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극복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이야기 말고,
무조건 도와줘야만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이야기 말고,
어떤 장점으로 인해 비로소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 받는 이야기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서로가 서로에게 스미고 물들어 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작가 수상 소감 중에서
3교시 수학 시간이었다.
“야, 너 이거 풀 수 있지?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어떤 장애인은 수학 완전 잘해서 어려운 것도 척척 풀더라. 한번 배운 건 절대 잊어버리지도 않고.”
용재가 학습지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그, 그건 자, 폐, 폐증인가 그런 거고. 난 뇌, 벼, 병변이거든.”
“그거나 그거나.”
“와, 완전히 다른 거거든. 난 거, 걷는 거랑 마, 말하는 것이 조, 조금 부, 불편…….”
“알았어, 알았어. 말도 잘 못하면서 따지기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이기 때문이다.
_ 「바람을 가르다」
그때까지 나는 한 번도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못 달리는 게 당연하니까. 그런데 용재가 머리카락을 마구 휘날리며 달리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다, 달릴 때 기, 기분이 어때?”
정리 체조를 하러 운동장으로 나갈 때 용재에게 물었다.
“기분? 그냥 달리는 거지. 일등으로 달리면 기분이 좋긴 해.”
“바, 바람이 조, 좀 다르지 아, 않아?”
“다르긴 뭐가 달라.”
“조옴 다, 다른 것 같던데…… 바, 바람을 가, 가르는 것 같아?”
“바람을 가른다고?”
“나, 나도 다, 달릴 때 기, 기분 알고 싶다.”
“그러고 보니……. 너, 달려 본 적이 없겠구나!”
엄청난 발견을 한 얼굴로 용재가 소리쳤다. 내가 달리지 못한다는 걸 그제야 실감할 지경이었다.
_ 「바람을 가르다」
“해미야, 저기 봐, 너희 집!”
서연이가 소리쳤습니다. 아파트를 올려다보니 우리 집이 있는 6층 복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우리 집 현관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불안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나는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아이들도 나를 따라 달려왔습니다.
집 가까이 갈수록 타는 냄새가 났습니다. 나를 보자 집 앞에 있던 이웃집 할머니들과 아줌마가 소리쳤습니다.
“해미야, 너 집에 없었냐? 야야, 큰일 났다.”
“오빠만 혼자 두고 나간 거니?”
사람들 소리가 마이크 소리처럼 귀에서 윙윙거렸습니다.
_ 「천둥 번개는 그쳐요?」
‘너, 많이, 힘들었, 구나.’
푸른 꼬마 불빛이 깜박이며 나에게 말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가 어떤 예쁜 짓을 해도 엄마, 아빠는 살짝 웃다 말았어. 근데 오빠가 무슨 말만 하면
엄마, 아빠는 손뼉을 치며 뛸 듯이 기뻐했지. 오빠가 미워. 오빠가 자폐증인 것이 싫어. 다른 집 아이들처럼 오빠가 싫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_ 「천둥 번개는 그쳐요?」
“흐으어어엉, 흐어어엉.”
복도에 유빈이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 선생은 안절부절못했다.
‘새 학년이 시작된 지 한 달이 되어 가는데.’
마 선생은 마우스를 잡고 있던 손을 내려다봤다. 담임 맡을 반 제비뽑기를 할 때 4학년 2반을 뽑은 자신의 손이 원망스럽다. 아니, 많고 많은 학교 중에 올해 이 학교로 전근 온 것부터 꼬였다. 아아, 아침마다 울고 오는 아이라니, 자신만 보면 자지러지는 아이라니!
_ 「해가 서쪽에서 뜬 날」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