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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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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콜럼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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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0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1682g | 250*305*20mm
ISBN13 9788950917975
ISBN10 8950917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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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콘수엘로 바렐라 (Consuelo Varela)
1945년 그라나다에서 태어났고, 현재 스페인 세비야의 서반 아메리카 연구 대학(Escuela de Estudios Hispano Americanos)에서 종신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녀의 연구는 아메리카 대륙 정복 초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고, 콜럼버스와 베스푸치는 이러한 그녀의 연구 주제에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녀의 저서로는 『콜럼버스와 플로렌스 사람들(Colombo e i Fiorentini)』, 아이랄디(G. Airaldi)와 공저한『카스티야의 이사벨라 : 권력을 향한 확고한 움직임(Isabella di Castiglia : Una ferrea vocazione al potere)』, 타비아니(P.E. Taviani), 질(J. Gil)과 공저한『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항해일지, ‘새 콜럼버스 콜렉션’(Il giornale di bordo di Cristoforo Colombo, "Nuova Raccolta Colombiana")』,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 2, 3, 4차 항해 보고서와 편지(Cristoforo Colombo. Relazioni e lettere sul secondo, terzo e quarto viaggio)』, 아기레(I. Aguirre)와 공저한 『프란시스코 데 보바디야가 조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몰락(La caida de Crist?bal Col?n. La pesquisa de Bobadilla)』(스페인 마드리드, 2006) 등이 있다.
저자: 로베르토 마자라 (Roberto Mazzara)
이탈리아 바레세 지역의 작은 마을 카스트론노에서 태어났고, 수력 공학 분야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전문 스쿠버 다이버인 그는 호수와 바다의 기저를 탐험하는 일에 몰두했고, 이탈리아 마지오레 호수에서 여러 번 난파 지점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마침내 1994년 그는 포르투갈 해안에서 바다 속에 가라앉은 산살바도르호의 잔해를 발견해냈다.
역자: 신윤경
서강대에서 영문학과 불문학을 복수전공했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리버풀 종합단과대학(Liverpool Hope University College)과 프랑스 브장송(Besan?on) CLA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번역가 에이전시 하니브릿지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청소부 밥』(위즈덤하우스),『게으른 백만장자』(밀리언하우스),『인생 상속자』,『램프』,『오늘이 그날이다』,『여자의 대화법은 男다르다』,『세계명화비밀1-신화상징』,『세계명화비밀2-성서상징』,『안락사의 역사』,『Don't Speak English 글로비쉬로 말하자 워크북』외 다수가 있으며 최근에는 어린이 책에도 관심을 갖고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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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는 또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매력을 자신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할 줄 아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생각이나 자기 자신을 최상의 모습으로 남들 앞에 내보일 줄 아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도 공허한 약속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능수능란하게 설득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스페인의 왕과 왕비에게 신대륙 탐험이라는 그의 혁신적인 계획을 ‘팔기’까지 7년이라는 세월이 걸리기는 했지만, 이 매혹적인 설득가는 왕과 왕비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페르디난드 왕이 사냥에 사용하거나 ‘그의 왕자들에게 하사할’ 매를 손에 넣게 되면, 콜럼버스는 잊지 않고 이사벨라 여왕에게도 각종 보석과 금, 진주 등을 정중하게 선물했다. 그는 융통성을 발휘해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적응했고 실패조차도 성공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1492년 크리스마스 즈음 콜럼버스는 산타마리아호를 잃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잘못도 아니었고 선장의 잘못도 아니었다. 열심히 망을 봐야 할 시간에 깜빡 잠들어버린 부주의한 어린 선원의 잘못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분명 불명예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는 “신께서 배를 이곳에 묶으신 것은 우리가 이곳에 머물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신세계에서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을 결국 찾지 못했을 때에도 그는 자신의 실패를 설명할 수 있는 합당한 이유를 찾아냈다. 나무에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것은 아직 열매를 볼 수 있는 때가 아니기 때문이므로 그저 적당한 때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맹수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들이 미리 눈치 채고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그가 원하는 만큼의 황금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가 아직 ‘원천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콜럼버스는 불평과 슬픔 속에서도 언제나 자신이 처한 그 당시의 상황이 옳은 것이라고 확신했고, 자신의 운명이 지운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뒤 떳떳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인내와 불굴의 의지를 가진 위대한 몽상가였던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콜럼버스는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디난드 왕을 향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비록 내게 힘이 부족해 이렇게 쓰러지지만, 내 영혼의 강한 의지만은 절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의지력이 있었기에 그는 자신이 가고자 했던 곳에 갈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콜럼버스를 말해주는 가장 큰 특징일 것이다.

콜럼버스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고, 또한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독실한 신앙심에 대한 증거로 라스카사스는 그의 편지가 언제나 “성자와 성모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Jhesus cum Maria sit nobis in via)”이라는 짧은 기도로 시작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런데 그의 기록에 의심을 품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한 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콜럼버스의 편지들 백여 통 가운데 이사벨라 여왕에게 보내는 단 한 통의 편지만이 위와 같은 기도 문구로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여왕에게 보낸 편지를 포함한 모든 편지에는 그의 몇몇 전기 작가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작은 십자가 모양이 그려져 있다.

콜럼버스는 신앙심이 두터운 엄숙한 인물이었지만, 접대를 위한 만찬에는 절대 인색하지 않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이나 배를 찾아온 추장들과 함께한 식사 장면을 보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음식에 탐욕을 부리지는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음식은 그저 생명유지 수단일 뿐이었다. 물론 그 역시 다른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데에는 열렬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비록 서투르기는 하지만 새로운 음식을 맛보며 그 맛을 당근이나 밤과 비교하기도 하고, 그것들이 ‘놀라운 풍미’를 가지고 있다고 묘사하거나 ‘여태 먹어본 것과는 매우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개머루의 과즙이 풍부하고 대추야자의 맛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이 모든 새로운 음식들 중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원주민들의 식탁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빵이었다. 그것은 그 지역에서 나는 참마와 쑥의 일종인 아예스(ajes)라는 식물로 만들어지며, “매우 하얗고 맛이 좋았다.” 1493년 1월 13일 카스티야로 돌아갈 준비를 할 때, 그는 빵과 가공한 생선 요리, 그리고 구아카나가리가 선물해준 오락거리와 함께 아예스를 배에 실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긴 여행 중 행여 부족한 것이 생기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던 것이다. --- pp.25-26

세 번째 항해
출발 : 산루카 데 바라메다, 1498년 5월 30일. 귀환 : 카디스, 1500년 11월 20일
두 번째 항해 후 콜럼버스의 주위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그의 인기는 내리막을 달리기 시작했고, 새로운 협약에 따라 왕과 왕비는 시민 개인에게도 탐험을 허가해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콜럼버스는 세 번째 항해를 위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 탐험에서는 필요한 수만큼 지원자를 모집할 수 있었지만, 세 번째 항해를 위해 필요한 330명의 선원을 모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인도제국은 기대했던 부를 내놓지 않았고 식민지에서의 삶은 힘들고 괴로웠던 것이다. 식민지 이주자들은 새로운 땅에 적응하지 못했고, 기아와 질병으로 참혹한 피해를 입어 그 수가 줄어들었다.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에게 사면을 약속하는 대신 그들을 인도제국으로 추방한다는 법적 문서들에서 인원 부족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탐험대를 구성한 226명 중 살인자로 확인된 사람은 겨우 10명에 불과했다. 탐험대는 70명의 궁수와 50명의 보병, 20명의 노동자와 지방 사람들, 18명의 관리와 15명의 선원, 6명의 견습 선원, 4명의 카나리아 원주민(그들의 직업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제독의 가사를 돌볼 4명의 하인, 신부 2명과 폭격수 한 명, 소년 고수(鼓手) 한 명, 무급 심부름꾼 5명과 6명 이상의 여자들로 구성되었다.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선단을 구성한 여덟 척의 배 중, 콜럼버스는 두 척의 배를 먼저 출항시켰다. 그 지휘를 맡은 사람은 제독의 충실한 친구인 페드로 헤르난데스 코로넬이었고, 무장한 사람들 대부분이 이 배에 타고 있었다. 콜럼버스는 히스파니올라에 식민지 지휘자로 남아 있는 동생 바르톨로메오에게 한시라도 빨리 지원군을 보내, 그들이 반항하는 원주민들을 생포하고 광산 노동이나 유럽 노예 시장에 필요한 노예들을 공급할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전 항해 때 이용했던 항로를 지나는 대신, 콜럼버스는 카나리아 제도를 피해 베르데 곶 항로를 향해 똑바로 나아갔다. 이전 항로보다 남쪽에 위치한 이 항로를 따라가던 선단은 1498년 8월 1일 최초로 트리니다드 섬에 도달했다. 4일 뒤인 8월 5일, 그들은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했다. 콜럼버스는 배에서 내리지 않았고, 대신 그의 집사장 페드로 데 테레로스가 가톨릭 왕과 왕비의 이름으로 새 땅을 점령했다. 8월 말이 될 때까지 선단은 베네수엘라와 트리니다드의 북쪽 해안을 탐험했고, 파리아 만과 용의 입(Dragon's Mouth), 마르가리타 섬을 지난 후 오리노코 강 삼각주에 이르렀다. 월말이 되자 콜럼버스와 그의 선원들은 히스파니올라에 도착했고, 바르톨로메오 콜럼버스가 1494년 건설한 새로운 도시 산토도밍고에 정착했다. 바르톨로메오가 이 도시에 산토도밍고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아버지인 도메니코를 기리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지만, 이 도시 건설의 주춧돌을 세운 것이 일요일(스페인어로 도밍고, 이탈리아어로 도메니카)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콜럼버스는 힘든 시간을 겪었다. 그는 이후에 자세히 설명할 두 번의 반란을 진압해야 했고, 결국 죄인의 신분이 되어 섬을 포기해야 했다. 페르디난드 왕과 이사벨라 여왕이 보낸 프란시스코 데 보바디야가 사법권을 손에 쥐게 되자 콜럼버스는 그가 진행하는 법적 절차에 복종해야 했던 것이다. 남아메리카 대륙 첫 상륙과 영토권 주장이라는 중요한 사건과 함께 점차 식민지 체계가 완성되었다. 행정적 관점에서 볼 때 땅의 분배와 노예 배당이 모두 이루어졌고, 몇 년 후 유명한 교부지(encomiendas)가 등장하게 되었다. 콜럼버스가 세 번째 항해에서 이용한 항로를 따라 소위 ‘작은 항해’들이 조직되었고, 전문 선원들과 사업가들이 이 항해에 참여해 점차 스페인 왕실에 병합되어가는 근처의 새 섬들을 탐험했다. 아메리고 베스푸치 역시 이들 중 하나였다. 그는 1499년 알론소 데 호제다가 이끄는 항해에 참여했다. --- pp.122-123

『수중세계』 기사에서 언급한 또 다른 갤리온선, 즉 부아르코스에서 난파당한 배의 이름 역시 산살바도르였다. 나는 기사에 제시된 날짜를 통해, 이 배가 1555년 초에 포르투갈 해안에서 침몰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파 지점은 현재의 피게이라 다 포즈의 건너편이었고, 당시 그곳은 부아르코스라고 불리는 작은 어부들의 마을이었다.
1993년 나는 난파선의 잔해를 찾기 위해 피게이라 다 포즈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해안선의 독특한 형태와 구조 때문에 산살바도르가 난파한 정확한 지점을 결정하는 일이 복잡해졌다. 참고할 만한 정확한 지점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기록물에는 구체적인 지점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다만 플라야 델 로리칼이라고만 되어 있었는데, 내 항해도에 그런 지명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쓰이지 않는 이름인 것이 확실했다. 피게이라 다 포즈에 도착한 나는 일단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하지만 플라야 델 로리칼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 첫 번째 시도에 실망한 나는 포르투갈을 떠났고, 피게이라 다 포즈에 스쿠버 다이빙에 대한 엄청난 수요가 존재한다는 확신을 더욱 강하게 품게 되었다. 아직 아무도 개발하지 않은 분야이니, 스쿠버 다이빙 장비와 훈련 과정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면 분명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다시 계획을 짜고 필요한 장비를 구입한 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생각으로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마음속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첫째는 그곳에 다이빙에 대한 열정을 심어주는 것이었고, 둘째는 포르투갈에서 산살바도르호 탐색을 위한 경제적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여행에서 만난 조지는 쿠임브라의 약사였는데, 스쿠버 다이빙에 이미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동생 에도아르도는 다이빙 장비를 포함한 각종 스포츠 상품 가게를 운영하고 서프보드 제작도 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게 도움을 주었다. 난 피게이라 다 포즈에 도착해 그들에게 연락을 했고, 서둘러 스쿠버 다이빙 훈련 과정 광고를 준비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들에게 산살바도르호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도와 자료, 사진, 잡지에 실린 기사 등을 보여주었다. 결국 우리는 함께 산살바도르호를 찾기로 결정했다.
에도아르도는 나를 피게이라 다 포즈 도서관으로 안내했는데, 그곳에는 역사적 문서들과 난파선에 대한 기록물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나는 페드로 데 갈라르자가 쓴 편지의 한 부분을 유심히 읽었다. 산살바도르 난파선에 관련된 부분이었는데, 그는 갤리온선이 난파한 해변 건너편에 위치한 카살 데 마린의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세이사 수도원에 손님으로 묵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그의 편지에 따르면, 스페인 왕은 그에게 난파에서 살아남은 모든 물품을 회수할 것을 명했고, 근처 어부들의 집을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당시에는 난파 후 해변으로 밀려온 물건을 발견하는 사람이 그 물건을 가져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세이사 수도원은 지금도 존재한다. 다만 몇 세기를 지나며 공장으로 바뀌었고 그 후 버려져 지금은 폐허에 지나지 않지만, 난파 지점을 찾고 있는 내게는 매우 소중한 지리적 기준이 되어주었다. 이제 나는 지도를 펼쳐 수도원이 마주하고 있는 해변을 찾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그토록 찾았던 플라야 델 로리칼인 것이다. 현재 그 해변은 오소 다 발레이아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포르투갈어로 ‘고래의 뼈’라는 뜻이다. 해변은 직선으로 매우 길게 뻗어 있었다. 피게이라 다 포즈 근처에서 시작해 페드로고라는 작은 마을 근처의 아담한 바위 절벽까지 약 70킬로미터 거리였던 것이다.
나는 그 해변 중 약 19.3킬로미터까지 지역에 집중해야 했다. 나는 먼저 금속 탐지기로 그 지역을 훑어보기로 했다. 그 주변에서 난파당한 화물선들이 남긴 작은 철조각과 알루미늄 조각, 나사와 볼트 등이 모래사장 곳곳에 흩어져 있어 일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일단 시도해보기로 했다. 어느 날 저녁,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 에도아르도와 함께 해변을 훑고 있던 나는 금속 탐지기에서 신호음이 들리는 것을 깨닫고 나도 모르게 바닥에 엎드려 두 손으로 모래를 파내기 시작했다. 나는 곧 꽤 커다란 동전을 발견했고, 깨끗이 모래를 털어냈다. 아주 오래된 것이 틀림없었다. 나는 동전에 스페인 왕실의 문장이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산살바도르호가 난파당한 시대에 사용하던 8레알(스페인의 옛 은화-역주) 동전이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은화는 바닷물의 산화 작용으로 검게 변해버렸지만, 새겨진 글만은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카롤루스(샤를 5세)와 요한나, 왕과 왕비’라는 글귀였다. 샤를 5세는 산살바도르 난파 당시 왕위에 있던 인물이고, 따라서 내가 경탄하며 바라보고 있는 이 동전은 바로 그 배가 운반하던 동전과 동일한 것임이 분명했다.
다음 며칠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 해변을 찾아갔고, 나는 하루에 적어도 두세 시간씩 금속 탐지기로 모래사장을 탐색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금속 탐지기로 해변을 훑고 있는 내게 한 어부가 다가와 동전을 찾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몇 년 전 바로 이곳에서 백여 개의 동전을 찾았는데 아무 가치가 없는 것들이라 집 주위 울타리 장식에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나를 자신의 집으로 안내했고, 나는 그의 울타리를 보는 순간, 그 옛날 산살바도르호에 실려 스페인으로 운송 중이었을 100개가 넘는 2, 4, 8레알짜리 동전에 그가 구멍을 뚫어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p.198-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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