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앨리스가 돌아온다면>
130년 전 앨리스는 이상한 나라를 방문하고 난 후, 거꾸로 된 세상을 보려고 거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만약 앨리스가 오늘날 다시 태어난다면, 거울을 통과하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저 창밖을 내다보는 것만으로 족하리라.
광고는 소비하라고 다그치는데, 경제 상황은 소비하지 말라고 한다. 소비의 명령은 모두에게 내려지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명령의 이행이 불가능하므로 결국 범죄를 유발하는 동기가 되고 만다. 일간지 사회면은 우리 시대의 모순을 정치?경제면보다 더 많이 가르쳐 준다.
---35쪽, ‘기본과정: 불의’ 중에서
전체주의적으로 세계화된 질서는 손이 두 개 있어서 금융의 손이 제물을 갖다주면 무역의 손이 낚아채 버린다. ‘얼마나 팔지 말해 줘, 그러면 네가 얼마짜리인지 말해 줄게’ 하는 식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수출은 세계 수출에서 5%도 차지하지 못하고, 아프리카는 2% 정도다. 못사는 남반구 국가들이 사는 물건은 날이 갈수록 더 비싸지고, 파는 물건은 날이 갈수록 값이 떨어진다. 필요한 것을 구매하기 위해 정부는 점점 더 많은 빚을 지게 되고, 차관의 높은 이자를 갚기 위해 할머니의 보석은 물론 할머니까지 판다.
---173쪽, ‘실용 과정: 친구 사귀기와 성공하기’ 중에서
++각종 기념일
크리스마스가 예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한 것인지, 상업의 신인 머큐리(Mercury)를 기리기 위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도 의무적으로 물건을 사야 하는 여러 날에 새로 이름을 붙이는 일에 바쁜 사람은 머큐리임이 틀림없다. 어린이날, 아버지날, 어머니날, 할아버지의 날, 연인의 날, 친구의 날, 비서의 날, 경찰의 날, 간호사의 날 등등……. 영리를 목적으로 한 달력에는 날이 갈수록 아무개의 날이 늘어만 간다.
이 추세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미지의 악당이나 무명의 타락자, 살아남은 노동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날도 있게 될 것이다.
---176쪽, ‘고독의 교육학’ 중에서
또 다른 세상을 꿈꾸며 혐오스러운 오늘을 넘어선 곳에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자.
노래하는지도 모르고 새가 노래하듯이 노는 줄도 모르고 아이가 놀듯이 다만 살기 위해 살지 않고, 소유하기 위해 혹은 더 벌기 위해 사는 자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의 죄가 형법에 추가되리라.
경제학자는 소비수준을 ‘삶의 수준’으로 부르는 일도, 물건의 많고 적음을 ‘삶의 질’로 부르는 일도 없으리라.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한 전쟁이 더 이상 없고, 가난을 상대로 한 전쟁이 있으리라. 그리고 군수사업은 파산을 선고할 도리 외에는 다른 길이 없으리라.
흑인 여성이 브라질의 대통령이 되고, 또 다른 흑인 여성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리라. 인디언 여성이 과테말라를 통치하고, 또 다른 인디언 여성이 페루를 다스리리라.
완벽함은 여전히 신들의 따분한 특권이리라. 그러나 어설프고 엿 같은 이 세상에서 매일 밤은 마지막인 것처럼 살게 될 것이며, 매일 낮은 처음인 것처럼 살게 되리라.
---347~349쪽, ‘이성을 잃을 권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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