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는 미래를 예견하며 대비하게 하는 기회의 시대이기도 하다. 코로나 사태는 인류의 과오를 절실히 느끼게 함과 동시에 그 과오를 반성하고 인류애를 발휘하여 새로운 미래를 설계할 기회를 주고 있다. 《미래의 시대, 인문학이 말하다》는 위기의 시대 너머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인문학은 과연 어떠한 방향과 지침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문학, 철학, 언어학, 교육학, 윤리학 등 다양한 인문학적 사유들이 우리에게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를 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미래를 예견하고 미리 대비하는 혜안까지 제시한다.
이경래(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장)
--- [발간사] 중에서
코로나 시대, 교육의 현장에서_비대면 상황이 해체되더라도 정보통신 기술의 가속화가 예견되니 조작 기술을 꾸준히 연마해야 한다는 데도 역시 동의한다. 하지만 대세에 밀려 콘텐츠의 화려함에 신경을 쏟다가 정작 대면이 허용되는 시기가 왔을 때 교수자와 학습자 사이에 학습 내용‘만’ 남을 것이 우려된다. 정작 내용에 앞선 상위 문제들인 ‘무엇을 위해 이 공부를 하는가’ ‘(문리를 트기 위한)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못하고 그 시기를 흘려보낼 수도 있다.
--- p.23
인공지능 시대와 외국어교육_외국어교육의 관점에서 적용해본다면 특히 대학에서 어학 자격증 취득을 위한 학습이나 기능적인 외국어 구사 능력만 우선시하는 풍조는 사라질 것이다. 반면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동 통번역 기술이 진화하면 할수록 꾸준히 외국어 소통 능력을 키우고 글로벌 문화감각을 보유한 인재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그것은 인공지능이 주는 절호의 기회라고도 할 수 있다.
--- p.52
인공지능과 자연어 처리_비자유민주주의가 확산되는 것은 물론 글로벌 경제의 대부분 나라에서 분배가 악화됨에 다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화는 중국과 같이 소득이 낮은 나라가 높은 나라 따라잡기에 성공, 국가 간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으나 오히려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 안에서 불평등은 더욱 커졌다. 그것은 피케티가 《21세기 자본론》에서 주장한 것처럼 시장경제의 속성 때문일 수도, 지속가능한 성장의 동력인 기술 진보의 탓일 수도, 세계경제의 글로벌화 탓일 수도 있다.
--- p.135
이제 다시 염치(廉恥)를 생각할 때_죽음을 각오하고 연산군에게 바른말을 했던 내시 김처선의 직언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이 늙은 몸이 여러 왕을 모셨지만, 임금처럼 막가는 행동을 하는 왕은 없었습니다.”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산군의 화살이 김처선의 가슴을 뚫었다. 솟구치는 피를 두 손으로 막으며 김처선은 계속 직언했다. “조정 대신도 마구 죽이는 전하께서 저 같은 늙은이를 아끼시겠습니까. 단지 전하께서 오래 왕 노릇을 하지 못하실 것이 한이 되옵니다.”
--- p.85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 통신사와 재난_“우리나라 사람들은 허둥지둥 분주하되 감히 한 힘도 다하지 못하고서 왔다갔다 하는데, 한 줌의 물로 수레에 가득한 땔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는 자는 그래도 오직 호행하는 왜인들이었다.”와 같은 기술이 있다. … 배에 탄 조선인들은 불에 옷이 타고 화상을 입어 탈출하기에도 빠듯해 정신이 없었을 텐데, 그 와중에 뛰어다니며 적은 물이라도 들고 날라 불을 끄려는 쓰시마번의 인원들이 과연 얼마나 고마웠을까?
--- pp.115-116
코로나 시대의 신조어와 일본 사회_아베 정부는 7월부터 코로나로 타격을 받은 일본 내 여행 수요를 높여서 내수를 살리기 위해 1박에 최대 2만 엔을 보조하는 ‘Go To 트래블’이라는 새로운 정책을 펼쳤다. 그런데 또 하나의 정부발 신조어인 ‘Go To 트래블’은 ‘불요불급한 외출’과 정면충돌한다. 재택근무와 외출 자제를 촉구하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이처럼 여행을 권하는 정책을 동시에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 pp.135-136
‘인민’도 ‘공민’도 존재하지 않는 ‘단 하나의 중국’_중국 정부는 2015년 반테러법을 제정하여 대가정 안에서의 삶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테러라는 프레임을 더해 종교와 표현의 자유는 물론 인권까지도 합법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2017년부터 건립한 신장 재교육 캠프가 위구르족 강제수용소라는 실체가 드러났을 때도 중국 정부는 “우리는 테러와 싸우고 있고, 정부 정부는 인권을 누구보다 존중한다.”라고 밝히면서 수용소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 p.157
팬데믹에 대한 두 관점_보카치오가 일찍이 목도한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21세기의 문명에서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웃은 갑자기 오염물로 취급받고 어떤 ‘인간적인 절차’도 없이 매장되거나 화장되어버린다. 이 냉정한 위생학에 전율하면서 아감벤은 비인간적인 물질문명의 실체를 경고한 것이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이, 이러한 비정한 현실을 ‘인간성 상실’로 읽어내는 것은 또 다른 편향일 수밖에 없다.
--- p.181
암흑의 응시와 몰락의 윤리_오늘 우리의 손에 들려진 돌은 지금 우리의 삶을 만들기 위한 시도들이다. 서울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새로운 동네를 만들어가면 된다. 서울이 되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대지에서 돌담을 쌓아가면 될 일이다. … 사랑의 윤리가 함께 무너지는 시간을, 우리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감수하는 일이라면, 이제 잊혔던 우리를 찾아 나설 시간이다. 로컬과 공동(共同), 코로나 이후 동네에서 소소한 동행을 감행하는 작은 실험들이 늘어나는 것이 그 작은 시작이다.
--- p.201
위기의 시대, 인문학의 나아갈 길_아직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방법도 모색하지 못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바이러스가 닥쳤다. 바이러스의 침공은 인류세가 초래한 온갖 폐해와 재앙을 탈피할 행동과 사고를 성찰하는 계기를 주어야 하지만, 오히려 국가 간의 경계, 사람 간의 경계를 공고히 구축하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를 변모시킬 조짐조차 보인다. 이러한 위기의 시대 인문학, 특히 세분하여, 철학의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p.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