?
아니면 자신과 주변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었던가?
또한 주어진 영적 능력이나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 진정으로 개인에게, 자신을 위해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것을 행여 전생과 엮어진 그 무엇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이러한 자신과의 대화와 정화를 통해
‘나’라는 의식이나 ‘나만이……’ 하는 의식을 줄여갈 때
우리는 진정한 역할을 행할 수 있다.
그리고 참된 하늘의, 우주의 뜻을 알아 차리게 될 것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