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동경했던 인간은 동물보다 빨리 달리고 싶다는 염원을 담아 철도를 발명했다. 마차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속도로 달려가는 기차 여행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각을 가져다주었다. 바로 ‘추상’이다. 본다는 것이 단지 신의 영역이었던 중세 그리스도교 문화는 르네상스 이후 드디어 신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자유로운 표현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400년 후 철도의 탄생과 함께 인간의 지각은 해방을 맞았다. 인간은 속도에서 운동 표현의 욕망과 함께 미래의 기운을 느꼈다. 속도에 대한 동경은 풍경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고, 추상의 본질이 속도라는 듯이 20세기에 접어들어 미래파가 등장하고 모더니즘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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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기아로 인한 것이든 죽은 자를 애도하기 위한 것이든 오래전부터 식인을 해왔다. 고대인이 처음으로 인육을 먹었을 때 목격한 것은 고불고불 구부러진 내장이었다. 이것이 인류가 처음으로 체내에서 발견한 ‘나선’ 무늬다. 인류는 동굴벽화, 바벨탑, 단테의 지옥, 켈트 문양, 나바호 인디언의 모래 그림 만다라 등 나선을 다양하게 그려 왔다. 나선은 눈이 도는 것 같은 쾌감과 함께 만취감을 불러일으킨다. 히틀러도 나선의 이러한 만취감을 이용했다. 거꾸로 된 만卍자 모양을 45도 기울이면 만자는 회전하기 시작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배상 문제와 늘어난 실업 등으로 고생을 겪던 독일 민중을 세계 재패라는 과격한 꿈에 취하게 한 계기 중의 하나가 바로 거꾸로 된 만자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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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사회에서 스트라이프 무늬는 너무 눈에 띈다는 점에서도 이단이었지만, 이슬람교도가 몸에 걸치는 무늬라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었다. 사막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이슬람교도에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던 반면, 그리스도교 사회에서는 눈에 띄는 것이 죄였던 것이다. 그래서 하층민들에게 이 무늬가 들어간 옷을 강제로 입혔고, 차별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스트라이프는 귀족들이 열광하는 무늬로 바뀌었고, 실내 장식에도 사용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결국 미국독립전쟁이나 프랑스혁명 때 혁명을 상징하는 무늬로 변모했다. 완전히 긍정적인 기호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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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는 ‘섞는’ 것을 철저하게 혐오한 역사가 있다. 섞고 싶지 않은 것에는 이교도와 인종이 있었다. 그리스도교가 혐오한 것은 이슬람교도와 유대인, 그리고 흑인이다. 레콘키스타, 링컨의 노예해방, 히틀러가 꿈꾼 유대인 전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등은 섞(이)는 것에 대한 서양의 두려움을 보여 주는 예다. 그러나 15세기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섞는’ 일이 공공연해졌다. 17세기 말 런던에 커피하우스가 생기고 사람들이 그곳에서 신문이나 정기간행물을 읽었다. 신문이야말로 의식적으로 ‘섞는’ 것을 행한 최초의 미디어였다. 포스터 또한 섞는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마니에리슴 화가 아르침볼도는 이것저것 그러모으는 방식으로 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에도시대 말기에는 요세에寄せ繪가 유행했다. 19세기 후반 쇠라의 점묘 기법으로 섞는 문화는 아방가르드한 수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이후 브라크와 피카소가 파피에콜레와 콜라주라는 행위를 내세워 섞는 문화의 진수를 보여 주었다. 이밖에도 몽타주, 컷 업, 그리고 샘플링에 이르기까지 섞는 문화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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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는 추상뿐만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사고를 크게 뒤흔들었다. 기차가 두 개의 레일 위를 달리기 위해서는 직선이야말로 최대의 안전책이었다. 여기에서 (직)선의 역사가 본격화되었다. 기차의 차창, 두 개의 레일과 그것과 교차하는 듯 늘어선 침목, 여러 개의 차륜을 가진 차량 등으로 ‘연속’의 이미지도 수반되었다. 철도, 영화, 타자기, 콜트45, 재봉틀, 잔디깎이 등은 선이라는 생각을 중심에 둠으로써 연속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들이다. 이것을 대량생산으로 이미지화한 사람이 헨리 포드다. 포드주의란 차 한 대의 조립 공정을 세분화하여 단순한 노동으로 분해하고,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조립되는 부품이 한 명의 노동자에게 머무는 시간을 될수록 짧게 해 생산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채플린은 〈모던타임스〉에서 항상 감시를 받으며 컨베이어 벨트 옆에 서서 조립된 부품의 나사를 조이는 노동자의 모습을 묘사했다. 이후 직선이 권력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 무솔리니와 히틀러는 건축에 축선軸線을 많이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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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본래 기능과 용도를 없애 버린다는 의미에서 보면, 뒤샹이야말로 레디메이드의 위대한 창시자다. 그러나 기능과 용도를 다른 것으로 치환하는 것도 레디메이드의 범주에 든다면 그 역사는 좀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중세 그리스도교도들은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기 위해 영성체를 들고 나왔고, 빵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육체와 피라는 상징성을 부여했다. 일본 차[茶]의 명인 센 리큐는 원래 차제구가 아닌 것을 차제구로 사용한 걸로 유명하다. 표주박을 작은 꽃병으로 쓴다거나 약사발을 찻종으로 쓰는 데서 새로운 미를 창조했다. ‘빅뱅’은 프레드 호일이 정상 우주론에 대한 대항 이론인 역학 진화 모델을 경멸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었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적절한 이름을 붙임으로써 어렵기만 하던 우주론이 단숨에 친숙한 것이 되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유인원이 치켜 올리는 동물의 뼈는 단순한 뼈가 아닌 흉기가 되며, 《매스터 키튼》에서 주인공은 전화기, 탁상시계, 신발 등 주변에 있는 물건이 진짜 무기에 대항할 수 있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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