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학교도 못 들어가겠어요.”
얼굴을 찌푸린 채 아이 아빠가 말했다. 아까부터 만지작거리던 커피잔으로 눈을 떨구었다.
“여덟 살이 되면 가린다고 했잖아요. 전 믿어요. 제 아이 말을 믿지 않고…… 누구 말을 믿…… 겠어요…….”
정색하며 아이 엄마가 말했다. 눈에 힘이 들어 있었지만, 작은 목소리였다. 끝말을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기저귀하고 있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이상이 없어요.”
아이 엄마는 기저귀가 질 나쁜 친구라도 되는 듯 덧붙였다. 만사가 그놈의 기저귀 때문이다. 기저귀만 졸업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라는 것이다.
파랑이는 일곱 살이다. 아이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부모는 심리치료 센터에 방문하는 것을 망설였다. 조금만 지나면 나아지고 괜찮아질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대소변 가리기를 극구 거부하고 훈련의 낌새만 보여도 크게 울었다. 그러다 보니 대소변을 가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파랑이 엄마는 아직도 센터에 찾아와서 프로그램을 한다는 사실을 반은 의심하는 듯했다. 함께 힘을 모으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역시 의심이 가득한 채였다. 센터에 온 이상 한결같은 믿음으로 함께 애써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주춤거리는 것도 파랑이 엄마의 오래된 성향이기도 했다. 굳이 이것을 해야 하나? 파랑이는 알아서 잘할 텐데! 그렇지만, 만일 하나, 안되면 어떡하지? 할 수 없지 뭐. 학교를 안 보내면 되지 뭐. 다람쥐 쳇바퀴를 돌 듯, 이렇게 겉만 휘돌게 하고 있었다. 아이 엄마는 아이가 알아서 기저귀를 뗄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했다. 이렇게 프로그램하는 것도 소용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무엇도 뚜렷하지 않은 채였다. 아이 말을 믿지만, 동시에 믿지 않기도 했으므로. 이런 애매모호한 태도와 생각은 자기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혼란스럽게 하기 마련이다. 파랑이 엄마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생각을 바로잡아줘야 했다. 지금, 파랑이 엄마의 말대로라면, 파랑이는 자신의 입으로 할 거라고 한 것은 지켰다고 했지만, 파랑이는 아빠를 90%나 닮았고, 아빠는 말한 것을 잘 기억하지 않아 지키지 않으니 파랑이 말을 그저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뉘앙스가 골고루 스며들어 있는 말이었다. 내가 한 말에 자극을 받은 것은 파랑이 아빠였다.
---「안 되면 어떡하지?」 중에서
“맞아요. 제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반응했어요.”
그러니까 아이는 혼란스러웠을 거였다. 어떤 날은 아빠를 때려도 오히려 장난스럽게 넘어갔다. 그렇게 때려도 아빠는 웃었으니까 때리는 것도 괜찮은 것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날에 아빠를 때렸는데 아빠는 화를 냈다. 도대체 어떤 것이 맞는 것일까? 감정에 따라서 어떤 날은 괜찮고, 어떤 날에는 안 된다는 것은 아이를 헷갈리게 할 수밖에 없다. 귀엽다고 모든 것이 허용되어서도 곤란하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해야 한다. 명료하게 인식해야 행동은 바르게 자리를 잡게 된다.
나는 일관성 있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아빠를 때리는 것을 항상 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식탁에서 휴대폰 보지 않는 것도 계속해서 해보자고 했다. 부모들은 그렇게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잘했어!’ 스티커에 관해 물어보았다. 파랑이 엄마가 말했다.
---「태양빛이 환해요.」 중에서
“이번 주는 꽤 바빴습니다. 어제 비로소 시간을 내서 파랑이와 놀아주었어요.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관심이더군요. 제가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바뀌는 거구나! 그걸 알았습니다! 그동안 관심을 많이 주지 못했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그냥 돈을 벌기 위해 밖으로 돌아다니기만 했어요. 문제의 해결은 바로 관심, 사랑, 행동이라고 깨달았습니다. 결국은 제가 해야 할 몫이라는 사실도요!”
아, 파랑이 아빠! 이제야 이 사실을 깨닫게 되다니! 기쁘고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 안타까움도 들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관심을 가지고 행동해야 훈육이 일어난다. 파랑이가 지금까지 제대로 된 훈육을 받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관심과 사랑과 행동이 문제의 해결이 맞다. 결국 파랑이가 알아서 기저귀를 떼고 대소변을 가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가 내면의 힘을 갖춰서 올바른 훈육을 해야지만 순리대로 해결될 수 있다. 이제라도 이렇게 깨달았으니 축하해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응원의 큰 박수를 보냈다.
---「단호해야 합니다.」 중에서
그동안 파랑이가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았다. 감기가 심해서 일주일 동안 활동 없이 지냈고, 어디 나가지도 못했다고 했다. 기저귀는 옷장의 한쪽 구석에 넣어 두었다고 했다. 파랑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두고는 하나씩 꺼내 썼다고 했다. 오늘도 팬티를 입지 않으려고 해서 약속한 대로 팬티를 입어야 한다고 하니 귀찮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물놀이하러 안 간다, 티나와 시아 선생님께도 안 간다고 단호하게 말해서 겨우 팬티를 입었다고 했다. 나는 이제 때가 되었다며, 기저귀를 아예 치우자고 했다. 프로그램도 중반을 넘어선 상태니, 지금부터는 이렇게 해도 될 때라고 했다. 파랑이 엄마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과연, 그렇게 해도 될까요? 이렇게 되묻고 싶었을 것이다. 백 번을 물어도 똑같이 답할 자신이 있었다. 네! 과연, 그렇게 합시다!
---「미안합니다.」 중에서
만약 파랑이가 기저귀를 떼게 된다면? 더 이상 아기가 아니다. 어린이가 되는 것이고, 학교에 다녀야 한다. 그다음에는? 청소년이 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된다. 나는? 내 마음속에는 아직 어린 소녀가 있다. 더 이상 자라지도 어른이 되지도 못한 외롭고 아픈 소녀가 있다. 그 소녀에게는 파랑이가 있어서 함께 견딜만했다. 힘들어도 혼자가 아니니 다행이었다. 살아갈 유일한 역할,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유일한 몫이 지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가! 이 마음을 함부로 꺼낼 수도 없다. 무슨 말이냐고, 지금 기저귀를 떼는 게 얼마나 시급한 일이고 경사인 줄 몰라서 하는 말이냐고 할 게 뻔하다. 엄마가 뭐 그러냐고 엄마답게 생각해야 하지 않냐고, 지금 제정신이냐고 몰아세울 게 뻔하다. 사실, 나도 기저귀를 떼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게 맞으니까. 기저귀를 평생 하고 살 수 없으니까. 그런데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내 안에서 울부짖고 있는 외로움을 달랠 길이 없다. 그러니 기저귀를 떼야 하기도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떼지 않아야 하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마음이 팽팽하게 나를 잡아당기고 있다. 이런 외로움을 몰라주다니, 남편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 이렇게 나를 외롭게 내팽개치고도 죄책감이라고는 없다.
파랑이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이런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얘기를 꺼내면 펄쩍 뛸 것이다. 뭐라고요? 지금, 그게 내 마음이라고요? 미쳤어요, 선생님? 이럴 게 뻔하다. 나는 미치지 않았으므로 이런 얘기를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기저귀 작별식」 중에서
“저는 많이 힘들어요. 지쳐요. 이 말이 그냥 자꾸만 나와요.”
파랑이 엄마가 부정적이기보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신을 챙기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순간, 파랑이 엄마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지고 시선을 피했다. 왜 그런 것일까? 분명, 어떤 자극이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바로 어떤 마음인지 물어보았다.
“저는요. ‘부정적’이라는 말에 아주 민감해져요. 항상 힘들 때마다 힘든 것이 내 몫이라고 여깁니다. 지금까지 매일 일이 생기고 예전에 아이가 밤새 울고…… 그것 때문에 불면증이 생겨서 아직도 시달리고 있어요.”
파랑이 엄마는 다시 예전에 아이가 울던 그 고통스럽던 순간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년 전의 일을 마치 최근에 일어난 것처럼 들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곧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파랑이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라고 했다. 어떻게 하면 파랑이 엄마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것에 대해 함께 관심을 가져보자고 했다. 불쾌한 표정을 거두며 파랑이 엄마가 알겠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 거예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