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은 예전 세대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롭고,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훨씬 더 큰 자유를 누리며 산다. 하지만 이런 윤택함은 지구의 회복 속도보다 빠르게 지구 자원을 착취하는 탓에 가능하다. 그리고 동시에 가난과 부유함, 북반구와 남반구, 흑과 백,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과 불공정은, 그동안 꼼꼼하게 관리된 데이터가 확인해 주듯 줄어들기는커녕 부분적으로는 더욱 심해졌다. 경제성장이 한계에 다다른 게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그만큼 더 분배는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생산은 더욱 박차를 가하기에, 인간에게도 환경에게도 재생하고 회복할 시간이 없다. 사회의 불균형은 이처럼 흥청망청 소비하는 우리의 생활방식이 남겨놓는 생태적 폐해를 고스란히 반영한 그림이다. 우리는 균형을 회복하지 못한다. 우리는 자유를 약속해 주었던 체계의 포로가 되고 말았으며, 그 어디에서도 출구를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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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계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지만 흔히 뭔가 이상이 생겨야만 우리의 눈에 띈다. 경제 체계, 금융 체계, 생태계, 보건 체계, 생물학적 순환계통 등이 그 예다. 먼저 오작동이 있어야만, 이를테면 경기 침체, 주가 급락, 꿀벌의 떼죽음, 중환자 병상 부족, 심장마비가 일어나야 우리는 복잡계를 주목한다. 당연한 것처럼 작동하던 복잡계가 이상을 일으켜야 비로소 일상이 그처럼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깨닫는 것이다. 자동차는 응급 수리가, 연인 사이에서는 다툼이, 민주주의에서는 과격한 극단주의가 이런 이치를 보여준다. 특히 세계가 이대로 끝나버리는 게 아닐까 의심하는 순간부터 우리를 사로잡는 절망 역시 복잡계가 삐거덕거리며 보내는 신호다.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지 깨닫는 순간,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이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우리 자신 역시 이 시스템을 이루는 부분이라는 점도.
--- p.26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변화는 없다. 그 누구도 예전에 벌어진 일 또는 다른 사람이 하는 일과 무관하게 홀로 행동할 수 없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그런 일을 해봐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그런 일은 너무 작고, 무의미하며, 보잘것없다고 말하거든, 변화는 작은 첫걸음으로 시작한다고, 변화는 무에서 갑자기 시작되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자. 공장형 가축 사육이 코웃음을 치더라도 우리는 친환경 육류를 먹자. 바다에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일이 계속된다고 할지라도 플라스틱 제품은 쓰지 말자. 투표해 봐야 세상은 안 바뀐다고 탄식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한 표를 행사하자. 전 세계적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단 2%만 독일의 책임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기후변화를 막는 투쟁에 동참하자.
--- pp.75~76
누구나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통에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는 물리적 협착이 나타난다.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자동차를 탄다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정체를 빚을 뿐이다. 한편으로 경쟁이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면서 하루 세 시간 근무는 정신 나간 소리가 되고 만다. 어떤 재화는 대다수 사람이 접근하기 힘들 때에만 사회적 위상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예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한 물건을 가질 기회는 오로지 경제성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런 경제성장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쉽사리 드러난다. 우선, 물질적으로 부족한 게 없음에도 어떤 재화는 서로의 생활수준을 비교할 때만 사회적 위상을 상징할 수 있다. 둘째, 이로써 나의 위상이 더 낫다고 여길 수 있는 기준은 계속 올라간다. 더 좋은 것을 더 높은 위상으로 누린다는 말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결핍을 피할 수 없음을 뜻한다. ‘사회적 결핍’은 결국 최대 다수를 위한 최대 행복이 말이 되지 않는 논리임을 확인해 준다.
--- pp.157~158
긍정적인 회복력 정책은 옛것을 고수하지 않고 창의적으로 가치를 보존하는 쪽으로 미래를 설계할 때, 적기를 놓치지 않으려 항상 주의하고 예견하는 태도로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사회의 안녕을 키우는 쪽으로 자산 가치를 강화하는 자세다. 훼손되지 않는 자연, 좋은 교육과 보건 체계, 신뢰감이 형성된 관계 및 제도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뿐만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로운 인생의 밑바탕이 된다. 우리의 능력을 키워 사회의 구조와 의사 결정 및 실행 과정을 일찍부터 변화시키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 p.226